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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동화) 소강남 갈대숲에 살고 싶어요

가마실 / 설인 2011. 4. 30. 08:09

(동화)

소강남 갈대숲에 살고 싶어요

 

 

                                                                    글 / 성갑숙

 

 

 

며칠째 주룩주룩 내리던 장맛비는 저녁 어스름이 내리자 숨을 죽였어요.

순천만 갈대숲으로 향하는 동천의 물줄기는 마치 황토색 아나콘다 같아요. 굵은 등허리를 이리 휘었다 저리 휘었다 하더니 꼬리를 들어 물장구를 힘차게 후려치고는 바다에 몸을 던지네요. 힘이 얼마나 센지 굽이 친 냇둑 가장자리가 뭉개져 내린 곳도 있어요.

나는 떠내려 갈까봐 냇바닥에 바짝 엎드렸어요. 비온 뒤 냇물은 흙탕물이 되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요. 배는 고픈데 낯선 곳이라 먹을거리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집을 나서지 말걸 그랬어요. 나는 죽도봉 밑 시누대나무집 장독대에서 탈출한 거북이거든요. 그 집에서는 매일 매일 따분했어요. 할머니가 아침저녁 먹이를 들고 오셔서 눈을 맞추어 주긴 했어도 하루 종일 어항 안에서만 살아야하니 좀이 쑤셨어요.

 

아참! 어쩌다 주말에는 신나는 날도 있었어요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손자 훈이가 대나무 사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날입니다.

“아이고, 내 새끼 어서오너라. 이제 이 할미보다 키가 더 컸구나.”

할머니가 훈이를 끌어안고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추실양이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훈이는 곧 장독대 앞으로 뛰어오니까요.

“구복아! 잘 살았어? 나 보고 싶었지?”

나는 끔벅 끔벅 눈인사를 하지요. 그러면 훈이는 나를 건져 올려 넓은 마당에 내려놓아 주어요. 나는 마음 놓고 온 마당을 바득바득 헤집고 다녀요. 나중에는 마루 바닥에도 방바닥에도 기어 다니며 별의 별 음식을 다 얻어먹어요.

 

그런데 한동안 훈이가 뜸했어요. 중학교 갈 준비한다고 바쁘다나요? 그래서 할머니 뵈러 올 시간도 없대요.

이제 훈이 기다리는 것도 지쳐 가는데 장맛비가 며칠째 퍼붓고 어항에 물이 넘치지 않겠어요. 나는 슬그머니 어항의 턱을 넘어서 바깥구경을 해 보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조금만 돌다가 들어가려했는데 어느 순간 길을 잃었어요. 그러다가 어쩌다가 동천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었어요.

할머니가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고 돌아오셔서 개운해 하시던 동천둑길 아래 이렇게 많은 물이 흐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러나 저러나 집 떠나 모험을 시작했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물줄기에 몸을 실어 보아야겠지요?

 

한참을 허우적댔어요. 그런데 갑자기 차가운 물이 동천 옆구리를 툭 치고 들어오네요.

“앗! 차거!”

“얘, 너 바보 아니야?”

“누, 누구야?”

어두컴컴한 돌무더기에서 왕방울만한 눈이 뒤룩거렸어요.

“이런 소용돌이 속에 몸을 싣다니…… 쯧! 쯧!”

나는 엉거주춤 왕방울눈 옆으로 기어들었어요.

“이럴 때는 그저 작은 개울을 찾아 들어야 다치지 않아.”

움찔하는 녀석의 아가미에서는 더운 물살이 왈칵 밀려났어요. 덩치가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오금이 저렸어요.

“여기는 동천과 옥천이 만나는 광장 밑이야.”

“옥천?”

“그래 옥천, 물이 옥 같이 맑고 푸르러 옥천이라 했지.”

“아!”

“너도 며칠 굶은 모양인데? 그러나 저러나 큰일이다.”

