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笑곳 이야기/운문(신작)

(시) 산을 오르다

가마실 / 설인 2013. 1. 26. 16:52

 산을 오르다

 

 

 산을 오르다 / 성갑숙

 

흐벅지게 눈 내리는 날은

등짐 챙겨 훌쩍 나서 볼일이다

명산 아니면 어떠랴

앞선 발자국 덮여 길 없으면 또 어떠랴

생에 첫걸음 내딛듯 그냥 올라 볼일이다

 

칼바람 스치는 등성이에서

붙박이로 살아낸 겨울나목 만나거든

어설피 눈길 주어 고행을 막지마라

애린 삶이 빚어낸 은빛 결실이거니

짐 진 길손 위한 소신공양이거니

 

생은 언제나 예행이 없었으니

오름길도 호기좋게 달음박 놓다가도

낭떠러지 만나 오금저린 일 한두 번인가

누군가 내미는 따뜻한 손 기다리다가도

푯말을 찾아 무지의 발걸음을 옮겨야만

길이 열리는 것을

주저앉지 말아야 길이 열리는 것을

 

돌아보지 말라

뜨겁게 안겨들 정상의 푯말을 생각하라

그리고 느껴보아라

헐거워진 등짐 훌쳐 메고  

한 점 흐트러짐 없는 가난한 발걸음을

산 아래로

산 아래로 내려놓아야하는 이유를


 

(민주지산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