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산 종산 -가마실 연가 13 종산도 눌자리없어 밭둑을 넓혔다. 끈질긴 쑥뿌리는 한 뼘 땅 임자를 닮았다만 밭 맬 때마다 호미갈아 씨를 말린다. 손 귀한 집 쓰잘데없는 명 논사를 해마다 준비하던 그 자리 덩달아 참을 먹은 까막까치 툴툴 털고 일어나니 생전의 그의 몫이 하얀 이불되어 포근하다.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호박잎쌈 호박잎쌈 -가마실 연가 10 허리 굽은 길 나서면 병이 도진다지. 된장국에 호박잎 쌈이 제일이란 말 그때는 몰랐어. 뉘네집 답벼락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시궁도 똬리 틀면 안방 삼는 거친 것도 주름진 손 온기 스치면 보드란 쌈이 되는 것을. 뒤뜰 항아리 뚜껑 열어 반쯤 젖은 얼굴에 소금꽃같은 웃음을 띄워주면 침묵 속에서도 노랗게 우러나는 낮달 밥상 위에 얹어놓고 둥그러진 그림자가 문살에 비칠 때까지 움직이지 않으면 병이 도진다지.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청상 아지매 청상 아지매 -가마실 연가 16 한 많고 탈 많은 아지매 집에 주인이 바뀐다 풀석풀석 얼룩진 벽지 벗겨내고 덕지 붙은 회가루 긁어대고 세기를 넘나들었을 쥐구멍으로 내다 본 세상은 온통 낮아진 것 뿐이다 이제 시멘트를 개어 치장을 한다 청상의 아지매 한 평생을 지우고 공납금 늦었다. 내지른 손자 주먹도 지우고 쥐약 놓는 날 동네 이장 외는 소리에 사시 떨던 쥐구멍도 지우고 언제나 우리 삽짝에 누렁소 몰고 쟁기 멘 남정네 찾아들랑가 서원하던 아지매 집에 씨알 굵은 누렁소 우굴우굴한다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문간귀신 문간귀신 -가마실 연가 22 감꽃을 주워 꿈을 엮던 가시내 과수원으로 시집갔지 척박하던 과수밭 석삼년을 일구어도 금줄에 홍고추는커녕 숯덩이도 못 엮었지 구박받아 소박들고 -어매야 날 좀 데려가소- -죽어서도 문간귀신 되거라- 감꽃 흐드러진 삽짝문 돌아설 때 -비루먹은 인간 만나 하늘은 보았더냐?- -하늘은 우찌보고 별은 우찌 따는고- 구로공단 빵공장에 취직해 볼려고 호적등본 떼러갔다가 천행인지 만행인지 혼인신고 없이 석삼년을 보냈더라 요즘 감꽃 줏던 숫가시내 얼굴 국화빵 닮아가네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섭이집 풍경 섭이집 풍경 -가마실 연가 15 해마다 사람들은 곳도없이 떠나도 뒷밭 도라지는 꽃봉오리 부풀리고 오갈 할매 무너진 담장너머 키다리 꽃 무표정이다 대문만 열면 둥구산을 끌어안던 종가집 사랑방에 에어콘 바람 세어 나오던 날 노인네들 둘러앉아 검버섯 말리느라 성도 모르는 떠내기가 섭이집 축사 주인 된지도 몰랐다네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과수댁 맨드라미 과수댁 맨드라미 -가마실 연가 17 과수댁 뜨락에 맨드라미 붉다 산입에 거미줄 치랴 안땀, 너머땀 삯일 도맡아 안방 토방 알곡으로 가득히 채워 놓고 하릴없는 뜨내기 푸념 너른 마당 채워놓고 작달비 내린 뒤 가늘한 등불 하나 흔들리다 월식에 찢기운 달 긴 한숨 거두우고 기나긴 그림자 거두고 이웃하던 토담엔 강아지 풀만 주억댄다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꽃신 꽃신 -가마실 연가 6 그해 겨울 사랑방 샛문에 걸린 오동나무는 까치집 하나 키우고 있었다. 몇 달 후 여린 바람은 수액을 몰고 자박자박 오동나무를 오르고 있었다 나뭇잎으로 가득찬 하늘 꽃신 하나 올려놓고 슬픔에 잠겼다 지치지도 않고 쉼없는 할아버지 옛 이야기 그냥 듣고서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정월 가마실 연가 8 - 정 월 - 육간대청 방문열고 세배 드린다 '올해는 가야지 고맙다' 덕담 듣던 큰 애기 얼굴 보름달 뜬다 재너머 늙은 총각 달맞아 산마루 오를 새 오래비, 아재비, 젊은이랑 큰집, 작은집, 시앗집 떼지어 한달 내내 지신 밟다가 동네 조무라기들 코 묻은 세배돈 귀통이 헐 때 토골짝 잔설 위..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할머니 가마실 연가 14 - 할 머 니 - 산비탈 한뼘 땅 고구마 줄기 무서리 나리면 걷이 끝낸 고랑따라 잰 손길 섣달 한 요기 줏어 올리시더니 빈가슴 방망이질 하던 손주녀석들 다 떠난 지금 무얼 찾고 계시는지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
할아버지 할아버지 -가마실 연가 9 전설 쏟는 절골짝 치어다 산비둘기 불러 모으시고 양지쪽 한숨자락 펼쳐 둘째 셋째 어느놈 살피시더니 벼이삭이랑 등 뒤에 감추고 고개 저으신다 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201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