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세계와 작품
문병란(시인. 前 조선대학교 교수)
1. 시란 무엇인가?
나의 시세계와 작품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시 감상을 위한 몇 가지 정의와 그 감상의 기준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19세기 시의 전성기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시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정의를 살펴보면 대개 이러하다.
(1) 시는 자연의 모방이다(아리스토텔레스)
(2) 詩三百에 思無邪요, 關雎는 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니라(孔子)
(3) 시는 자연스러운 강력한 감정의 발로이다(poetry is the sponte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워드워즈)
(4) 시는 언어의 미적 운율의 창조이다(The poetry of words as the Rhyt
hmical creation of beauty) (포우)
(5) 散文은 徒步(walking)요, 韻文은 舞蹈(Dance)이다. (발레리)
(6)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되며 있어야 한다. (A poem should not mean
But be. (메크리쉬)
(7) 시는 즐겁게 하면서 가르친다. (호라치우스, 르크레치우스 文學糖衣說)
(8) 시는 정열이다( Poetry is passion) (밀턴)
(9) 시는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다 (릴케)
(10) 시가 성하면 나라가 흥하고 시가 쇠하면 나라가 망한다(신채호)
(11) 시는 악마의 술이다(아우구스티누스)
(12) 시의 목적은 진리와 도덕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인 것이다.(보들레르)
(13) 모든 예술(시나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그 속성에서 진실한 것이다. (르네웰렉)
(14) 시는 정서의 느슨한 변환이 아니라 정서로부터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그러나 물론 정서와 개성을 가진 사람만이 도피의 의미를 안다(poetry is turning loose of emotion, but an escape from emotion , it is not the expression!! of personality, but an escape from personality. But, of course, on ly those who have personality know what it means to want to escape these things.) T.S Eliot의 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15) 시는 쓰면 벌써 시가 아니다. 그러나 시는 써야 시가 된다.(조지훈, 시의 원리에서)
(16)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시는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이다. (T.S엘리엇)
(17) 문학형성의 4요소는 정서, 사상, 상상, 형식이다.
2. 현실과 상상
문학은 상상의 산물이다. 그 상상은 외적인 현실과 내적인 자아와의 만남이다. 현실과 자아는 모순과 갈등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산다는 것, 자유와 제약 사이에서 좌절된 욕구와 고뇌를 안고 무수한 부조리 속에서 방황한다. 이 비극적 존재와 삶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곧 상상력이다. 따라서 문학은 현실의 부조리를 넘어서 진실한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것을 나는 문학적 체험 문학적 창조라고 부른다. 그 어느 날 지구에 나타나기 시작한 불평등의 기원, 계급이 생겨나고 빈부가 갈라져, 있는 자와 없는 자,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싸움이 벌어지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 학문과 나쁜 제도가 만들어졌다. 거기서 생겨난 것을 역사라 전통이라 속이면서 길들이기식 체념과 달관과 초극이라는 관념적 만병통치약도 만들어 희망이라는 달콤한 미끼로 불만과 고통을 다스려 왔다. 얼마나 가공할 만한 허무의 농락이며 철학의 기만이냐. 이 모든 농락과 기만에서 벗어나 해방될 수 있는 명약이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을 특효약으로 문학의 장르가 발생한 이래 시인과 소설가들은 가상의 현실 속에 도피처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마농도 칼맨도 만나게 하고 햄릿도 장발장도 체험하게 한다. 전쟁과 정치라는 야비한 통치 수단이 폭력을 합법화시키면서 선성보다 악성을 능력으로 위장하여 얼마나 많은 부조리를 양산하였는가.
나는 오늘 한 편의 시를 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보다 미약한 나의 발언이다. 어차피 부조리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일망정 시적 정의(Poetic, Justice)를 의지하여 상상의 날개를 타고 미지의 세계 이상의 세계를 꿈꾼다. 골방만 주어진다면 그 속에서 나는 왕자도 되고 꿈만 잘 꾸면 공주도 만날 수도 있다. 문학(예술)은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그 속성에서 진실하다. 본질과 속성이 뒤바뀌어도 그것이 50%씩 반반이면 균형이 맞고 어느 쪽에 조금씩 증감이 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아름다움과 진실 중 두 가지가 있거나 그 중 한 가지만 있다 하더라도 문학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굳이 그 두 가지의 균형잡기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
이리하여 우리는 상상을 통하여 그것으로써 현실을 뛰어넘는다. 도무지 개조 할 수는 없다고 단념할 필요는 없다. 군주적 압제의 시대 왕과 그 가족을 위하여 궁정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오페라는 이제 뒷골목 거리로 나왔고 민중들은 그날의 안락의자네 앉아서 한 장의 티켓으로 향락을 살 수도 있다. 루소와 루이왕자의 싸움에서 루소가 이겼고 그의 공정한 심판에 의해서 군(君)을 이기고 민(民)이 주인이 되었다. 문학의 힘, 상상의 힘, 자유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냐,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나 문학은 단두대의 공포보다는 상상과 자유의 힘으로 모든 부조리를 이기고 승리할 것이다. 그러기에 원고료 없는 시를 쓰는 IMF한국 2008년 1월에도 나는 맹물로 피를 만드는 시적 정의에 의한 한편의 시로써 아직도 부자임을 자부한다.
