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감상 000편

제 33 편 '먼지야, 자니?' 이 상 교

가마실 / 설인 2010. 9. 19. 23:04

제 33 편 먼지야, 자니? 이 상 교


      

책상 앞에

뽀얀 먼지.

"먼지야, 자니?"

손가락으로

등을 콕 찔러도 잔다.

찌른 자국이 났는데도

잘도 잔다.      (2006)


먼지는 그 부피나 의미의 크기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물질이다. 한 시학자에 따르면 먼지는 찢어짐과 모순에서 태어나고 그 본질은 극한소의 분할이다. 먼지의 정체성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단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이를테면 김수영이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할 때, 먼지는 더 작게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자아, 작아서 볼품도 없고 의미화할 수도 없는 한심한 것의 상징이다. 먼지는 고갈, 오류, 소멸의 연상에서 그 존재태(存在態)를 드러내지만 그것이 먼지의 불명예는 아니다. 먼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도덕성의 결과가 아니라 먼지의 타고 난 바 불가피한 숙명인 까닭이다.


첫 연은 물질이 최소 단위로 쪼개져서 생긴 먼지의 생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공기의 이동이 없는 곳에서 가벼운 먼지는 언제나 표면에 내려앉는다. "뽀얀 먼지"는 마치 편집광(偏執狂)처럼 표면에 들러붙는다. 먼지를 의인화해서 등을 주었기 때문에 "먼지야, 자니?"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성립한다. 셋째 연에서 마술이 일어난다. 먼지는 등을 가졌고, 낮잠을 자는 존재다. 먼지는 손가락으로 등을 찔리고도 태평스럽게 잠을 잔다. 이때 먼지는 극한소의 분할에서 태어난 소인이 아니라 작은 집적거림 따위에는 상관하지 않는 대인의 풍모를 보여준다. 이 동시의 묘미는 작은 것과 큰 것을 분별하지 않고 하나로 본다는 점에 있다. 먼지의 의인화는 이 무분별의 상상력에서 태어난다. 이 무분별의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어린이다운 상상력이 아닐까!


이상교(59)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3년에 소년 잡지에서 동시 추천을 마친 뒤,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로 입선하며 아동문학가로 활동해왔다. 〈먼지야, 자니?〉에서처럼 시인은 학교, 집, 친구, 꽃, 나무, 새, 고양이, 비, 구름, 바람, 하늘 등과 같이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것에서 동시의 소재를 구한다. 그래서 친근하다. 그동안 한국 동화문학상(1991), 해강 아동문학상(1993), 세종 아동문학상(1996) 등을 두루 받은 중견 아동문학가로 현재 한국동시문학회의 회장이다.

  작고 볼품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

                 장석주․시인

 


 

이상교 

출생 : 1949년 2월 16일 (서울특별시)

1974년  소년지 동시 천료

1974년  조선일보,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문단 데뷔

수상     2004년  제13회 한국아동문학상

         1996년  제29회 소년한국일보사 세종아동문학상

         1993년  해강아동문학상

         1985년  한국동화문학상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동화)당선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동화)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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