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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화창작법_선안나

가마실 / 설인 2011. 3. 20. 16:14

동화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 동화창작법 (1)

선안나 

머리말 

당신도 동화작가가 될 수 있다.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고, 그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어떤 작가들도 처음에는 초보였다.
문학의 길에는 왕도가 없으며, 홀로 가야만 하는 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혼자 걸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는 경험자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동화를 쓰고 아동문학을 가르치며, 동화작가의 길을 꿈꾸었던 수백 명을 만났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원했던 길을 걷고 있고, 아주 유명해진 작가도 여럿 있다. 물론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때의 꿈에서 멀어진 길을 걷고 있지만 말이다.
그들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깨달은 바로는,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소망의 간절함과 끈질긴 노력, 그리고 집중력이라는 거다. 반짝이는 재기보다 우직한 고집이 작가가 되려는 이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당신은 진심으로 문학의 길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꿈을 향해 걷기 시작하라. 서두르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걷다보면 원하는 그 자리에 언젠가 서 있게 된다. 믿어도 좋다.
하지만 이 점을 명심하라.
어떤 작가와 이론가가 쓴 창작법도 문학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창작법이란 같은 방향의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들이 그려놓은 나름의 지도일 뿐이며, 가고 싶은 곳으로 당신을 데려가는 일은 오직 스스로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참, 그리고 그 길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니, 원하는 곳으로 쉽고 빠르게 가려는 마음도 일찌감치 접어두는 것을 잊지 마시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창작의 괴로움과 기쁨을 맛보러 떠나보자.

1. 동화의 독자는 누구일까?

책은 읽히기 위해 쓴다. 많이 읽힌다고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독자가 외면하면 보람이 없다. 따라서 동화 창작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독자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독자를 기대하고 상정하는가에 따라 글쓰기의 자세와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동화의 독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어린이들이다.
그런데 어른들 또한 동화의 막강한 독자이기도 하다. 아동잡지 및 아동도서 출판사 편집자, 어린이 책 비평가, 동료작가, 연구자, 언론, 도서관 사서, 학부모, 선생님, 서점 관계자, 논술학원 및 독서지도사, 어린이 책 독서 토론모임……. 이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책을 선택하며 구매한다.
또 늘어나는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이라든지,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는 우수 작품 지원 및 도서 구입 제도 등 체계적 시스템도 동화의 수요를 일정하게 보장한다. 뿐만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이처럼 동화의 독자는 도처에 있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연령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당신의 책을 누가 사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독자의 사랑을 받는 동화책은 얼마든지 많다. 프로다운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다면 인세 수입 또한 상당할 것이다.
허황한 장밋빛 비전을 제시하려는 것으로 보이는가?
물론 실제 현실은 꽤 골치가 아프다. 독자 대중이 반드시 좋은 책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며, 수많은 개인과 단체들은 저마다 어린이 책에 영향력을 발휘하려 한다. 저 막강한 어른 독자들은 동화작가의 지지자나 후원자일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방해꾼이거나 꽉 막힌 검열자일 수도 있다. 한국의 출판과 마케팅, 유통 구조는 몹시 열악하며, 인세 수입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동화를 쓰기에 지금처럼 여건이 좋았던 일찍이 없었다는 얘기다.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여건도 상대적으로 나아졌고, 어린이와 그들 문화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근대 창작 문학이 발생한 이후로 줄곧 ‘애들이나 보는’ 주변문학쯤으로 취급되던 동화 장르가, 이제는 주목과 선망을 받고 있다. 더구나 사회가 진화할수록 어린이 관련 문화는 더욱 섬세하고 다채롭게 발전해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당신이 동화작가를 꿈꾼다면, 단단한 각오와 함께 보다 큰 꿈과 포부를 가져도 좋다. 당신이 어떤 작가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당신 소망의 크기와 노력과 집중력이 미래의 모습을 만든다.
이쯤에서 다시 정리하자.
당신은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동화를 써야 할까?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어린이여야 한다.
어른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어른의 눈치를 살피는 글쓰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그런 실수를 기꺼이 저지른다. ‘IQ동화’ ‘EQ동화’ ‘성교육동화’ ‘논술동화’ 등등, 그 시대 소비자의 관심사에 영합하는 출판물이 넘치도록 있어왔다. '역사’ ‘환경’ ‘빈부격차’ 근래의 ‘판타지’ 열풍까지, 유행적 소재를 뒤쫓는 작가들도 넘치도록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필자 역시 어린이 뒤에 서 있는 어른들의 그림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맛? 기득권자나 기존 이데올로기로터 자유로워지려면 인식과 경험, 그리고 내공이 필요한 법! 그러나 출발하는 여러분은 보다 빨리, 과감히, 진실을 말하기 바란다.
타인의 이데올로기나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들에 신경 쓰지 말고, 정직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시라.
동화작가로서 당신은 두 가지만 잊지 않으면 된다.
어린이가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글을 쓰는 것. 정말 좋은 동화책은 어른 독자도 틀림없이 좋아할 테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청소년이나 어른을 위한 동화도 물론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동화를 처음 쓰고자 하면서 어린이를 배제한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태도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현실적인 힘과 권력을 가진 어른들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이미 풍성하다. 어린이 몫으로 여겨져 온 동화까지 전유하여 어른문화의 다채로움을 더하기보다, 자기 표현력을 갖지 못한 어린이들의 침묵에 귀 기울임이 옳다.
위 보다는 아래를,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을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길과 마음- 공평무사를 지향하고 생명력을 북돋우는 정신에서 동화가 나온다. 어린이의 동화에 이러한 ‘동화다움’의 원형이 있다. 이러한 장르적 속성을 충분히 체득한 뒤, ‘붓 가는 대로’ 자유로운 글쓰기를 해도 때는 늦지 않다.