왕방울만한 큰 눈에 핏기가 가시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어요. 무언가 말 못할 고민이 있나 봅니다. 아니면 배가 고파 말할 힘이 없던지.

“물이 흐르는 한 먹이는 또 생기겠지.”

왕방울눈의 말속에는 한숨이 섞였어요.

“그러고 보니 무슨 문제가 있구나?”

“이 개천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문제야. 방생을 하지 말든지.”

“방생?”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였어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물고기들을 놓아주는 것이던가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왕방울눈은 동천에 방생된 비단잉어라네요. 아직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듬직해 보이는 왕방울눈은 옥천과 동천의 역사를 실타래 풀 듯 풀어놓았어요.

얼마 전 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큰비를 대비해서 개천 바닥을 긁어낸 것이며, 그로 인해 개천 식구들이 사라진 것이며, 방죽을 따라 너울대던 물풀 따위의 먹이가 없어진 것을 단숨에 읊어댔어요.

“너는 모르는 게 없구나.”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주워듣기도 하고 그래.”

 

주린 배를 움켜쥔 왕방울눈은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 내 등을 툭 치며 따라 오라 신호를 보냈어요.

물 속은 먹물같이 어두운데 왕방울 눈의 움직임이 워낙 느리고 커서 따라잡는데 문제가 없었어요.

옥천의 물줄기는 동천보다 훨씬 가늘어 몸이 자유로워졌어요. 앞서가던 왕방울눈이 사방이 뻥뻥 뚫린 벌집 같은 곳으로 들어가네요. 마치 자기 집에 온 양 나를 보고 들어오래요.

“물고기 아파트라는 곳이야. 여기 어디 먹을 것이 남아있을 것도 같은데……?”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왕방울눈이 곰팡이가 파르란 사료를 후후 불어 먹어보라 했어요.

나는 죽도봉 밑 시누대나무집이 생각났어요. 그곳은 매일 어항에 갇혀있으니 밥맛이 없었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준 먹이가 어항 구석에 쌓여있었는데 울컥 서러움이 북 바쳤어요.

“왜 그래?”

“아냐. 이 먹이 어디서 먹어본 듯해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던져준 사료야.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큰 냇가에도 먹이를 줘?”

“한때 그랬었지. 저 위 시민다리 위에서 저마다 한 움큼씩 쏟아놓으며 환호를 했었지.”

환호? 통 무슨 말인지 가늠할 수가 없네요. 환호를 받았다면 기분이 좋을텐데 왕방울눈은 잔뜩 부어있어요.

 

시민다리 밑 물막이언덕을 오르는 것은 젖 먹던 힘까지 쏟아야 했어요. 어둠이 깔린 다리 밑은 모두 잠들었는지 물 흐르는 소리만 쓸쓸했어요. 왕방울눈이 말했어요.

“내가 어장에서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여기 분위기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었데.”

“어떻게?”

“냇바닥과 양쪽 둑은 여러 가지 모양의 돌멩이와 이끼로 아기자기했고 물풀이 많아서 물 속 친구들이 마음대로 숨바꼭질도 할 수 있었대. 그리고 동네 개구쟁이들이 풍덩풍덩 피라미를 쫓느라 왁자지껄하던 곳이라는데…….”

“그런데 지금은 전부 시멘트로 단장했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요즘사람들은 운치보다 깨끗한 걸 좋아해. 이끼 끼는 것도 싫어하고 풀 속에서 벌레가 사는 것도 싫어해. 그래서 말끔히 정리한 거지.”

“그런데 왕방울눈, 너는 어째서 여기를 오게 되었어?”

“난 어장에서 자랐어. 어장은 어부들의 보호아래 엄마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해서 어른이 되면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곳이야. 나는 비늘이 비단처럼 예뻐서 비단잉어야. 내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어느 독지기가 덕분이야. 이 옥천이 삭막해지는 것이 싫어서 우리를 사다가 풀어놓은 거지.”

“와! 그랬구나. 어서 날이 밝아 네 옷을 보고 싶다. 그런데 그 뒤 뭐 달라진 것이라도 있었니?”