3. 나의 작품(자작시 해설)
(1) 등단 기 초기작품(제 1시집, 1959~ 1970)
꽃씨
가을날
빈손에 받아 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한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과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불태워버리면
갑자기 뜰이 넓어가는 가을날
내 마음 어느 깊이에서도
고이 여물어가는 빛나는 외로움!
오늘은 한 알의 꽃씨를 골라
기인 기다림의 창변에
화려한 어젯날의 대화를 묻는다.
*봄, 여름, 그 격정과 생명의 계절을 거쳐 가을에 임한 ‘성숙’을 “꽃씨” 로 함축시킨 시이다. 최소한의 언어로써 우주 즉 생명원리를 하나의 작은 ‘꽃씨’로 응축시켰다는 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거대한 우주를 가장 작은 ‘꽃씨’ 로 함축한 시이다. 이 시는 등단 직후 초기의 시이다.
-초등학교(광주서석) 4학년 때부터 이미 <가을의 산길>이니 <고향 계신 어머니>등의 동요를 써온 나의 시적 출발은 1946년 광복직후<한글 첫 걸음>을 갓 배운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중에서 <고향 계신 어머니>는 작곡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대학입학 후 茶兄 김현승 시인의 門下가 된 후 1957년 대학재학중 학보병으로 입대하며 쓴 <告別>이란 시가 당시 茶兄의 지도에 의하여 全南日報(현재의 光州日報)지상에 발표되어 김현승 은사님께서 서신과 함께 군사훈련중인 내게 보내주셨다. 그리고 1959년 2월 제대후 복학하여 시창작연습 시간에 쓴 <가로수> <밤의 호흡> <꽃밭> 등으로 현대문학에 등단시 이 꽃씨도 같은 무렵 썼다가 제 1시집 <문병란시집>에 게재되었다. 그러므로 <꽃씨>는 <가로수>와 함께 내게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街 路 樹 문병란
향수는 끝나고
그리하여 우리들은 오후의 강변에서
돌아와 섰다.
생활의 폐허에 부대끼던 겨울을 벗으면
빙점에 서서 기다리는 우리들의 3월--
凍傷의 가지마다
부풀은 지열에 창문이 열린다.
허기진 발자국들이 돌아오는 오후의 입구,
아무데서나 너의 인사는 반갑고
너와 같이 걷는 이 길은
시진한 고독을 나누며 가는 계절의 좁은 길.
빈손 마주 모으고 돌아오는 밤이면
가난을 열지어 흐르는 어둠 속
서러운 까닭은
우리 모두 사랑을 따로이 간직하기 때문이다.
어둠을 호흡하는 고요론 자리
누리지는 별빛을 머금어
다가오는 3월 같은 머언 얼굴들이
쏟고 간 눈물.
너는 보내야 했듯이 또 맞아야 하기에
철 따라
새 옷으로 갈아입은 미쁘운 여인.
여기는 계절이 맨발로 걸어왔다
맨발로 걸어 돌아가는 길목.
가자,
우리 소망의 머언 산정이 보이면
목이 메이는 오후.
가로에 나서면
너와 같이 나란히 거닐고 자운
너는 5월의 휘앙세, 기대어 서면 너도
나와 같이 고향이 멀다.
*0008289번 학보병으로서 포천군 문혜리 한탄강 신철원 일대에서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후 귀향조치를 받고 조선대 문리대 국문과에 복학 후 쓴 첫 작품으로 지도교수인 茶兄에 의해 1959년 10월호 현대문학지에 제1회 추천을 받은 작품이다. 일본의 교포작가 김학영(개천상 후보까지 오른 작가였으나 한국인 교포의 갈등과 고뇌 끝에 자살함.) 이 일역된 이 시의 첫구절 <향수는 끝나고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란 제목으로 중편소설을 써서 일본 잡지 ‘新潮’에 발표 후 자살하면서 그 책을 내게 기증하였다. 편지에 나더려 문병란 女史라고 썼다. 蘭字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 이 시는 개항 100년 신시기념 시집 일역판(김소운일역)에도 실려 있다. 타락하지 않는 감상을 지성으로 조율하였다고 평가했다.