2. 쓰기 전에 먼저 읽자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쓰기 안내서는 입을 모아 말한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써라.”
진부하지만, 필자 역시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두말이 필요 없는 진리기 때문이다. 더러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책 읽기에 자발적으로 몰입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책 자체가 좋아서 읽고 또 읽다보면 문학적 감수성과 소양이 쌓이고, 내면에 쌓인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들기 마련이다.
동화책이 좋아서 읽고 또 읽다보니 동화를 쓰고 싶어진 경우인가? 그렇다면 곧바로 글쓰기를 시작하라. 그게 아니라 단지 창작 욕구 때문이라면(혹은 다른 이유 때문이더라도) 먼저 동화책을 충분히 읽는 게 좋겠다. 왜냐면 동화에는 고유한 호흡과 리듬, 어법과 세계관이 있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해도 알아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동화를 읽고 또 읽으며 스스로 자연스럽세 느껴보는 게 제일 낫다.
소설이나 드라마 습작을 충분히 했다고 동화를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 구성력이나 형상화 능력이 탄탄해질 수는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동화는 어린이처럼 바라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어린이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순 소박한 형태로 인간과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은, 다른 장르의 습작으로 배울 수 없다.
그런데 주의할 점 한 가지.
눈에 띄는 아무 동화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지 말 것! 잘못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겨우 이 정도야? 별 것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동화가 너무 많다. 잘못하면 동화는 대충 써도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동화작가 되기가 너무 쉽고 책 내기도 너무 쉽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이에게는 좁은 문으로만 보일 수 있겠으나, 객관적으로 평가하건대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니 좋은 동화책을 애써 찾아 읽도록 하라. 외국동화를 권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지만(이미 번역서가 지나치게 많이 읽히므로), 사고와 상상력의 자유로움 면에서 한국 동화는 아직 한계가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세계의 어린이 독자가 검증한’ 좋은 동화책을 읽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한국의 역사 현실 속에서 싹트고 자란 우리 동화를 굳이 찾아 읽어야 한다. 남다른 근대사를 한반도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아냈고 작가들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눈 여겨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작품보다 말과 의식을 앞세우는 일은 삼가야겠으나, 내가 누구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작가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하다. 좋은 동화책을 정선하여 충분히 읽고 어떤 내적 기준을 갖게 되면, 그때는 다양한 수준의 동화를 섭렵해도 상관없겠다. 작품에 대한 안목과 비판력이 생기면 취할 점과 버릴 점을 스스로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동화책은 언제까지 읽어야 할까?
순수한 독자로서 동화 읽기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아도 좋겠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글을 쓰는 데 무엇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동화책을 읽고 나면, ‘글쓰기’를 생활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남들의 명작을 읽기보다 어눌하고 서툴망정 자기 생각을 자기 말로 표현하는 훈련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습작 틈틈이 동화책을 읽는 일은 여전히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된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소화해 냈군.” “이 작가의 문장은 리듬감이 넘치는 걸. 나도 한번 따라 해봐야지.” “묘사가 너무 많아. 지루해. 나라면 대화문으로 처리했을 텐데.” 등, 당신은 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작품에 집중하게 되고, 어떤 의견을 갖게 될 것이다.
순수한 독자였을 때와는 다르게, 당신은 ‘작가의 눈’을 새로이 갖게 된 것이다. 