“많이 달라졌지. 저 위 다리를 건너는 사람 치고 그냥 지나친 사람은 없었어. 우리를 좀더 가까이서 보려고 냇가로 내려서서 먹이를 던지며 좋아했지. 그리고 천변에서 각종 문화행사도 치뤄지곤 했었어.”

“하루하루가 즐거웠겠구나.”

“그런데 그것이 얼마가지 못했어.”

“왜?”

“사람들 중에는 욕심이 많은 사람도 있어. 아름다운 것은 한곳에 두고 여러 사람이 함께 보면 더 즐거울 텐데 욕심쟁이는 그것을 몰라. 어느 날 밤 물고기아파트에서 잠을 자던 우리들의 친구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어.”

“사라지다니?”

“무서운 일이야.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데 속수무책이었어.”

“누가 데려간 거야?”

“얼마 뒤 알게 된 사실인데 욕심 많은 사람들의 짓이었어. 모두 잠든 밤에 물고기 아파트에 그물을 쳐서 친구들을 잡아다 자기 집에 가둬 놓았대.”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구.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친구들도 탈출을 하면 되니까.”

“탈출?”

“응, 나는 어항에서 살다가 탈출했어. 바깥세상이 궁금해서…… 혼자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왕방울눈이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다 말했어요.

“그런데 넌 거북이라 물 속에서도 육지에서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잖니.”

“그래 맞아. 네 친구들은 힘들겠구나. 어쨌거나 넌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그 뒤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진 모양인데 너는 왜 여기를 떠나지 못하니?”

“나도 모르겠어. 저 시민다리 위에서 조막손을 흔들던 아이들 때문일 거야.”

왕방울눈은 다리 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어요. 텅 빈 다리 위에는 쓸쓸한 밤바람만 스치고 지나갔어요.

 

나는 풀이 죽어있는 왕방울눈의 등을 툭 쳤어요. 날이 밝기 전 옥천 여행을 마치고 싶었으니까요. 또 한참을 위로 거슬러 오르다 보니 물막이 언덕이 또 버티고 있었어요. 이번에는 왕방울눈이 내 등을 툭 치며 말했어요.

“힘내. 이곳만 오르면 옛 선비의 맑은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이야.”

“옛 선비?”

호기심이 발동하니 갑자기 힘이 솟는 듯 했어요. 한참을 바둥거리다 도착한 곳에 임청대라는 정자가 고요히 서 있었어요. 마음을 항상 깨끗이 닦는 정자래요.

고요한 달빛이 다소곳이 내려앉은 정자 밑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어요. 그들은 곧은 자세로 나란히 앉아 밤이 깊은 줄도 몰랐어요.

바로 그때 눈앞에서 꼼지락 꼼지락 맛 나는 먹이 두 마리가 어른거렸어요. 나는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요. 물막이 언덕을 두개나 올랐으니 오죽 했겠어요. 나는 왕방울눈을 급히 불렀어요.

“왕방울눈. 여기 먹이가 있어. 하나는 너 먹어.”

나는 그중 하나를 덥썩 물었어요.

“안돼! 구복아!”

저만치 떨어져 있던 왕방울눈은 필사적으로 달려와 내 입을 툭 쳤어요.

그러나 이미 늦었어요.

“아악 ! 내 몸이 …… 내 몸이…….”

갑자기 내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어요. 온 사방이 깜깜해지면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어렴풋이 귓가에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무슨 소리인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어요. 그 때였어요.

“어~명이요!”

하고 벼락 치는 듯한 소리가 쩌렁 쩌렁 울려 퍼졌어요.

“어, 어명이라니?”

나는 눈을 번쩍 떴어요. 그리고 하마터면 또 한번 까무러칠 뻔했어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에요.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과 그 초가집 사립문밖에는 삼지창을 든 사람들이 늘어서 있어요. 모두 조선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어요.

