뒷골목 뒷골목 성갑숙 세수할 필요도 없는 날 그렇다고 혼자 뒹굴지도 못하는 날 모자를 눌러 쓰고 들어선다 네거리 불빛 변두리로 밀려나 나도 나를 느끼지 못하는 적막 속 흠칫 다가서는 인기척 길바닥도 담벼락도 나무도 지친 듯 스친 옷깃도 무채색이다 비로소 사람 냄새를 맡는다 골목은 곧 끄트머리를 ..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2
월출산 통천문에 들어 (전남예술 원고) 월출산 통천문에 들어 / 성갑숙 숨을 다하고야 당도한 문 앞만 좆아 오른 인파 속에서 미진의 호흡을 모두었다 세상 것 다 내려놓아야 한다 개인의 영달도 육신의 찌꺼기도 다 버려야 한다 머리에 얹힌 관을 내려 겸손과 온유로 때를 씻고 허리를 굽혀야만 들 수 있다 드는 길도 외길이..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1
일심동체 (현대문예 원고) 일심동체 성갑숙 여수 백야도 등대에는 일심동체 조각상이 있다 허리 위는 여인네요 그 아랫도리는 남정네라 깜박이는 등대불빛 아래 슬핏 슬핏 드러낸 나신이 낯설지 않음은 그들은 원래 한 몸이라 뱃길이 끊긴 시간에도 바닷물 한 자락 덮여 있을 뿐 섬과 뭍 또한 원래 한 몸 아니었..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1
그 산중 뻐꾸기 소리 그 산중 뻐꾸기 소리 성갑숙 높지도 않은 그 산은 가팔랐다 뻐꾸기 소리 장끼 소리 민요가락까지 산등성이로 넘어올 때만 해도 치어다 볼만한 그런 산이었다 가늘게 에둘린 산허리 길 그마저 뚝 끊어지고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 오를 수 없다는 그 말 차라리 귀를 막았다 기다림은 5년 10년 그리고 또 10..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1
벚꽃 지면 벚꽃 지면 겨우내 할퀸 상처 멍울 터트려 아물게 하신이여 하얗게 달려온 시간들을 잠시 길 위에 머물게 하시는군요 나에게 부족한 시간들도 잠시라도 좋으니 저들같이 아름답게 하소서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하며 빈손으로 서 있는 나무에게도 녹의홍상 다려 입혀 칠흑 같던 상실감 씻게 하소서 때를..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