 

 3. 꾸준히 많이 써라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에디슨의 말이다.
그러나 1%의 영감도 99% 노력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언제라도 받아 적을 준비가
되어 있고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 소용이 된다.
글쓰기는 어느 정도 기능이다. 집중하고 노력하는 만큼 능력이 향상된다.
이 시대 최고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인 조정래의 경우도 대학 시절 선생으로부터 ‘재능이 없으니 글을 쓸 생각도 하지 말라’는 요지의 모진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실망하고 포기하기는커녕 ‘과연 그런지 두고 보자’는 오기를 품고 지독하게 노력했고,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긋는 뛰어난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의 책들은 순수문학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동시에 대중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어, 10권 분량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에 이어 12권 분량의 <아리랑>도 잇달아 밀리언셀러를 기록하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소모적 일상을 철저히 거부하고 창작에 시간과 노력을 전적으로 쏟아 붓는 엄청난 단절과 고집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해를 삼킨 아이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 당선된 김기정 작가의 경우, 총 10편의 단편 동화마다 각각 2-3편의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고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작품을 얻기 위해,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심혈을 기울여 다른 기법으로 써보았던 것이다. 작가의 또 다른 단편 동화인 <두껍선생님>의 경우에는, ‘시점’ ‘공간’ ‘시간대’ ‘주제의 일관성’ 등의 기준으로 무려 7개의 버전까지 있단다. 작가는 그 가운데 한편을 골라 계간잡지에 발표하였으나, 그나마 미흡하게 느껴져 출판을 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1년 넘게 묵혀두고 있다. 가벼운 글쓰기와 조급한 출판이 주류를 이루는 아동문학 풍토에서, 최선의 작품을 위해 글쓰기의 고된 노역을 몇 번이고 감수하는 우직한 작가 정신과 끈기는 습작생뿐 아니라 동화작가들의 귀감이 된다. 출판에 열심인 작가는 얼마든지 많지만, 더 깊이 뿌리 내리고 충분히 열매를 익혀 내기 위해 오래 고심하고 진통하는 작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열심히만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꾸준히 노력하면 ‘괜찮은’ 동화작가가 될 수 있고, 더욱 간절히 노력하면 ‘좋은’ 동화작가가 될 수는 있다고 본다. 혹시 당신에게 작가적 자질이 있다면, 어쩌면 ‘훌륭한’ 동화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어진 능력이 어떠하든, 일단 문학의 길을 택했다면 농사꾼처럼 우직하게 글 농사를 지어야 한다. 노력한다고 글이 꼭 써지는 것도 아니고, 쓴 글이라고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종일, 또는 일주일 내내 글을 쓰려고 노력해도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때도 있고, 몇 달을 힘들여 썼지만 휴지통에 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머리를 식히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 기간이 너무 오래 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다작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써야 좋은 작품도 내놓을 수 있다.
단, 한 가지 원칙은 세우시라. 많이 쓰되, 항상 자신이 앞서 쓴 글을 넘어서는 작품을 쓰고자 ‘노력’할 것!


4. 창작을 위한 첫 걸음

1) 혼자 쓸까, 창작교실에 나갈까?

→ 문학은 원래 혼자 하는 것이다. 독자가 아직 성장과 변화의 과정에 있기에 동화 창작은 훨씬 더 까다로운 점이 많지만, 창작법을 굳이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화책을 즐기다 보면 책이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필요하면 동화작법이나 아동문학 이론서를 참고하면 된다.
<말괄량이 삐삐>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나, <해리포터>를 쓴 조앤 K 롤링이 동화작법을 따로 배우지 않았듯, <꿈을 찍는 사진관>의 강소천이나 <몽실언니>의 권정생 등 한국의 동화작가들도 혼자 동화를 썼다. 사실 90년대 이전의 한국 동화작가들은 다 그렇게 동화를 썼고, 신춘문예나 잡지에 투고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작가로 성장해갔다. 지금은 시대가 훨씬 변화무쌍해졌
지만, 그렇다고 창작 원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당신도 혼자 얼마든지 동화를 쓸 수 있다.