“놀라지마. 여기는 조선시대야.”

누군가 내 뒤통수에 대고 소곤거렸어요. 고개를 돌리려고 했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방금 말한 너는 누구야?”

“나는 바둑돌이야. 너 등에 얹혀있지.”

“네가 왜 내 등에 있어?”

“어제 저녁 선비들이 올려놓고 빠뜨렸나봐.”

“그럼 내가 지금 바둑판이란 말이야?”

“그래 거북이 바둑판.”

“아이쿠! 내 신세야. 왕방울눈은 어찌 되었을까?”

“저 밑 냇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건 그렇고 무엇인가 큰 회오리바람이 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용히 해봐.”

바둑돌과 나는 숨을 죽였어요. 텔레비젼 사극에서나 봄직한 일들이 눈앞에 벌어졌어요.

“죄인은 의관을 갖추고 어명을 받들라!”

포도대장 옷을 입은 사람이 큰 소리로 호령했어요. 초가집 마당에 돗자리가 깔리고 조그만 상이 놓여졌어요. 집안에서는 목욕을 하고 관대를 갖추느라 바쁜 움직임이 있어보였어요.

이윽고 선비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어요. 얼굴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신을 신고 마당을 나오다 우연히 신이 벗겨졌어요. 선비는 조용히 신을 다시 고쳐 신고 수염을 가다듬고는 마당 가운데 나와 앉았어요. 이윽고 조그만 상 위에는 하얀 사발 하나가 올려 졌어요.

“저게 뭐야?”

나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사약이야.”

“사약?”

“그래. 죄 지은 사람에게 주는 약이래. 먹으면 죽게 돼.”

“뭐, 뭐라구? 저렇게 착하게 생긴 선비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도 잘 몰라.?

바둑돌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어요.

?정말 이해할 수 가 없어. 나는 2년 전에 이곳에 왔거든. 남들은 여기가 유배지라는데 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 귀양살이 왔다는 사람들이 모두 저 아래 흐르는 물처럼 맑은 정신을 가진 분들이야.”

“그럼 저 사람들은 왜 귀양을 왔을까?”

“나라 안에 큰 사건이 터졌대. 그 사건 터진 해가 무오년이라 무오사화라고 하는데, 무오사화는 나라에 공을 세운 훈구파와 시골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사림파가 서로 헐뜯게 되면서 일어난 사건이래. 그런데 임금님인 연산군은 사림파 선비들을 모두 귀양을 보냈대. 이곳은 조위라는 선비가 먼저 귀양을 와 있었는데, 그 뒤를 이어 오늘 사약을 받게 된 김굉필이라는 저 선비가 오게 되었어.”

“그럼 아직도 무오사화가 끝나지 않은 거야?”

“아냐, 지금은 그 무서운 무오년이 지나고 폭군이던 연산군도 돌아가신 갑자년이야.”

“그런 갑자년에도 사화가 있었구나? 시골에서 공부하던 선비가 무슨 죄가 있다고…….”

“글쎄 말이야. 어쨌든 사약을 받는 저 선비의 의연함이 무서울 정도야.”

“정말 그래. 그런데 조위라는 선비는 어떻게 되었어?”

“으응, 지난해 이곳에서 병으로 돌아가셨어. 정말 훌륭한 분이셨는데.”

선비가 마당을 나오자 갓을 쓴 마을 사람들이 집 주변에 웅성웅성 모여들었어요.

“그런데 담장 너머 모여든 저 사람들은 누군데 슬퍼하는 거야?”

“응, 이 지방 선비들이지. 스승을 잃게 되니 슬프기도 하겠지.”

“스승?”

“그래. 지난해 돌아가신 선비와 오늘 사약을 받는 저 선비는 귀양을 와서도 선비의 품위를 잃지 않았어. 죄 없이 귀양을 와도 임금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이 지방 선비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친 거야. 답답한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말이야. 당파싸움이 뭔지 정말 안타까워.”

