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笑곳 이야기/운문(신작)

(시) 기부 받은 붓꽃향기

가마실 / 설인 2013. 12. 12. 20:45

 

기부 받은 붓꽃향기

-성갑숙

 

붓꽃, 여섯 꽃잎 중에는

곧추서지 못하고 옆으로 누운 잎도 있지요

그러나 함께 웃어야 꽃을 피웠다고 하지요

 

순천장애인자립센터, 붓꽃향기 머금은 전화를 받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봄날 아지랑이 같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몽글몽글 그 무엇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고

그 분들은 시인 같은 말들을 쏟아놓았습니다

 

첫사랑을 앞에 둔 듯

무슨 말을 먼저 건네야할 지 몰라 머뭇거리다

오늘 강의를 또 마쳤습니다

붓꽃은 색깔도 다양해서

노랑 빨강 하양 하늘색이랑 자주색이랑 핑크빛으로

누구에게나 듬뿍 전할 줄 아는 그 재능을

도리어 기부 받고 말았습니다

 

옛날 대가들은 붓을 들어 줄줄줄 시를 쓴다지요

손에 붓을 들 수 없어도

붓꽃의 향기를 담아낼 줄 아는 사람들

 

그저 얻기 위해서는 그저 주어야한다며

멀쩡하다고들 하는 이들이 늘어지게 잠든 새벽에도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열고, 세상을 품고, 세상으로 향기를 전할 줄 아는

그 분들의 재능을

나는 내년에도 기부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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