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창작교실을 이용해도 좋다. 자기 글에 대한 객관적 평을 받을 수 있고, 동료끼리 문학적 자극을 주고받으며 창작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필자의 경우도 문학사숙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습작을 시작하였는데, 그 이전에는 창작공부를 심도 있게 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1년 동안의 강도 높은 수련이 큰 도움이 되었다. 비평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었고, 문학이 내 길이라는 확신도 얻을 수 있었다.
동화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든 통신 매체를 통해 지도를 받든, 현대의 다양한 문화를 필요할 때 이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는 꼭 염두에 두시라.
첫째, 최상의 창작 프로그램을 신중하게 골라 참여할 것. 장인의 마인드로부터 상인의 마인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둘째 각종 문학 교육 섭렵에 긴 시간 보내지 말 것. 창작 교실에는 장점뿐 아니라 폐해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문학은 자기 내부의 광맥을 파는 일이지 바깥에서 쇼핑하듯 구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창작할 시간, 어떻게 낼까?

막연히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보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지키는 게 좋다. 프로 작가는 필요할 때 알맞은 매수와 내용의 글을 언제라도 써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을 기르려면 양적인 노력부터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하자면 이렇다.

⁍ 하루도 빠짐없이 쓴다.

“글을 쓰지 않은 날은 밥도 먹지 마시오.”
습작을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단호히 하신 말씀이다. 그 정도 각오를 하라는 비유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밥을 굶으란다. 자신과 한 약속이 있으니까, 사정이 있는 날도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다만 ?? 줄의 글이라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날마다 쓴다는 원칙과 함께 일주일, 한 달, 백일 단위 등으로 목표 매수와 편수를 정하는 것이 좋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1편, 최소한 한 달에 2편정도 단편 동화를 꼭 완성하도록 한다. 매수에 관계없이. 분량이 길든 짧든, 각 작품은 주어진 분량 안에서 문학으로서의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 문장 한 문장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작품을 완결시키기가 어렵다. 정해진 기간 안에 일정한 분량을 써내는 능력도 중요하므로, 처음에는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만큼 매수와 편수를 정하고 기간 내에 써낸다.
작품의 완성도는 계속 새로운 글을 써나가며, 또 여러 번 고치는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추구해도 늦지 않다.

