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 동화창작법 (1)
선안나
머리말
당신도 동화작가가 될 수 있다.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고, 그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어떤 작가들도 처음에는 초보였다.
문학의 길에는 왕도가 없으며, 홀로 가야만 하는 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혼자 걸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는 경험자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
필자는 지난 20년간 동화를 쓰고 아동문학을 가르치며, 동화작가의 길을 꿈꾸었던 수백 명을 만났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원했던 길을 걷고 있고, 아주 유명해진 작가도 여럿 있다. 물론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때의 꿈에서 멀어진 길을 걷고 있지만 말이다.
그들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깨달은 바로는,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소망의 간절함과 끈질긴 노력, 그리고 집중력이라는 거다. 반짝이는 재기보다 우직한 고집이 작가가 되려는 이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당신은 진심으로 문학의 길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꿈을 향해 걷기 시작하라. 서두르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걷다보면 원하는 그 자리에 언젠가 서 있게 된다. 믿어도 좋다.
하지만 이 점을 명심하라.
어떤 작가와 이론가가 쓴 창작법도 문학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창작법이란 같은 방향의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들이 그려놓은 나름의 지도일 뿐이며, 가고 싶은 곳으로 당신을 데려가는 일은 오직 스스로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참, 그리고 그 길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니, 원하는 곳으로 쉽고 빠르게 가려는 마음도 일찌감치 접어두는 것을 잊지 마시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창작의 괴로움과 기쁨을 맛보러 떠나보자.
1. 동화의 독자는 누구일까?
책은 읽히기 위해 쓴다. 많이 읽힌다고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독자가 외면하면 보람이 없다. 따라서 동화 창작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독자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독자를 기대하고 상정하는가에 따라 글쓰기의 자세와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동화의 독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어린이들이다.
그런데 어른들 또한 동화의 막강한 독자이기도 하다. 아동잡지 및 아동도서 출판사 편집자, 어린이 책 비평가, 동료작가, 연구자, 언론, 도서관 사서, 학부모, 선생님, 서점 관계자, 논술학원 및 독서지도사, 어린이 책 독서 토론모임……. 이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책을 선택하며 구매한다.
또 늘어나는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이라든지,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는 우수 작품 지원 및 도서 구입 제도 등 체계적 시스템도 동화의 수요를 일정하게 보장한다. 뿐만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이처럼 동화의 독자는 도처에 있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연령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당신의 책을 누가 사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독자의 사랑을 받는 동화책은 얼마든지 많다. 프로다운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다면 인세 수입 또한 상당할 것이다.
허황한 장밋빛 비전을 제시하려는 것으로 보이는가?
물론 실제 현실은 꽤 골치가 아프다. 독자 대중이 반드시 좋은 책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며, 수많은 개인과 단체들은 저마다 어린이 책에 영향력을 발휘하려 한다. 저 막강한 어른 독자들은 동화작가의 지지자나 후원자일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방해꾼이거나 꽉 막힌 검열자일 수도 있다. 한국의 출판과 마케팅, 유통 구조는 몹시 열악하며, 인세 수입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동화를 쓰기에 지금처럼 여건이 좋았던 일찍이 없었다는 얘기다.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여건도 상대적으로 나아졌고, 어린이와 그들 문화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근대 창작 문학이 발생한 이후로 줄곧 ‘애들이나 보는’ 주변문학쯤으로 취급되던 동화 장르가, 이제는 주목과 선망을 받고 있다. 더구나 사회가 진화할수록 어린이 관련 문화는 더욱 섬세하고 다채롭게 발전해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당신이 동화작가를 꿈꾼다면, 단단한 각오와 함께 보다 큰 꿈과 포부를 가져도 좋다. 당신이 어떤 작가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당신 소망의 크기와 노력과 집중력이 미래의 모습을 만든다.
이쯤에서 다시 정리하자.
당신은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동화를 써야 할까?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어린이여야 한다.
