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신문 게재)
다시 무엇이 되어
성갑숙
선택 받아야만 줄 선다.
둘레를 빙 돌아
고철 울타리
종량제 바람에 놀란 명함 한 장
울타리 밖을 기웃거린다
목마른 세상
산 같은 이야기 쓸어안고
푸른 하늘 꿈꾸는 신문지더미
땀 흘려서 고물 되나
고물 된 세상은 고통이다
다시 태어나야 하리
소주병에 고삐 풀린 이십원 인생도
삼십원 맥주병에 쏟아버린 사랑도
부대끼며 서로의 아픔 귀 기울이며
헌 책 손 까만 눈동자
길을 연다
-시 재활용 쓰레기장 전문-
한줄기 소나기가 지상에서 사라져 가고 눅눅한 기운이 어깨를 짓누른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력감에 빠진 하루가 사라지고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마모되어 돌아가는 육신에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 그곳을 가자! 망가지고 이지러진 몸둥아리로도 다시 무엇이 되고자 꿈틀대는 곳. 푸른 하늘 가득 꿈을 키우는 곳.
열람실 구석자리 수북이 쌓인 폐지더미에 시선이 꽂힌다. 한달에 두어번씩 들리시던 할아버지께서 무슨 연유인지 발길을 끊으셨다. 특히 신문지를 모아놓으면 고마워하며 가져 가셨는데 연락처라도 알아두었으면 아쉬워하길 벌써 두달이다.
나는 팔을 걷어부쳤다. 끈을 찾아 나란히 늘여놓고 폐지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폐지는 명함 크기만 되어도 재활용이 되며 폐지의 질은 우유팩이 제일 좋다. 그 다음은 신문지, 기타 종이상자와 각동 코팅지는 함께 분류한다. 일손이 더디어질수록 그동안 폐지관리에 얼마나 허술했는지 고개가 숙여진다. 원생들이 남긴 과제물 나부랭이를 따로따로 모아두었으면 번거로움이 없었을텐데 조각이 나뒹굴 때마다 신문지 갈피에 손쉽게 끼워버린 것이 또 다른 일거리를 장만했다. 할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묵직한 뭉치 세 개를 짐칸에 싣고 퇴근하는 길목 재활용센타를 들어섰다. 지난해 들렀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뭔가 질서정연해진 모습에 어리둥절해져 돌아보니 고철이던 울타리가 벽돌로 바뀌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폐지 나부랭이가 바깥 나들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시 미관상 새 단장을 한 모양이다.
혼자 들기 벅찬 신문지 세 뭉치 합해야 삼천원. 그러나 이곳에 오면 생기가 돈다. 고물 되어 뒹굴던 생이라도 무엇이나 다시 꿈을 키운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 눈만 뜨면 억억하며 무너지는 사회에서 몇십원도 안되는 종이 조각에 연연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라 치부하기엔 우리는 너무나 지쳐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는 퇴색하고 마모되어 제 기능을 잃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슴마저 싸늘히 식혀서야 되겠는가. 다시 태어나고자 폐지더미에서 울타리 밖을 기웃거리는 명함이여 힘을 내자. 비록 삶의 무게가 지탱하기 힘들지라도 따뜻한 가슴 모두어 푸른 꿈을 품자. 우리는 무엇인가 될 수 있음에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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