* 날마다 두 시간 이상 쓴다.
창작에 순수하게 집중하는 시간이 최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두 시간 정도는 규칙적으로 낼 필요가 있다. 컴퓨터 앞에 앉는다고 글이 바로 써지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아이디어를 굴려보거나 진행 중이던 글을 읽으면서 감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홀로 ‘한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은 책상 앞을 떠날 핑계거리를 자꾸 만들어 낸다. 손톱을 깎거나 방을 정리하는 둥, 딴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채봉 작가의 경우엔 자신이 하도 자주 일어나기에, 처음에는 다리를 의자에 묶어 놓았단다.
“안 되겠어. 꼼짝 말고 가만히 앉아서 동화만 써!”
자신을 혼내면서 의자에 다리를 묶어놓는 동화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동화작가가 되려는 당신에게도 그런 동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최소 두 시간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글쓰기에 바치는 시간의 ‘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노력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거니와, ‘집중해서 오래 노력하는 힘’이 바로 능력이자 실력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 글쓰기와 일상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여건을 갖기란 쉽지 않다. 동화작가가 된 후에도 인세수입만으로 가정 경제를 꾸려가긴 어렵고 다른 일을 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소설에 비해 동화는 분량과 호흡이 짧아서 다른 일을 겸하면서 창작을 하기에 유리하고, 생활 속에서 싱싱한 글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전업 작가의 삶을 원하고 또 그럴 수 있다면 자기 귀에 들리는 북소리를 따라 가시라. 그러나 다른 일을 겸해야 한다면,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되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필자도 아이가 세 살이었을 때 창작을 시작하였는데,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자꾸 리듬이 끊겼다. 그래서 한번은 아이한테 화를 크게 냈고,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달래며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애들을 위한 글을 쓰겠다면서, 이게 무슨 짓이람?’ 사실 아이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달라진 것은 엄마였지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는 ‘가족: 특히 아이 >동화쓰기>일상의 대소사’로 삶의 가치 순위를 먼저 매겼다. 이 말은 정신적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지, 그 순서대로 시간을 많이 들였다는 뜻은 아니다. 글을 쓰다가도 아이가 일단 다가오면 먼저 안아주고, 하려는 말을 들어주며, 자신이 엄마에게 첫 번째로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음으로 동화쓰기가 가사노동보다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글부터 쓰고 틈이 나면 집안일을 처리하였다. 집은 당연히 자주 엉망진창이었지만 나는 슈퍼우먼이 될 생각은 없었다. 집안의 큰일이나 아이의 학교 행사 등에는 참가하려 노력했지만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모임이나 만남은 절제했다. 창작을 하기 전에는 많은 시간을 일반적인 주부들과 비슷하게 보냈는데, 문학의 길을 택하면서부터 서서히 나 자신이 내 일상의 주체가 되어갔던 것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 자기 자신이 되어 간다는 것은 동화처럼 낭만적인 과정이 아니다. 주어진 다기한 환경과의 총체적 싸움, 지략과 전략을 총 동원해야 하는 긴 투쟁이다. 때문에 먼저 인생의 가치 기준을 정하고, 보다 소중한 것을 중심으로 24시간을 배분하여 써야 한다. 어떤 가치를 우위에 두고 보다 많은 시간을 썼는가에 따라, 10년 뒤 당신이 서 있는 자리는 극명하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 언제 어디서나 쓴다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동화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창작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창작자의 마인드를 유지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며, 다른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구상하고 얼개를 짜거나 줄거리를 발전시킨다. 미쳐야 미친다. 동화 작가가 되려면 동화와 연애해야 한다. 특히 습작 초기에는 시도 때도 없이 동화를 생각하고, 보다 많은 시간 동화를 쓰고자 하고, 마음처럼 써지지 않아 고통스럽기도 한 것이 당연하다. 열정을 쏟아봄으로써 자신이 진정 동화와 일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작가 수첩과 필기구는 기본으로 항상 지니고 다닐 것. 약속 시간까지 틈이 있거나, 일을 보기 위해 순서를 기다려야 할 때, 그 밖에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보거나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할 것. 훈련이 되면 장소가 어디이든, 주위가 시끄럽든 말든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영감이나 아이디어는 순식간에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하므로, 메모하는 습관은 필수적이다. 영감은 집중하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긴장이 풀리는 느슨한 순간에 찾아오므로 언제 어느 때나 받아 적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필자는 수락산 가까이 살 때 운동을 할 겸 자주 산에 올라가 해지는 광경을 보고 내려오곤 했는데, 쓰건 안 쓰건 필기구는 늘 가지고 다녔다. 오후의 햇살이 데워놓은 바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거나, 때론 나뭇가지 사이로 떠 있는 낮달을 보면서, 해와 달이 무슨 이야기인가 ‘동화작가’에게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받아 적는 느낌으로 산에서 몇 줄 씩 쓰곤했였는데, 두 달쯤 후에 단편 동화 <해와 달이 들려준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일상이나 창작이 주는 부담을 내려놓은 가장 홀가분한 시간과 장소에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쓰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동화 한 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를 쓰는 신현득 시인은 전?? 안이든, 길거리에서든, 시상이 떠오르면 바로 공책과 필통을 꺼내놓고 적기 시작한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지 않고,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공책에 동시를 꾹꾹 눌러쓰는 시인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이의 모습이다. 동화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도 이런 열정과 천진함이다.

