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밑 일박 / 성갑숙
새벽 네시 민박집에서 눈을 떴다
당일 대청봉을 밟고 내려가려면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항상 남편이던 사람이
설악 밑에서 서너 시간 눈 붙인 사이 내편이 되었는지
전기밥솥에서 밥을 꾹꾹 퍼 담는다
남쪽 끝자락에서 종일거리
꿈에 그리던 눈 덮인 산 밑에서의 일박이
너무 짧아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민박집이라지만 낮에는 음식을 해 날랐는지 더러 치대인 모양
산내음조차 골아떨어진 홀을 서성이다
낡은 의자 밑에서
손 때 절은 시집 한 권을 주워 털었다
방에서는
억지라도 밥을 먹어야 정상을 밟는다고 제법 챙겨쌌는데
한계령 산지기가 쓴
시집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배낭에 집어넣으며
-나는 식전에 대청봉 정복했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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