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38

호박잎쌈

호박잎쌈 -가마실 연가 10 허리 굽은 길 나서면 병이 도진다지. 된장국에 호박잎 쌈이 제일이란 말 그때는 몰랐어. 뉘네집 답벼락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시궁도 똬리 틀면 안방 삼는 거친 것도 주름진 손 온기 스치면 보드란 쌈이 되는 것을. 뒤뜰 항아리 뚜껑 열어 반쯤 젖은 얼굴에 소금꽃같은 웃음을 띄워주면 침묵 속에서도 노랗게 우러나는 낮달 밥상 위에 얹어놓고 둥그러진 그림자가 문살에 비칠 때까지 움직이지 않으면 병이 도진다지.

청상 아지매

청상 아지매 -가마실 연가 16 한 많고 탈 많은 아지매 집에 주인이 바뀐다 풀석풀석 얼룩진 벽지 벗겨내고 덕지 붙은 회가루 긁어대고 세기를 넘나들었을 쥐구멍으로 내다 본 세상은 온통 낮아진 것 뿐이다 이제 시멘트를 개어 치장을 한다 청상의 아지매 한 평생을 지우고 공납금 늦었다. 내지른 손자 주먹도 지우고 쥐약 놓는 날 동네 이장 외는 소리에 사시 떨던 쥐구멍도 지우고 언제나 우리 삽짝에 누렁소 몰고 쟁기 멘 남정네 찾아들랑가 서원하던 아지매 집에 씨알 굵은 누렁소 우굴우굴한다

문간귀신

문간귀신 -가마실 연가 22 감꽃을 주워 꿈을 엮던 가시내 과수원으로 시집갔지 척박하던 과수밭 석삼년을 일구어도 금줄에 홍고추는커녕 숯덩이도 못 엮었지 구박받아 소박들고 -어매야 날 좀 데려가소- -죽어서도 문간귀신 되거라- 감꽃 흐드러진 삽짝문 돌아설 때 -비루먹은 인간 만나 하늘은 보았더냐?- -하늘은 우찌보고 별은 우찌 따는고- 구로공단 빵공장에 취직해 볼려고 호적등본 떼러갔다가 천행인지 만행인지 혼인신고 없이 석삼년을 보냈더라 요즘 감꽃 줏던 숫가시내 얼굴 국화빵 닮아가네

과수댁 맨드라미

과수댁 맨드라미 -가마실 연가 17 과수댁 뜨락에 맨드라미 붉다 산입에 거미줄 치랴 안땀, 너머땀 삯일 도맡아 안방 토방 알곡으로 가득히 채워 놓고 하릴없는 뜨내기 푸념 너른 마당 채워놓고 작달비 내린 뒤 가늘한 등불 하나 흔들리다 월식에 찢기운 달 긴 한숨 거두우고 기나긴 그림자 거두고 이웃하던 토담엔 강아지 풀만 주억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