3) 창작 공간을 마련하자
형편이 된다면 자기만의 방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자기만의 창작 공간을 집안 어딘가에 마련하라. 구석방이나 다락방, 거실 한쪽이나 부엌 귀퉁이도 상관없다. 책상 하나, 컴퓨터와 인쇄기 한 대, 책꽂이, 원고 및 자료를 정리할 파일, 문구 등 꼭 필요한 비품을 갖추면 작가의 공간으로 충분하다.
필자도 처음 7년 동안은 22평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생활하면서 동화를 썼다. 안방에 놓여있던 책꽂이 달린 내 책상 위에 타자기 한 대를 사서 올려놓는 것으로 공간 마련은 끝이었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냈는데, 동화작가가 된 뒤 출판사와 첫 장편을 계약하고 받은 계약금으로 타자기를 컴퓨터로 바꾸었다.
글을 쓰는 엄마 근처에서 큰애는 그림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자기가 본 풍경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책상 앞은 엄마가 자기의 ‘일’을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인식했고, 다른 집안일을 할 때와는 달리 웬만하면 이런저런 주문을 하거나 말을 걸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 때 쓴 작품들을 모아 첫 단편동화집『길 잃은 페르시아 왕』을 펴냈는데, 그 해 출판문화협회에서 주는 ‘한국어린이도서상’ 문학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는, 그럴듯한 집필 공간을 갖추어야 창작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어떤 조건 속에서건 자신의 ‘일’과 ‘일터’를 스스로 존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점을 분명히 인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형편 닿는 대로 차차 보다 독립적인 창작 공간을 지향해 나가시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오늘날도 여전히 필요하다. 특히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에게는.

 

3장: 무엇을 쓸까?

문학은 인식과 형상으로 이루어진다. 작가가 세상에 대해 느낀 바, 특히 작품에 담긴 내용이 인식이 되겠고,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언어로 표현해낸 것이 형상이다. 작가가 갖고 있는 정신과 표현력 두 측면이 모두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사고 자체가 틀에 박혀 있으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고, 반대로 아무리 열린 정신을 갖고 있어도 글로 표현해 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여기까지는 모든 문학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동화작가가 되려면 이에 더하여 요구되는 자질과 기법이 있다. 어린이처럼 세상을 보고 느끼는 마음과, 어린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별별 ‘어른’이 다 있듯, ‘어린이’도 물론 저마다 다르다. 더구나 어린이는 성장과 변화의 과정에 있고, 연령과 환경에 따라 개인차도 대단히 크다. 따라서 어른 문학에 비해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유의해야 할 점도 많다.
그러나 너무 많은 생각을 미리 할 필요는 없다. 일단 동화를 한 편씩 써나가면서, 체험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좋다.

1) 소재와 주제는 자유롭게

동화의 소재와 주제가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신경 쓰지 말고 소재든 주제든 자유롭게 고르시라. 자잘한 일상의 생활 이야기로부터 현실 시공간을 벗어난 환상 이야기까지, 고대의 신화로부터 까마득한 미래의 시대까지 동화 소재의 시공간은 제약이 없다. 폭력, 죽음, 전쟁, 사랑과 성, 역사, 종교, 철학 등 어떤 주제도 다룰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권정생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첨예한 문제를 다루고 있고, 정채봉의 <오세암>은 설악산에 전해져 오는 불교 설화를 보편적 창작동화로 풀어냈다. 송재찬의 <돌아온 진돗개 백구>는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진도까지 되돌아온 진돗개의 실화를 소재로 취하였고, 황선미의 <나쁜 어린이표>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초등학생의 학교생활을 소재로 삼았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E ‧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은 영원과 순간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동화화 하였다.

이처럼, 동화의 소재와 주제는 끝없이 다양하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로 다루는가에 있어 소설과 동화는 차이를 가진다. 즉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설가는 독자 수준에 상관없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충실히 표현하면 되는데 비해, 동화작가는 어린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과 적절한 ‘표현의 정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어린이가 처해 있는 생의 단계를 참고한다.

