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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화 시론- 창작동화의 재미성 부재에 대한 몇 가지 몇 가지 단상

가마실 / 설인 2011. 3. 20. 16:20

창작동화의 재미성 부재에 대한 몇 가지 단상

1.
가까웠던 그 옛날.
여름 날 저녁의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모깃불을 피워 놓은 채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구수한 옛 이야기를 듣던 유년의 그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게 되었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을 통해 술술 풀려나오던 전래동화나 옛 이야기의 그 재미성은 이젠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다. 뻔한 이야기 구조에도, 권선징악의 뻔한 도덕적인 주제에도, 얼키고 설킨 서사 구조의 재미성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들은 얘기지만 또 듣고 싶어 안달이었지 않은가.

2.
그런데 우리 작가들이 쓴 창작동화에서는 이런 구수한 재미성을 느낄 수가 없다. 웬지 딱딱하고, 웬지 낯설어 보이고, 웬지 어려워 보이고, 웬지 겉치장만 요란하고 알맹이는 없는 것 같아 두 번 다시 읽고 싶지가 않다. 어린아이들이 읽기에는 뭔가 딱딱하고 어려워 보이고, 어른들이 읽기에는 다소 유치해 보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이들은 우리의 창작동화라면 고개부터 설래설래 저으며 자꾸 멀어져만 가고, 만화나 텔레비전의 에니메이션에 넋을 놓고 있다. 우리 창작 동화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냉철하게 한 번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3.
소파 방정환의 동화는 전래동화와 창작동화의 중간 형태였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게 되었고, 6.25를 전후해서는 성인 소설가들이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썼다. 우리 아동문학계에서 창작동화가 본격적으로 쓰여지게 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당시의 작가들은 어떤 의도로 창작동화를 쓰게 되었을까? 전래동화의 천편일률적인 교훈성 주제를 탈피하고, 전래동화의 다소 천박한 재미성과 문학적 형상화의 미숙함을 극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인 작가들로부터는 유치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예술적 형상화에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어린이들의 놀이적 유희 본능을 망각한 것이다. 내가 쓴 창작동화가 동료 작가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쳐질까, 그리고 아동문학 평론가들의 예리한 분석력의 잣대에 의해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에 대해서는 고심했지만, 어린이들은 예술적 형상화와 작가의 주제의식보다는 이야기의 재미성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유희 본능은 간과해 버린 것이다.

4.
우리 아이들을 한 번 살펴 보기 바란다. 아이들은 그 추운 겨울에도 운동장에서 정신없이 뛰놀고, 그 무더운 땡볕 아래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놀이에 푹 빠져 있다. 텔레비전의 만화영화를 보다가도 재미 없으면 사정없이 채널을 바꾸어 버린다. 뭔가 딱딱한 설교조의 주제의식이 드러나거나, 사건의 흐름이나 상황이 동적이지 못하고 정적으로 정체되면 그만 하품을 하며 채널을 바꾸어 버린다. 그런데 창작동화는 어린이들의 놀이적 유희 본능에서 자꾸 멀어져만 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서사구조의 재미성에만 집착해 있는데, 작가들의 창작동화는 자꾸 재미성은 천박하다며, 재미성이 승하면 뭔가 예술적 형상화나 문학적 완성도가 손상이나 입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서사 구조에서 자꾸 재미성을 없애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미성 대신에 문학성을 즐기라고 강요하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아이들은 동화의 영역 밖으로 뛰쳐 나가고 있다.

5.
우리 아이들이 왜 창작동화를 싫어하는가? 그 1차적 책임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재미없는 작품 탓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동화나 소설들은 우선 국가 정책을 홍보하거나 인성 함양이라는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자꾸 어린이들을 설교하려 든다. 재미있는 서사 구조의 이야기로 그런 목적의식을 넌지시 심어주면 될 터인데도 작품을 읽자 마자 설교부터 하려 드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동화나 소설들은 우리와는 판이하다. 일본의 유명한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가 쓴 장편소설 <은하철도의 밤>은 그 심오한 철학성과 도덕성에도 재미라는 당의정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한 때 우리 아이들을 사로잡았던 만화영화인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 바로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다.

6.
우리의 초등학교 교과서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국정교과서 체제에서 검인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춘추전국 시대처럼 교과서가 출판되어 각 지역의 교육청이나 학교 운영위원회가 이를 심의하여 채택하는 시대가 빨리 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동화나 소설, 그리고 동시만큼은 재미성과 교시성(문학성)을 함께 아우르는 작품들이 수록되어야 한다. 교과서에 실리는 아동문학 작품들은 우선 재미성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성이란 만화적인 유치하고 말초적인 재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느껴 실컷 웃다가도 문득 아, 이렇게 웃을 일만은 아니구나 하면서 뭔가 자신을 뒤돌아 보게 만드는 성찰이 포함된 그런 재미를 말하는 것이다.


7.
우리의 창작동화에 전래동화나 옛 이야기의 구수한 재미성을 다시 복원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동화의 영역 밖으로 추방당한 아이들이 구수한 이야기의 향기에 이끌려 다시 되돌아 올 것이다. 문제는 창작 방법이다. 재미를 살리면서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하는 문학적 교시성도 아울러 심어주는 작품을 만드는 창작 방법은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몇 백년이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아이들에게 사랑 받아온 서양의 명작 동화들을 꼼꼼하게 읽으면 그 속에서 뭔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8.
우리 아이들에게 재미성을 듬뿍 안겨 주어야 한다. 그 재미성이란 당의정 속에 몸에 좋다는 쓰디쓴 교훈을 담아 그들의 입에 넣어 주어야 한다. 창작 동화를 재미있게 쓰자. 실컷 웃다가도 문득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하는 문학적 교훈을 담도록 하자.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투덜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쫓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찾아 보는 게 급선무이다.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일상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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