어른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어른의 눈치를 살피는 글쓰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그런 실수를 기꺼이 저지른다. ‘IQ동화’ ‘EQ동화’ ‘성교육동화’ ‘논술동화’ 등등, 그 시대 소비자의 관심사에 영합하는 출판물이 넘치도록 있어왔다. '역사’ ‘환경’ ‘빈부격차’ 근래의 ‘판타지’ 열풍까지, 유행적 소재를 뒤쫓는 작가들도 넘치도록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필자 역시 어린이 뒤에 서 있는 어른들의 그림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맛? 기득권자나 기존 이데올로기로터 자유로워지려면 인식과 경험, 그리고 내공이 필요한 법! 그러나 출발하는 여러분은 보다 빨리, 과감히, 진실을 말하기 바란다.
타인의 이데올로기나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들에 신경 쓰지 말고, 정직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시라.
동화작가로서 당신은 두 가지만 잊지 않으면 된다.
어린이가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글을 쓰는 것. 정말 좋은 동화책은 어른 독자도 틀림없이 좋아할 테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청소년이나 어른을 위한 동화도 물론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동화를 처음 쓰고자 하면서 어린이를 배제한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태도는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현실적인 힘과 권력을 가진 어른들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이미 풍성하다. 어린이 몫으로 여겨져 온 동화까지 전유하여 어른문화의 다채로움을 더하기보다, 자기 표현력을 갖지 못한 어린이들의 침묵에 귀 기울임이 옳다.
위 보다는 아래를,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을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길과 마음- 공평무사를 지향하고 생명력을 북돋우는 정신에서 동화가 나온다. 어린이의 동화에 이러한 ‘동화다움’의 원형이 있다. 이러한 장르적 속성을 충분히 체득한 뒤, ‘붓 가는 대로’ 자유로운 글쓰기를 해도 때는 늦지 않다.
2. 쓰기 전에 먼저 읽자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쓰기 안내서는 입을 모아 말한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써라.”
진부하지만, 필자 역시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두말이 필요 없는 진리기 때문이다. 더러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책 읽기에 자발적으로 몰입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책 자체가 좋아서 읽고 또 읽다보면 문학적 감수성과 소양이 쌓이고, 내면에 쌓인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들기 마련이다.
동화책이 좋아서 읽고 또 읽다보니 동화를 쓰고 싶어진 경우인가? 그렇다면 곧바로 글쓰기를 시작하라. 그게 아니라 단지 창작 욕구 때문이라면(혹은 다른 이유 때문이더라도) 먼저 동화책을 충분히 읽는 게 좋겠다. 왜냐면 동화에는 고유한 호흡과 리듬, 어법과 세계관이 있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설명해도 알아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동화를 읽고 또 읽으며 스스로 자연스럽세 느껴보는 게 제일 낫다.
소설이나 드라마 습작을 충분히 했다고 동화를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 구성력이나 형상화 능력이 탄탄해질 수는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동화는 어린이처럼 바라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어린이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순 소박한 형태로 인간과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은, 다른 장르의 습작으로 배울 수 없다.
그런데 주의할 점 한 가지.
눈에 띄는 아무 동화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지 말 것! 잘못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겨우 이 정도야? 별 것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동화가 너무 많다. 잘못하면 동화는 대충 써도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동화작가 되기가 너무 쉽고 책 내기도 너무 쉽다. 동화작가를 꿈꾸는 이에게는 좁은 문으로만 보일 수 있겠으나, 객관적으로 평가하건대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니 좋은 동화책을 애써 찾아 읽도록 하라. 외국동화를 권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지만(이미 번역서가 지나치게 많이 읽히므로), 사고와 상상력의 자유로움 면에서 한국 동화는 아직 한계가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세계의 어린이 독자가 검증한’ 좋은 동화책을 읽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한국의 역사 현실 속에서 싹트고 자란 우리 동화를 굳이 찾아 읽어야 한다. 남다른 근대사를 한반도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아냈고 작가들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눈 여겨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작품보다 말과 의식을 앞세우는 일은 삼가야겠으나, 내가 누구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작가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하다. 좋은 동화책을 정선하여 충분히 읽고 어떤 내적 기준을 갖게 되면, 그때는 다양한 수준의 동화를 섭렵해도 상관없겠다. 작품에 대한 안목과 비판력이 생기면 취할 점과 버릴 점을 스스로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동화책은 언제까지 읽어야 할까?
