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숲 속에서 | ||
글쓴이 : 아동문예 날짜 : 11-06-30 10:39 | ||
개나리 울타리 너머, 아이들의 수다소리 넘나드는 독서방에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독서방 아이들을 보면 그저 좋아서 꼬리가 떨어질 듯 흔들어댑니다. 그런 강아지를 보고 오요요요! 간드러지게 웃어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비비탄인가 뭔가 하는 총알을 연발로 쏘며 즐거워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폭력의 두려움을 모르는 아이 가슴에 사랑을 심어 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강아지를 소재로 동화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강아지 이름을 짓고 강아지가 이 곳으로 오게 된 사연을 담아 총 쏜 아이에게 내밀었습니다. 마치 반성문을 바친 아이처럼 그 아이 표정을 살폈습니다. 마지막장을 넘긴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총 안 쏠게요.” 그 후 동화쓰기로 밤잠을 설치게 되었으나 독서방 아이들의 검정으로 만족해야만 한 것은 시인이라는 굴레가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한 가지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이쪽저쪽 기웃댄다는 질책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항상 목마름으로 남았고, 시인의 마음이 곧 해맑은 아이 마음이라는 생각으로 울타리를 넘게 되었습니다. 일간신문 신춘문예에서의 고배는 약이 되었는지 등불 같은 백목련 흐드러지게 핀 날 아동문예 문학상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울안 작품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동화쓰기 여기가 기착지가 아니라 출발지라는 것을 잘 압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겠음을 약속드립니다.
*약력
● 창녕 가마실 출생.
●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졸업
● 순천문인협회 회장. 국어논술리더 원장
● 시집 『달 가는 쪽으로 걸어가기/한림』, 개인시화전: 숨고르기 전
월간 <아동문예><제236회 아동문예문학상> 동화부문 당선작 잠 못 이루는 층층이
성 갑 숙 “철꺽!” “철꺽!” “촤르르르르, 촤르륵!” 셔터 올라가는 소리가 납니다. “히~유!” 층층이는 부석부석 부운 눈을 비볐습니다. “달그락!” 이번에는 큼직한 유리문도 활짝 열렸습니다. “와우! 이 신선한 공기…….” 지난밤 층층이의 코를 찌르던 괴괴한 냄새가 1층 다리에서 2층 옆구리로 3층 겨드랑이로 4층 머리 꼭대기까지 쫓겨 올라가더니 옥상문틈을 비집고 휘이잉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숨 막히도록 답답한 어둠 속에서 층층이를 구해낼 구세주가 나타난 것입니다. 납작한 빵모자를 쓰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 참 순해 보이는 아줌마는 새벽마다 층층이 잠을 깨우는 청소부입니다. 오늘도 아줌마는 군청색 작업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옷자락이 얼룩덜룩하고 소독약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다 조글조글 주름진 얼굴에는 예쁜 곳이라고 한 곳도 찾아볼 수 없어도 층층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아줌마입니다. “아줌마, 제발 제 옆구리부터 살펴보세요. 지난밤 마지막 손님이 아무래도 실례를 한 것 같아요.” 층층이는 2층 옆구리를 들썩들썩 댑니다. 층층이는 요즘 아줌마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자꾸 말을 건네고 싶어 안달입니다. 층층이가 사는 곳은 4층 상가 건물입니다. 아줌마의 바쁜 손길은 층층이의 다리에 묻은 흙먼지부터 풀썩풀썩 털어내기 시작합니다. 1층에 있는 은행에는 365일 자동코너가 있고 층층이가 있는 쪽으로 뒷문이 나 있습니다. 그러니 날이 밝자마자 손님이 들어오지요. 