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흐르다 보면 흐르다 보면 하루 살고 말듯 안달복달 사는 이여 소리없이 스미며 살아 볼 일이다. 전생에도 후생에도 멈춤 없는 물 되어 어우러져야 소생하는 것 실타래 엮이듯 얽히고 설키어 숨 막히듯 닫힌 가슴팍에도 흐름을 막을 수 없어 천리만리 오르막 길 끝에서 고개밀어 기다리는 이여! 물이 낮은 곳으로만 ..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1.03.24
[시] 졸졸졸 시냇가에서 졸졸졸 시냇가에서 성갑숙 여린 물줄기 끼리 손잡고 함께 흘러 보세나 냇바닥에 엎드린 모래알이 보채거든 그 자리가 네 자리라며 쓰다듬어 주고 몸 부딪기 싫다 모난 돌 막아서거든 살짝 뜀뛰기 해 넘고 또 가다가 뜀뛰기도 버거운 돌 만나면 멀리서부터 도움닫기 해 보고 어쩌다가 그러다가 키를 넘..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1.03.20
[시] 어머니가 들려주는 원시림 이야기 어머니가 들려주는 원시림 이야기 성갑숙 하이고야~ 그 시절에 가시나로 태어난 건 죄가 있을 거로 아마 땅 위에 가시나 없어지면 사람 씨가 마른다 해도 가시나라는 말 진저리야 골용석에 손 귀한 학자 집안 태중에서부터 남아 이름 지어놓고 학수고대 기다렸으니 내 이름이 외돌이다 생부는 손 끈긴..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1.02.05
[시]가야산을 오르다가 가야산을 오르다가 / 성갑숙 백운동 지구 산으로 가는 찻집 숨 가쁘게 달려온 시월이 잠시 머물러 덩달아 행보를 늦추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만물상으로 드는 가파른 길 마다하고 백운교 출렁다리 춤사위 난간 마다 뻗어오는 꽃물 든 손길 옛 가야의 시조들이 굽어보는 백운암 절터에서는 가난한 불자..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11.07
언니 회갑에 즈음하여 언니 회갑에 즈음하여 성갑숙 이 땅에 전운이 감돌고 동 틀 무렵 평온하던 호수에 돌풍이 일었지요 해다미 숙소 난간 부여잡고 한 세월을 짚어보는 그 모습 꿋꿋했어요 중간 중간 허리 굽힐 일 왜 없었겠어요 동기간 시샘으로 애간장 삭인 일 명치끝이 먹먹하도록 어처구니없던 일 잠 설치며 혹독한 ..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11.07
소유 소유 성갑숙 품이 큰 느티나무 아래 우연히 들여다 본 우물 그 맑기가 하늘빛 닮아 한 가슴 적셔보려다 파문 일어 정적 깰까 그냥 바라고 섰다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6
[시] 수덕사에 바친 청춘 수덕사에 바친 청춘 / 성갑숙 그랬다 여자이기에 청춘도 내 것이 아니었다 세기 묵은 바람에 등 밀려들어선 수덕사 배흘림기둥 부여잡고 된바람 비켜가기를 소망했다 도피라 해도 지워주는 운명은 벗고 싶어 나를 에울 돌담이 몇 겹이라도 문제되지 않았다 여자여! 여자여! 그대 태울 청춘 그 가치는 ..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2
뒷골목 뒷골목 성갑숙 세수할 필요도 없는 날 그렇다고 혼자 뒹굴지도 못하는 날 모자를 눌러 쓰고 들어선다 네거리 불빛 변두리로 밀려나 나도 나를 느끼지 못하는 적막 속 흠칫 다가서는 인기척 길바닥도 담벼락도 나무도 지친 듯 스친 옷깃도 무채색이다 비로소 사람 냄새를 맡는다 골목은 곧 끄트머리를 ..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2
월출산 통천문에 들어 (전남예술 원고) 월출산 통천문에 들어 / 성갑숙 숨을 다하고야 당도한 문 앞만 좆아 오른 인파 속에서 미진의 호흡을 모두었다 세상 것 다 내려놓아야 한다 개인의 영달도 육신의 찌꺼기도 다 버려야 한다 머리에 얹힌 관을 내려 겸손과 온유로 때를 씻고 허리를 굽혀야만 들 수 있다 드는 길도 외길이.. 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20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