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笑곳 이야기/운문(신작)

(시) 설악산 밑 일박 / 성갑숙

가마실 / 설인 2013. 8. 29. 12:00

 

설악산 밑 일박 / 성갑숙

 

새벽 네시 민박집에서 눈을 떴다

당일 대청봉을 밟고 내려가려면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항상 남편이던 사람이

설악 밑에서 서너 시간 눈 붙인 사이 내편이 되었는지

전기밥솥에서 밥을 꾹꾹 퍼 담는다 

 

남쪽 끝자락에서 종일거리

꿈에 그리던 눈 덮인 산 밑에서의 일박이

너무 짧아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민박집이라지만 낮에는 음식을 해 날랐는지 더러 치대인 모양

산내음조차 골아떨어진 홀을 서성이다

낡은 의자 밑에서

손 때 절은 시집 한 권을 주워 털었다

 

방에서는

억지라도 밥을 먹어야 정상을 밟는다고 제법 챙겨쌌는데

한계령 산지기가 쓴

시집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배낭에 집어넣으며

-나는 식전에 대청봉 정복했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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