2층은 당구장인데 늦은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엽니다. 3층은 층층이의 두 겨드랑이 밑으로 오른쪽은 미용실이 있습니다. 왼쪽은 치과가 있습니다. 층층이의 머리 꼭대기 4층은 학원으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층층이 발끝에서 머리꼭대기까지 퉁탕퉁탕 밟고 오르내립니다. 다른 건물처럼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때로 속상한 일도 있지만 층층이는 그 속상한 일마저도 요즈음은 소중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마음속 깊이 꼭꼭 새긴답니다. 층층이 세수가 끝이 날쯤 낯익은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침 일찍 무거운 짐을 진 택배 아저씨입니다. 쿵쾅쿵쾅 오릅니다. 층층이의 다리를 밟고 옆구리를 밟고 겨드랑이를 밟은 아저씨는 들고 있던 짐을 철퍼덕 내팽개치고는 구부정한 허리를 쭉 폈습니다. 그리고 부연 입김을 푸우 뱉으며 한마디 하는군요. “이놈의 계단은 언제나 끝이 나나. 요즘같이도 편리한 세상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이 어디 있담.” 한겨울에도 주책없이 흐르는 땀을 한 손으로 스윽 닦은 아저씨는 다시 짐을 어깨에 멥니다. 층층이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맨 꼭대기까지 오르는 아저씨의 무거운 발걸음은 층층이의 온몸을 짓이겨 놓은 듯 합니다. 그래도 층층이는 아저씨가 밉지 않습니다. 심심찮게 찾아주니까요. “주르륵! 처컥! 처컥! 처컥!” 이번엔 또 누굴까요? “처컥 처컥… 쿠다당!” “에그머니! 이게 무슨 소리야?” 층층이의 다리가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아유! 저런. 여남은 살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넘어져 있습니다. 조그만 고무바퀴가 쪼르르 몇 개 달려서 보기에도 버거운 신을 신었습니다. 아마 꼭대기 학원까지 오를 모양입니다. “안돼! 위험해!” 한번 엉덩방아를 찧은 사내아이는 툭툭 털고 일어나 난간을 움켜쥐며 다시 오르기 시작합니다. 골목 개구쟁이들이 많이 신는 블레이드라는 신인데 정말 무거워 보입니다. 바닥에 달린 조그만 바퀴는 유연하기도 하지요. 누르는 힘이 발가락인지 뒤꿈치인지에 따라 주륵! 주륵! 앞뒤로 잘도 구릅니다. 사내아이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한 계단 한 계단 턱을 툭툭 차며 안간힘을 쏟습니다. 층층이의 옆구리와 겨드랑이가 얼얼해 옵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도록 아파오지만 층층이는 참습니다. 그리고 그 사내아이가 내려올 때를 걱정합니다. 사내아이가 학원으로 다 오르기도 전에 한 무더기 꼬맹이들이 저마다 손에 무언가 한 봉지씩 들고 올라옵니다. “후루룩! 쩝쩝! 후룩! 후룩!” “야금야금 냠냠!” 아유! 저 먹성. 울긋불긋 비닐봉지에 싸인 과자는 불량식품 같은데요. "얘들아, 배탈 날라.”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것을 다 먹은 꼬맹이는 친구 것을 넘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뺏기지 않으려는 꼬맹이는 이 구석 저 구석 피하며 야단입니다. 그러다 한 꼬맹이가 비명을 지릅니다. “아이, 몰라몰라! 내 아이스크림!” 곧 울음보가 터질 것 같습니다. 층층이의 왼쪽 겨드랑이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은 철버덕 물이 되어 번지기 시작합니다. “에이 녀석들, 한겨울에도 얼음과자를 먹다니. 저러니 치과에 들락거리지.” 층층이는 안쓰러운 마음에 겨드랑이가 축축이 젖어 오는 것도, 얼얼하게 시린 것도 잠시 잊었습니다. 치과 문이 딸그락 닫히니 혼이 빠져나간 듯 조용합니다. “흐느적 휘~이~청.” “흐느적 휘~이~청.” 아찔하게 오르는 이 아저씨는 또 누구일까요? 대낮부터 어디서 기분 좋게 한잔 걸친 모양입니다. 가만 보니 당구장 단골손님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당구장 문 열 시간이 됐습니다. “아저씨. 너무 많이 마셨어요. 그러다 당구알이나 제대로 맞히겠어요? 걱정없다구요? 그래요 아저씨 오늘은 옆에서 구경만 하세요.” 