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감상 000편

제 31 편 '밤이슬' 이 준 관

가마실 / 설인 2010. 9. 19. 23:00


 제 31 편 밤이슬 이 준 관


               

이준관

출생 1949년 10월 24일

출신지 전라북도 정읍

직업 시인,교육인

학력 전주교육대학

데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동시 '초록색 크레용 하나'

경력 연필시 동인 영등포여고 교사

수상 2006년 제19회 대한민국 동요 대상

     2004년 소천문학상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대표작 크레파스화, 씀바귀꽃, 우리나라 아이들이 좋아서, 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


풀잎 위에

작은 달이 하나 떴습니다.

앵두알처럼 작고 귀여운

달이 하나

떴습니다.

풀벌레들이

어두워할까 봐

풀잎 위에

빨간 달이 하나

몰래 몰래 떴습니다.   (〈1998〉)


 

시인은 딱히 이름붙일 수 없는 하나의 공간을 그린다. 이 공간은 개별적으로 호명할 수 없는 것들의 장소, 그 익명의 현존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심연이 아니라 세계의 표면, 즉 밤이슬과 풀잎과 풀벌레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밤은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해명되지 않은 여러 위험을 내포한다. 그 세계에서 풀벌레들은 떨며 운다. 풀잎 위에 앉은 이슬은 달빛을 받고 반짝하고 빛을 낸다.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빛의 존재는 어둠이 불러들인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를 지운다. 밤이슬이 앵두알로, 다시 빨간 달로 변하는 것, 이것은 세계가 저마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으로 꿰어져 있음을 말한다. 있는 것은 풀잎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 하나, 그 아래서 우는 풀벌레다. 여기 이 있음의 현존을 뚫고 지나가는 것은 의식이다.


저마다 떨어져 존재함의 순간들이 어떤 인연에 의해서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어렵게 말하자면 상호연관(相互聯關)과 상호연기(相互緣起)의 세계로 거듭난다. 시인은 그 계기를 풀잎 위에 앉은 작고 귀여운 밤이슬 한 방울에서 기어코 찾아낸다. 그냥 밤이슬이 아니라 "풀벌레들이/ 어두워할까 봐" 풀잎 위에 떠오른 "빨간 달"이다. 달빛을 꿰차고 빛나는 밤이슬의 발광(發光)은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빛이고 이정표가 된다. 사람은 누군가의 필요와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익명의 어떤 것에서 의미의 존재로 태어난다. 거꾸로 누군가의 관심, 누군가의 사랑, 누군가의 수고에서 평이한 삶은 의미와 가능성으로 충만한 삶으로 거듭난다.


이준관(59)은 전라북도 정읍 출신의 시인이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현직교사다. 1974년에 박목월이 주관하는 시 전문지 《심상》을 통해 문단에 나온 뒤 시와 동시를 함께 써왔다. 이준관은 서정의 진수를 담은 시를 써온 빼어난 시인이자, 아울러 초등학교 국정교과서에 네 편의 동시가 실린 대표적인 동시인이다. 그의 시를 읽을 때 시와 동시의 경계에 대해 생각한다. "부엌의 불빛은/ 어머니의 무릎처럼 따뜻하다/ 저녁은 팥죽 한 그릇처럼/ 조용히 끓고/ 접시에 놓인 불빛을/ 고양이는 다정히 핥는다/ 수돗물을 틀면/ 쏴아 불빛이 쏟아진다/ 부엌의 불빛 아래 엎드려/ 아이는 오늘의 숙제를 끝내고/ 때로는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이 등유가 되어/ 부엌의 불빛을 꺼지지 않게 한다/ 불빛을 삼킨 개가/ 하늘을 향해 짖어대면/ 하늘엔/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첫 별이/ 태어난다"(〈부엌의 불빛〉)를 읽을 때 시와 동시의 경계를 짓는 것은 뜻 없어 보인다. 그것은 무경계다.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좋은 시는 어른에게나 어린이에게나 그저 좋은 시일 뿐이다.


풀벌레들의 등대가 된 밤이슬

             장석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