꽃에게
차라리 마지막 옷을 벗어버려라.
밤마다 비밀을 감추고
마지막 부분,
부끄러운 데를 가리우던
그날부터,
내 앞에 위태롭게 서 있던 자태,
너를 탐내는 눈 앞에
너를 더듬어 찾는 음모의 손길 앞에
간신히 지켜온
비밀,
가장 안에 감춘 빛나는 아픔을 보여주어라.
그 어느 빛의 언저리에서
감음 당하는 너의
花心,
이 눈부신 밝음 앞에
탐욕의 눈길들이 너를 찾고 있다.
오늘의 수치,
白晝의 無法 앞에
알몸으로 떨고 있는 꽃이여,
아슬아슬한 빛의 난간에서
네가 마지막 지킨
분노,
어느 절정에 눈을 꼭 감고 있느냐.
이제 지켜야 할 아무것도 없는
赤裸裸한 가슴,
차라리
찬란한 밝음을 갈갈이 찢어버려라.
*1970년 9월에 간행된 제 1시집 <文炳蘭 詩集> 제 3부 p93에 수록되어 있다. 4.19혁명은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한 줄기 소나기 같이 산 넘어 가버리고’ 그 민주적 소망을 총칼로 엎고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일군의 군인정치가들에 의하여 5.16 군사쿠데타로 유린당한 당시의 상황, 장차 10월 유신 선포 전야에 감히 일개 교사였던 나는 조선대학교 전임강사시절 겁도 없이 反유신 反군사정치 입장에 서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저항시를 시도하였다. 따져놓고 보면 질 줄을 알고 적나라한 맨몸둥이로 도전 감행한 당시의 순수한 나의 선언을 담고 있음을 본다. 제2시집<정당성> 의 단초가 마련된 시이기도 한 이 시는 장차 다가올 나의 시적 변모를 암시하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찬란한 밝음을 갈갈이 찢어버려라’ 순진무구하나 얼마나 당당한 맨주먹의 선언인가. 그리고 무모하기 그지없는가.
(2)제 2시집 (정당성, 1973)
겨울 보리
-농부의 잠-
농부의 가슴보다 따뜻한
검은 흙 속에서 滋養을 머금고
한 방울의 땀이 여물어
大地의 심장에 뿌릴 박는다.
지난 여름 농부의 손이 주물러
더욱 부드러워진 흙,
그 몽글몽글한 가슴 속에
한 알의 씨앗을 키우는 마음,
억센 농부의 욕망이 묻혀 있고
새벽잠을 깨우는 아내의 배가 부르다.
봄이 오면 싱싱한 푸름을 티우는
大地.
무성한 머리털이 덮이면
五月 바람이 간지리고
농부는 긴 잠에서 기지개를 켠다.
아내의 곁에서 지낸 겨울 밤
농부의 가슴에 크는 씨앗 ,
아내의 배를 어루만지다
보리 나까리를 꿈에 본 농부,
立春 가까운 어느 날 잠을 깬다.
지난 가을 씨앗을 뿌릴 때
아내를 사랑했던 농부,
해산 달을 꼽아보는 손가락 끝에서
이상한 힘이 솟아나는 욕망의 새벽,
그는 서서히 기름진 밭으로 간다.
오 大地여, 보리처럼 굳세고
보리처럼 싱싱한 농부의 육체가
부드럽게 흙을 주무를 때
아내의 잠은 깨어나고,
보리는 보람진 滋養으로 여물어간다.
*정당성 1,2,3 연작시와 <성삼문의 혀> <매운 고추를 먹으며> <아버지의 귀로> 등과 함께 실린 시이다. 대지의 아들 ‘농부의 잠’ 을 부제로 쓰여진 이 시는 <땅의 연가> 이 전에 쓰여진 대지와 농부의 생명 교감 대지적 사랑을 노래한 시이다. 그리스의 위대한 노동시인 헤시오도스의 <일과 나날> 김소월의 <밭고랑 우에서> 같은 시를 읽고 그 감명이 모티브가 되어 쓰여진 생명감 넘치는 건강한 초기의 시였다. 독자들에게 잊혀져 있지만 나 개인적으로 무척 정이 가는 시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 농부생활로 마감하지 않았지만 6.25 전후 귀향하여 소년시절 나무하고 꼴베고 들에서 일하며 사춘기를 보낸 바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교단생활로 들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 쓰는 일 이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지금도 무척 가난하지만 걸어온 길을 후회하거나 지금의 나의 처지를 슬퍼하진 않는다. 이 시는 내 시의 기조인 향토적 생명의식의 발로이다.