그런데 아저씨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서성거립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데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담배꽁초. “앗, 안돼요 아저씨! 들어가셔서 재떨이에……!” 이미 늦었습니다. 불기가 식지 않은 담배꽁초가 아저씨의 구둣발 밑에서 사정없이 으깨지고 있습니다. 층층이의 옆구리가 화상을 입는가 싶더니 시꺼먼 담뱃재로 땜질이 됐습니다. 그래도 층층이는 그 아저씨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뒤이어 “똑~똑! 똑~똑!” 뾰족구두 아가씨가 예쁜 소리를 내며 올라옵니다. 매끈한 다리 위에 찰랑찰랑 주름치마가 정말 잘 어울립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질 모양입니다. 나올 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층층이는 갸웃갸웃 상상을 해봅니다. 어머! 그런데 예쁜 아가씨 입에서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집니다. "퇘!" “앵! 껌이잖아.” 오물오물 예쁜 입에 있던 껌을 휴지에 싸서 휴지통에 넣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껌은 층층이의 겨드랑이에 찰싹 달라붙습니다. 누군가 뒤이어 밟기 전에 치우는 사람이 있어야 할텐데……. "척! 척! 척! 척!…… 두당탕탕!……." 치과로 학원으로 미용실로 향하는 발걸음 발걸음. 학원 갈 시간 늦었다고 집에서 꾸중을 들었는지 퉁퉁 부어터진 아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치과 앞에서 벌벌 떨고 서있는 아이, 괜찮아 괜찮아 달래느라 진땀 빼는 엄마, 자전거를 타고 와서 보관대에 묶지 않고 낑낑대며 꼭대기까지 오르는 아이, 층층이는 아예 눈을 감았습니다. 오뚝 서 있던 껌덩이는 이제 납작해 져 까만 점으로 붙어 있겠지요? 만신창이가 된 층층이는 이제 말할 힘도 없어졌습니다. ‘끄응! 밤늦게까지 버틸려면 차라리 한숨 자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때입니다. “가위 바위 보.” “통통!” “가위 바위 보.” “통!” “가위 바위 보.” “통통통통…….” “탕탕탕 통탕통탕 탕!” “오잉! 요 예쁜 소리는?” 층층이는 한쪽 눈을 찡긋 뜨고 귀를 기울입니다. “아~잉, 나 안 해!” “에쿠쿠! 우리 새침이가 또 삐졌구나.” 후훗, 무슨 소린가 했네요. 층층이에게 어쩌다 이런 즐거운 날도 있답니다. 지금 고사리 같은 손을 허리춤에 올려 붙인 꼬마 새침이는 층층이 옆구리 2층에 있습니다. 새침이 엄마는 3층 겨드랑이 밑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얘얘, 빨리 올라가려면 가위 바위 보를 잘 해야지.” 층층이는 2층 옆구리를 비비 꼬며 새침이를 위로합니다. 새침이가 가위 바위 보에서 많이 졌나 봅니다. 새침이가 그 자리에 그만 쪼그려 앉습니다. 그리고 동그란 엉덩이를 달싹달싹합니다. “통통통통…….” 엄마가 할 수 없이 내려옵니다. “우리 새침이는 화난 모습도 예뻐.” 새침이를 포근히 안은 엄마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앉아있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새침이가 가랑이 밑으로 손가락 하나를 폅니다. 층층이 옆구리를 꼭꼭 누르네요. 층층이의 가슴이 따뜻해옵니다. “아! 이대로 깜깜한 밤이 왔으면…….” 밖은 지금 어둠이 내리나 봅니다. 도시의 하늘은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층층이의 나이가 많은 탓일까요? 아니면 더 높이 올라가면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층층이가 사는 건물은 곧 증축을 한다는데 위로 3층을 더 올리면 북 두칠성, 처녀자리, 사자자리 등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층층이는 즐겁지 않습니다. 건물이 높아지면 층층이 앞에 엘리베이터도 설치한답니다. 그러면 층층이는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찾는 이가 적으면 아줌마의 손길도 뜸해 질 것입니다. 먼지가 쌓여 눅눅해진 곳에 쓸쓸한 나날을 보낼 생각을 하면 요즘 층층이는 하루하루 잠을 이룰 수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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