그렇다면 각 어린이 독자에게 적절한 표현의 방법과 정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걸 체득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을 위한 좋은 책들을 골라 읽으면서 내용적 형태적 감을 잡는 수도 있다. 그 또래 독자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동학 관련 서적을 읽는 것도 어린이 발달 단계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물론 그 무엇에 앞서, 동화를 계속 써야 한다! 써 가면서 대상 독자에게 부적절한 내용이나 표현을 찾아내고 버려가는 한편, 알맞게 표현하는 힘을 계속 길러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기준이 필요하다면, 인생의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동문학은 영유아기와 유년기 청소년기까지의 독자- 즉 인생의 초반부에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어른문학은 청년기와 중년기 장년기 독자- 인생의 중반 이후에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삼는다. 노년기에는 일반문학 보다 아동문학이 더욱 알맞을 것이지만, 그 내용은 좀 차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생의 초반부에 있는 어린이는 어떤 특성을 보이나? 어린이는 경험도 지식도 지혜도 부족하다. 객관적 인식과 비판력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자기중심적이고 상상적으로 사고한다. 모든 면에서 미약하면서도 우선적 사랑과 배려를 받는 존재이기에, 어른에 비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동화에는 이러한 어린이의 특성, 관심사, 경험, 욕망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동화 장르에 흔한 해피엔드의 결말은 현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생의 초반부에 있는 사람들의 낙관적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해피엔드는 또한 어떤 경우에도 완전히 좌절하지 않는 인간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조급하고 도식적인 해피엔드의 결말은 경계되어야 마땅하지만,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낙관적이고 따뜻한 태도 자체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 점이야말로 동화를 동화답게 하는 요소이니까 말이다.

어린이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가 어른의 경험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어도 좋다. 그러나 어린이의 관심사와 흥미와 세계관이 반영되지 않은 개인적 자아를 동화에 투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가 공유할 수 없는 중년과 장년 노년의 심리를 말이다. 예컨대 피곤하고 지친 마음,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 의심하고 체념하는 마음, 쉽사리 순응하고 타협하는 마음, 과거 지향적이거나 현실 고착적인 사고, 정치적 사회문화적 각종 기존 이데올로기의 투사…등등.

초보자는 물론이고, 많은 작가들이 어린이들에게 뭔가를 ‘주고자’ 하는 신념으로 동화를 쓴다. 그러나 필자는, 당신이 어린이에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를 바란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진정한 동화작가들은 다 후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3)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쓴다.

독자가 어린이라는 점은 늘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그렇다고 독자를 먼저 고려한 글쓰기는 하지 마실 것.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나답게 표현’하는 일이다.
물론 ‘동화라고 생각되는 양식’ 안에서 말이??.
일단 창작을 할 때는, 동화의 소재는 이래야 하고, 주제는 이런 것이 바람직하고, 패턴은 대체로 이렇고… 등등의 조언은 싹 잊는 게 좋다. ‘남들의 말’이 자유로워야 할 당신의 사고를 구속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말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실제 허위의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예 (1)>
어느 작가나 다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책으로 내지 않고 버린 원고가 꽤 된다. 그 중에는 200자 원고지 500매 분량의 장편 동화도 있다. 개략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현실의 특정 공간이 무대이되 주인공이 시간의 문을 지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신라 시대를 체험하고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공간은 잘 아는 곳이었기에 지리적 배경을 묘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고, 신라 시대의 문물 자료 조사도 열심히 했다. 줄거리를 만들고 플롯까지 구성해서 여러 달에 걸쳐 장편을 완성했지만, 쓰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완성하고 난 후에도 어딘지 흔쾌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몇몇 지인에게 작품을 보여주었더니, 도대체 이런 작품을 왜 썼냐는 냉정한 비판이 돌아왔다. 문학적 감각이나 삶에 대한 태도 면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평가였기에, 나는 기꺼이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결정을 하면서 어찌나 개운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주제의식이 빈약했다. 신라 시대 문물과 생활의 재현이라든지, 동일한 공간에 교차되는 시간의 흐름 같은 ‘소재’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으나,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절실한 이야기’가 없었다.
즉 나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진정한 관심과 흥미에 따른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작품은 결국 ‘소재주의’ 이상이 되지 못했다. ‘괜찮아, 괜찮아’하는 자신의 허위의식에 이끌려가면서도, 한편으로 ‘아닌데. 아니야’ 하는 무의식의 속삭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타인들의 냉정한 비판을 즉각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2)>
어느 날 낮에 잠깐 선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늘색 작은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에메랄드 빛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을 마주보는 순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우주적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본래적 자아를 대면했다는 느낌이었고, 깨어나서도 하늘빛 작은 고양이의 모습과 눈빛이 생생하게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한 달 쯤 뒤, 몹시 화나는 일이 생겼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더 힘 있는 상대였기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분이 몹시 언짢은 상태였지만, 약속한 원고가 밀려 있었기 때문에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별한 글감도 말하고 싶은 주제도 없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적기 시작했는데, 힘센 존재들에 의해 소외되고 억눌린 주인공 앞에 파란 고양이가 나타나 분노를 풀어낼 수 있는 판타지 공간으로 안내하는 이야기가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파란 고양이를 따라 고양이 마을로 간 주인공 견우는 특별한 수업을 받는다. 마음껏 욕하고 소리 칠 때 나팔꽃이 활짝 피는 나팔꽃방, 진흙으로 미운 놈을 반죽하여 실컷 밟아주는 진흙방을 거치며, 아이들은 “그 무엇도 나를 누를 수 없어…” 하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리고 거품탕, 포도탕, 아이스크림탕 등에서 마음껏 놀다가 마지막으로 맑
은 물에 몸을 씻고 나온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억눌린 견우가 마음속 분노를 해소하고, 본래적 자아를 차차 회복함으로써 현실과 맞설 힘을 길러간다는 내용이다.