순수한 독자로서 동화 읽기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아도 좋겠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글을 쓰는 데 무엇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동화책을 읽고 나면, ‘글쓰기’를 생활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남들의 명작을 읽기보다 어눌하고 서툴망정 자기 생각을 자기 말로 표현하는 훈련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습작 틈틈이 동화책을 읽는 일은 여전히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된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소화해 냈군.” “이 작가의 문장은 리듬감이 넘치는 걸. 나도 한번 따라 해봐야지.” “묘사가 너무 많아. 지루해. 나라면 대화문으로 처리했을 텐데.” 등, 당신은 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작품에 집중하게 되고, 어떤 의견을 갖게 될 것이다.
순수한 독자였을 때와는 다르게, 당신은 ‘작가의 눈’을 새로이 갖게 된 것이다.
3. 꾸준히 많이 써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3장: 무엇을 쓸까?
문학은 인식과 형상으로 이루어진다. 작가가 세상에 대해 느낀 바, 특히 작품에 담긴 내용이 인식이 되겠고,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언어로 표현해낸 것이 형상이다. 작가가 갖고 있는 정신과 표현력 두 측면이 모두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사고 자체가 틀에 박혀 있으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고, 반대로 아무리 열린 정신을 갖고 있어도 글로 표현해 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여기까지는 모든 문학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동화작가가 되려면 이에 더하여 요구되는 자질과 기법이 있다. 어린이처럼 세상을 보고 느끼는 마음과, 어린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별별 ‘어른’이 다 있듯, ‘어린이’도 물론 저마다 다르다. 더구나 어린이는 성장과 변화의 과정에 있고, 연령과 환경에 따라 개인차도 대단히 크다. 따라서 어른 문학에 비해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유의해야 할 점도 많다.
그러나 너무 많은 생각을 미리 할 필요는 없다. 일단 동화를 한 편씩 써나가면서, 체험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좋다.
1) 소재와 주제는 자유롭게
동화의 소재와 주제가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신경 쓰지 말고 소재든 주제든 자유롭게 고르시라. 자잘한 일상의 생활 이야기로부터 현실 시공간을 벗어난 환상 이야기까지, 고대의 신화로부터 까마득한 미래의 시대까지 동화 소재의 시공간은 제약이 없다. 폭력, 죽음, 전쟁, 사랑과 성, 역사, 종교, 철학 등 어떤 주제도 다룰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권정생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첨예한 문제를 다루고 있고, 정채봉의 <오세암>은 설악산에 전해져 오는 불교 설화를 보편적 창작동화로 풀어냈다. 송재찬의 <돌아온 진돗개 백구>는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진도까지 되돌아온 진돗개의 실화를 소재로 취하였고, 황선미의 <나쁜 어린이표>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초등학생의 학교생활을 소재로 삼았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E ‧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은 영원과 순간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동화화 하였다.
이처럼, 동화의 소재와 주제는 끝없이 다양하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로 다루는가에 있어 소설과 동화는 차이를 가진다. 즉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설가는 독자 수준에 상관없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충실히 표현하면 되는데 비해, 동화작가는 어린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과 적절한 ‘표현의 정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어린이가 처해 있는 생의 단계를 참고한다.
그렇다면 각 어린이 독자에게 적절한 표현의 방법과 정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걸 체득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을 위한 좋은 책들을 골라 읽으면서 내용적 형태적 감을 잡는 수도 있다. 그 또래 독자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동학 관련 서적을 읽는 것도 어린이 발달 단계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물론 그 무엇에 앞서, 동화를 계속 써야 한다! 써 가면서 대상 독자에게 부적절한 내용이나 표현을 찾아내고 버려가는 한편, 알맞게 표현하는 힘을 계속 길러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기준이 필요하다면, 인생의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동문학은 영유아기와 유년기 청소년기까지의 독자- 즉 인생의 초반부에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어른문학은 청년기와 중년기 장년기 독자- 인생의 중반 이후에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삼는다. 노년기에는 일반문학 보다 아동문학이 더욱 알맞을 것이지만, 그 내용은 좀 차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생의 초반부에 있는 어린이는 어떤 특성을 보이나? 어린이는 경험도 지식도 지혜도 부족하다. 객관적 인식과 비판력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자기중심적이고 상상적으로 사고한다. 모든 면에서 미약하면서도 우선적 사랑과 배려를 받는 존재이기에, 어른에 비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동화에는 이러한 어린이의 특성, 관심사, 경험, 욕망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동화 장르에 흔한 해피엔드의 결말은 현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생의 초반부에 있는 사람들의 낙관적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해피엔드는 또한 어떤 경우에도 완전히 좌절하지 않는 인간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조급하고 도식적인 해피엔드의 결말은 경계되어야 마땅하지만,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낙관적이고 따뜻한 태도 자체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 점이야말로 동화를 동화답게 하는 요소이니까 말이다.