바둑돌은 질금질금 울기 시작했어요.

“야아~ 야, 운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야. 네가 어떻게 좀 해봐. 저 선비를 살려야 되지 않겠니?”

“어명을 누가 어길 수 있겠어. 조선시대는 어림도 없어.”

“그럼 저 선비가 죽도록 그대로 둘 거야?”

“너나 나나 무슨 힘이 있다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만약 저 선비가 죽으면 나도 이 냇물에 빠져 죽을 거야.”

나는 선비를 구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워 가슴을 쳤어요.

드디어 마당에 앉아있던 선비가 몸을 일으켰어요. 북쪽을 향해 네 번 절을 하고는 단정히 사약 앞에 앉았어요. 약사발을 드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나는 눈을 꾹 감았어요.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임청대를 박차고 뛰어내려 버렸어요.

 

풍덩!

“조선시대는 싫어, 싫어!”

“구복아, 구복아, 정신차려!”

“싫어! 싫어! 사람들은 다 싫어!”

“구복아, 제발 눈 좀 떠봐. 조선시대는 왜 싫다는 거야”

“으응?”

나는 정신없이 울다가 눈을 떴어요.

왕방울눈이 걱정스런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여기가 어디야?”

“어디긴, 임청대 밑이지.”

“아앙!, 냇물에 빠져 죽기로 했는데.”

“무슨 소리야? 빠져죽어? 네가 냇물에 빠져죽는다? 지나가던 토끼가 웃겠다. 야, 그나저나 낚시 바늘에 구복이 네가 걸리길 다행이지. 내가 걸렸다면 벌써 국거리가 되었을 거야.”

임청대에서 나는 낚시밥을 덥썩 물었대요. 그런데 나를 건져 올린 사람이 거북이는 필요 없다며 다시 냇물로 던져주었다는 거예요. 정말 십년감수했어요.

그런데 조선시대는 정말 있기는 있었던가요? 지금이 조선시대가 아닌 게 정말 다행이에요.

아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나는 모험가잖아요?

“왕방울눈! 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자.”

“얘, 얘, 구복아 너 이제 모험 그만 두어야겠다.”

“아니, 무슨 소리야? 예로부터 이곳을 소강남이라는 이유가 있다면서?”

“그래, 경치가 좋아서 중국의 강남을 닮았다고 소강남이래.”

“그럼 신나게 둘러보아야지?”

“그건 사람들이 둘러볼만하다는 말이고, 너는 저 아래 순천만에 가서 마음 놓고 살려므나?”

“순천만?”

“그래, 순천만, 그곳은 습지보존지역으로 결정이 났대. 갯벌 식구들과 철새들의 낙원이지.”

밤새 힘든 모험에 찌든 구복이의 이마에 주름살이 확 펴졌어요.

“우와! 그런 곳이 있었어?”

“그렇단다. 지금쯤 칠면초가 무리지어 선홍색으로 피어있을 것이고, 가을이 되면 더욱 아름다워 지는 곳이야.”

구복이는 눈을 감았어요. 저녁 무렵 노을빛이 물길 따라 굽이치는 갯벌 그림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래 그곳에 가자. 어서 가자.”

재촉하는 구복이를 바라보는 왕방울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요.

“나는 못 가.”

“왜?”

“나는 짠물에서 못 살아. 나 걱정 말고 너는 어서 여길 떠나.”

“너 없이 어떻게 살아.”

“걱정 마, 그곳에 가면 가을바람이 갈대를 스치며 정겹게 속삭여 줄 것이며, 철따라 흑두루미, 청둥오리, 검은머리갈매기가 날아와 먼 우주의 소식을 전해줄 거야. 또 날이면 날마다 칠게, 망둥어, 짱둥어 등 갯벌식구들이 찾아와 숨바꼭질 하자할 것이니 무슨 걱정이니? 부디 잘 가서 잘 살아라.”

구복이는 왕방울눈을 뒤로하며 눈물을 끔벅끔벅 삼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