원고를 쓰는 사이에 나는 화가 났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수정 보완하는 과정도 내내 즐거웠다. 이렇게 완성된 동화가 저학년 장편 <고양이 마을 신나는 학교>인데, 이 책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꽤 자주 만나게 된다. 독서치료 활동에도 이 책이 많이 활용되고 있는 걸 보면,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절실함이 어린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았는가 한다. 어린이야말로 억울할 때가 많으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대표적 약자이기에 말이다.

4) 잘 아는 이야기를 쓴다.

초보 시절에는, 크고 멀고 막연한 데서 소재를 찾기보다 가까운 데서 구체적인 글감을 찾는 게 좋다.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내용과 분량으로,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소화해내는 경험을 쌓는 게 우선이다.

필자도 첫 장편을 쓰기 전에 20편 이상의 단편 동화를 썼는데, 그 가운데 절반도 단편 동화집에 묶이지 못했다. 쓰고 싶은 열망이 넘쳤고 많은 시간을 창작에 바쳤지만, 어떤 소재를 어떻게 다루고 어떤 이야기를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중요하다고 믿고 열심히 매달려 쓰고, 좋은 소재로 터무니없이 빈약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그치기도 했다.

오래 집을 지은 이는 주어진 건축 재료를 보고 그것을 활용하여 지을 수 있는 집의 전체적 그림을 떠올릴 수 있고, 돌을 이용하여 조각을 하는 이는 원석의 재질과 색깔과 무늬만 보아도 그 돌이 어떤 형상의 조각이 되어야 할지 안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스러운 ‘감’을 가질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숱한 재료의 파손과 시행착오의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동화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학적 재능이 있고 창작 이론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동화’라는 장르가 요구하는 속성을 ‘몸’으로 감지하고 구현해내는 ‘기술’을 체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때문에 초보자 시절에는 자기의 느끼는 바를 동화로 차분히 형상화하는 기능을 탄탄히 익힐 필요가 있다.

필자에게 유년기 체험은 습작 초기나 지금이나 주요한 작가적 자산이다. 그런데 아주 초기에 썼던 작품들은 남들과 나눌만한 이야기가 되지 못해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초보 작가 시절에 쓴 동화는 소품으로 몇 편 책에 실려 있다. <꽃담>, <내 동무 찔찔이>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그에 비해 작가 생활 15년째에 쓴 <삼거리 점방>은 문예진흥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한국아동문학상 수상작이 되었으며, IBBY(국제아동도서협의회)가 선정한 “Outstanding Books for Young People with Disabilities 2007"에 수록되기도 했다.

유년기 체험뿐 아니라, 현재적 생활을 소재로 삼아 쓴 이야기도 많다. 『떡갈나무 목욕탕 』에 실린 <놀이동산의 꼬마유령>은 아이를 데리고 가끔 갔던 놀이시설이 주요 배경이고, <살쾡이양의 저택>은 짝을 찾을 수 없는 양말이 수두룩한 우리 집 실태가 아이디어가 되었다. <꽃을 삼켜버린 천사>는 텔레비전에서 본, 팔과 다리가 모두 없는 구원이의 모습과 웃음이 마음을 떠나지
않아 써보게 된 작품이다.

글쓰기도 어느 정도 기능이라 많이 쓰면 형상화 능력도 좋아진다. 그러나 초보 단계이건 오래 창작을 해 왔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소재, 인물, 사건, 배경, 스토리, 기타 등등), 작품이 설득력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은 틀림없다.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일상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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