어린이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가 어른의 경험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어도 좋다. 그러나 어린이의 관심사와 흥미와 세계관이 반영되지 않은 개인적 자아를 동화에 투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가 공유할 수 없는 중년과 장년 노년의 심리를 말이다. 예컨대 피곤하고 지친 마음,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 의심하고 체념하는 마음, 쉽사리 순응하고 타협하는 마음, 과거 지향적이거나 현실 고착적인 사고, 정치적 사회문화적 각종 기존 이데올로기의 투사…등등.
초보자는 물론이고, 많은 작가들이 어린이들에게 뭔가를 ‘주고자’ 하는 신념으로 동화를 쓴다. 그러나 필자는, 당신이 어린이에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를 바란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진정한 동화작가들은 다 후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3)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쓴다.
독자가 어린이라는 점은 늘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그렇다고 독자를 먼저 고려한 글쓰기는 하지 마실 것.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나답게 표현’하는 일이다.
물론 ‘동화라고 생각되는 양식’ 안에서 말이??.
일단 창작을 할 때는, 동화의 소재는 이래야 하고, 주제는 이런 것이 바람직하고, 패턴은 대체로 이렇고… 등등의 조언은 싹 잊는 게 좋다. ‘남들의 말’이 자유로워야 할 당신의 사고를 구속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말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실제 허위의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예 (1)>
어느 작가나 다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책으로 내지 않고 버린 원고가 꽤 된다. 그 중에는 200자 원고지 500매 분량의 장편 동화도 있다. 개략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현실의 특정 공간이 무대이되 주인공이 시간의 문을 지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신라 시대를 체험하고 다시 현대로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공간은 잘 아는 곳이었기에 지리적 배경을 묘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고, 신라 시대의 문물 자료 조사도 열심히 했다. 줄거리를 만들고 플롯까지 구성해서 여러 달에 걸쳐 장편을 완성했지만, 쓰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완성하고 난 후에도 어딘지 흔쾌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몇몇 지인에게 작품을 보여주었더니, 도대체 이런 작품을 왜 썼냐는 냉정한 비판이 돌아왔다. 문학적 감각이나 삶에 대한 태도 면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평가였기에, 나는 기꺼이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결정을 하면서 어찌나 개운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주제의식이 빈약했다. 신라 시대 문물과 생활의 재현이라든지, 동일한 공간에 교차되는 시간의 흐름 같은 ‘소재’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으나,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절실한 이야기’가 없었다.
즉 나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진정한 관심과 흥미에 따른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작품은 결국 ‘소재주의’ 이상이 되지 못했다. ‘괜찮아, 괜찮아’하는 자신의 허위의식에 이끌려가면서도, 한편으로 ‘아닌데. 아니야’ 하는 무의식의 속삭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타인들의 냉정한 비판을 즉각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2)>
어느 날 낮에 잠깐 선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늘색 작은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에메랄드 빛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을 마주보는 순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우주적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본래적 자아를 대면했다는 느낌이었고, 깨어나서도 하늘빛 작은 고양이의 모습과 눈빛이 생생하게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한 달 쯤 뒤, 몹시 화나는 일이 생겼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더 힘 있는 상대였기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분이 몹시 언짢은 상태였지만, 약속한 원고가 밀려 있었기 때문에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별한 글감도 말하고 싶은 주제도 없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적기 시작했는데, 힘센 존재들에 의해 소외되고 억눌린 주인공 앞에 파란 고양이가 나타나 분노를 풀어낼 수 있는 판타지 공간으로 안내하는 이야기가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파란 고양이를 따라 고양이 마을로 간 주인공 견우는 특별한 수업을 받는다. 마음껏 욕하고 소리 칠 때 나팔꽃이 활짝 피는 나팔꽃방, 진흙으로 미운 놈을 반죽하여 실컷 밟아주는 진흙방을 거치며, 아이들은 “그 무엇도 나를 누를 수 없어…” 하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리고 거품탕, 포도탕, 아이스크림탕 등에서 마음껏 놀다가 마지막으로 맑
은 물에 몸을 씻고 나온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억눌린 견우가 마음속 분노를 해소하고, 본래적 자아를 차차 회복함으로써 현실과 맞설 힘을 길러간다는 내용이다.
