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감상 000편

김종상의 '미술시간' 감상

가마실 / 설인 2010. 10. 11. 09:11

미술시간     김 종 상


                  

그림붓이 스쳐간 자리마다

숲이 일어서고 새들이 날고

곡식이 자라는 들판이 되고

내 손에 그려지는

그림의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큰 분이

그렇게 그려서 만든 것이 아닐까?

색종이를 오려서 붙여가면

집이 세워지고 새 길이 나고

젖소들이 풀을 뜯는 풀밭도 되고

색종이로 꾸며 세운

조그만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큰 분이

그렇게 만들어서 세운 것이 아닐까?

 

 

 

이 동시를 쓴 김종상(73)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나고, 안동사범학교를 나와 50여 년간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분이다. 상주 외남초등학교에 첫 부임하여 사택에서 지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혼자 문학에 뜻을 두어 습작하였다. "앞산과 뒷산이/ 마주 앉았다.// 하늘이 한 뼘// 해가 한 발자국에/ 건너간다// 햇볕이 그리워/ 나무는/ 목만 길고// 바위는 하릴없이/ 서로/ 등을 대고/ 누웠는데// 산마루를/ 기어 넘는/ 꼬불길 가에/ 송이버섯 같은/ 초가집 하나/ 해지자/ 한 바람 실같이/ 저녁연기 오른다." 그 무렵에 쓴 〈산길〉은 첩첩 산, 하늘을 건너가는 해, 수직으로 선 나무, 수평으로 기는 산길, 외딴 집 등으로 산골 풍경을 그린 듯 보여준다. 이 동시가 1959년 《새벗》 현상공모에 당선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산 위에서 보면〉이 당선하며 문단에 나왔다.


〈미술시간〉이 제시하는 풍경은 사물들이 머물러 정지한 정태적 풍경이 아니라 일어서고 날고 자라는 풍경이다. 숲․새들․곡식․들판은 동사들의 도움으로 살아 움직인다. 이 움직임들은 재주 많은 손에서 나온다. 어린이는 천진한 눈으로 붓이 스쳐간 자리마다 나타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숲․창공을 활강하는 새들․곡식이 자라는 들판을 놀람과 즐거움으로 지켜본다. 그림의 즉각적인 효과는 놀람과 즐거움이고, 그 심미적 경험의 결과는 내면을 채우는 행복감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하더라도 그림은 현실과는 다른 세계다. 밀레의 '만종'이 감동스러운 것은 대상의 세계를 똑같이 재현하기 때문이 아니라 고요와 숭고함의 찰나를 떠올리게 하는 까닭이다. 그림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 대상에서 발현된 기억과 인상과 느낌을 표현한다. 색종이를 오려 붙이자 홀연히 집․길․들판이 나타난다. "그림의 세계"는 현실의 반영이고, "작은 세계"는 절대자가 창조한 우주의 축약이자 그 반향(反響)이다. 어린이는 그 사실을 본능으로 깨달은 것일까?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오려 붙이며 몰입과 창조의 기쁨을 겪은 어린 마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아무도 모르는 어느 큰 분이/ 그렇게 만들어서 세운 것이 아닐까?"라는 물음으로 달려간다. 창조라는 맥락 안에서 어린아이와 우주를 만든 절대자는 하나로 겹쳐진다.

 

 아이들 손끝에서 숨쉬는 자연

                            장석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