원고를 쓰는 사이에 나는 화가 났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수정 보완하는 과정도 내내 즐거웠다. 이렇게 완성된 동화가 저학년 장편 <고양이 마을 신나는 학교>인데, 이 책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꽤 자주 만나게 된다. 독서치료 활동에도 이 책이 많이 활용되고 있는 걸 보면,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절실함이 어린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았는가 한다. 어린이야말로 억울할 때가 많으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대표적 약자이기에 말이다.
4) 잘 아는 이야기를 쓴다.
초보 시절에는, 크고 멀고 막연한 데서 소재를 찾기보다 가까운 데서 구체적인 글감을 찾는 게 좋다.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내용과 분량으로,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소화해내는 경험을 쌓는 게 우선이다.
필자도 첫 장편을 쓰기 전에 20편 이상의 단편 동화를 썼는데, 그 가운데 절반도 단편 동화집에 묶이지 못했다. 쓰고 싶은 열망이 넘쳤고 많은 시간을 창작에 바쳤지만, 어떤 소재를 어떻게 다루고 어떤 이야기를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중요하다고 믿고 열심히 매달려 쓰고, 좋은 소재로 터무니없이 빈약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그치기도 했다.
오래 집을 지은 이는 주어진 건축 재료를 보고 그것을 활용하여 지을 수 있는 집의 전체적 그림을 떠올릴 수 있고, 돌을 이용하여 조각을 하는 이는 원석의 재질과 색깔과 무늬만 보아도 그 돌이 어떤 형상의 조각이 되어야 할지 안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스러운 ‘감’을 가질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숱한 재료의 파손과 시행착오의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동화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학적 재능이 있고 창작 이론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동화’라는 장르가 요구하는 속성을 ‘몸’으로 감지하고 구현해내는 ‘기술’을 체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때문에 초보자 시절에는 자기의 느끼는 바를 동화로 차분히 형상화하는 기능을 탄탄히 익힐 필요가 있다.
필자에게 유년기 체험은 습작 초기나 지금이나 주요한 작가적 자산이다. 그런데 아주 초기에 썼던 작품들은 남들과 나눌만한 이야기가 되지 못해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초보 작가 시절에 쓴 동화는 소품으로 몇 편 책에 실려 있다. <꽃담>, <내 동무 찔찔이>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그에 비해 작가 생활 15년째에 쓴 <삼거리 점방>은 문예진흥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한국아동문학상 수상작이 되었으며, IBBY(국제아동도서협의회)가 선정한 “Outstanding Books for Young People with Disabilities 2007"에 수록되기도 했다.
유년기 체험뿐 아니라, 현재적 생활을 소재로 삼아 쓴 이야기도 많다. 『떡갈나무 목욕탕 』에 실린 <놀이동산의 꼬마유령>은 아이를 데리고 가끔 갔던 놀이시설이 주요 배경이고, <살쾡이양의 저택>은 짝을 찾을 수 없는 양말이 수두룩한 우리 집 실태가 아이디어가 되었다. <꽃을 삼켜버린 천사>는 텔레비전에서 본, 팔과 다리가 모두 없는 구원이의 모습과 웃음이 마음을 떠나지
않아 써보게 된 작품이다.
글쓰기도 어느 정도 기능이라 많이 쓰면 형상화 능력도 좋아진다. 그러나 초보 단계이건 오래 창작을 해 왔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소재, 인물, 사건, 배경, 스토리, 기타 등등), 작품이 설득력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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