파리 떼와 더불어
사람이 모여 산 그날부터
어차피 너도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한 그릇의 보리밥 위에서
앙징스럽게 두 손을 비벼대며
내 먼저
성찬을 즐기는 파리 떼
나는 감히
그의 무례를 나무랄 자신이 없다.
생활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이 어두운 골목을 드나들며
똥내와 된장내를 구분해야 하는
나의 슬픈 코는 구토를 배운다.
어쩔 수 없이 너와 더불어 살게 된
나는 슬픈 人間,
아무리 DDT를 뿌린다 해도
오늘의 증오는 가시지 않는다.
죽여도 죽여도
오히려 나를 비웃는
너의 우주 비행
너와 나의 싸움은 계속된다.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나 따라오는
너와 나는
어차피 하나의 운명인가.
내 앞에 놓인
한 그릇의 보리밥과 된장찌개 위에서
유유히 성찬을 즐기는 파리 떼
나는 그를 향하여 필살탄을 퍼붓는다.
증오여, 증오여,
마음을 썩히고,
오늘의 구린내 위에서
너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대결하고 있다.
*저항의식 한 편에 민중과 함께 살아가는 속세적 삶의 고뇌를 노래한 시이다. 밀가루 대통령 닉네임을 가진 시월유신의 박정권 밑에서 일본 제국주의 배상금으로 얻어온 밀가루로 배를 채운 속중들이 긴급조치에 억눌려 꼼짝 못하여도 나는 그 愚民과 더불어 살면서 (파리 떼 어리석은 백성의 은유) ‘증오’ 와 ‘구린내’를 썩히며 초극하겠다는 시대에 대한 체관이나 민중에 대한 연민을 주조로 하고 있다. 정서 중 가장 중요한 정서가 바로 이 연민(憐憫pity)이다.
아버지의 귀로
西天에 노을이 물들면
흔들리며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리어커꾼의 거치른 손길 위에도
부드러운 노을이 물들면
하루의 난간에
목마른 입술이 타고 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또한 애인이 된다는 것,
무너져 가는 노을 같은 가슴을 안고
그 어느 歸路에 서는
가난한 아버지는 어질기만 하다.
까칠한 주름살 위에도
부드러운 夕陽의 입김이 어리우고,
上司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에도
십 원짜리 눈깔사탕이 고이 쥐어지는
시간,
가난하고 깨끗한 손을 가지고
그, 아들 딸 앞에 돌아오는
초라한 아버지,
그러나 그 아들 딸 앞에서는
그 어느 大統領보다 위대하다!
아부도 아첨도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王國
主流와 非主流
與黨과 野黨도 없이
아들은 아버지의 발가락을 닮았다.
한 줄기 주름살마저
보랏빛 미소로 바뀌는 시간,
수염 까칠한 볼을 하고
그 어느 차창에 흔들리면
시장기처럼 밀려오는 저녁노을!
무너져 가는 가슴을 안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돌아오는
그 어느 아버지의 가슴 속엔
시방
따뜻한 핏줄기가 출렁이고 있다.
*제 2시집 <정당성(1973년 간행)> 에 실린 작품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고 노래한 사람은 영국의 낭만적 호반시인 워드워즈이다. <내 가슴은 뛰노라(일명 무지개)로 널리 알려진 그의 시이다. 사내는 누구나 커서 아버지가 된다. 결혼하여 아버지가 되면 그 역할이 무엇인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호적도 사라지고 호주법도 폐기된 이 시대 父權이 무너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수많은 고개 숙인 남성이나 아버지들에게 일독을 권장한다. 오늘날과 같은 부권상실의 시대를 미리 알고 썼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당시의 애환을 담은 시이다. 2006년 EBS 방송 교재나 대한교과서 주식회사가 펴낸 고교생 필독의 시로 선정 한용운 윤동주등의 시와 함께 등장하였고 인터넷 현대시백과에 수록 <직녀에게> 와 함께 애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시이다.
(3) 죽순 밭에서(제 3시집. 1978)
목포
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동백꽃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들어 버리는 곳
항상 술을 마시고 싶은 곳이다
잘못 살아온 반생이 생각나고
헤어진 사람이 생각나고
배신과 실패가
갑자기 나를 울고 싶게 만드는 곳,
문득 휘파람을 불고 싶은 곳이다.
없어진 삼학도에 가서
동강난 생낙지 발가락 씹으며
싸구려 여자를 바라볼거나
삼학소주 한 잔을 기울일거나
벌거벗은 빈 산
돌멩이 만지며 풀포기 뽑으며
서쪽 끝에 와서
삐비꽃처럼 목을 뽑아 올리다
로빈슨크루소가 되어버린 사람들
실패한 첫사랑이 생각나는 곳이다.
끝끝내 바다로 뛰어들지 못한
목포는 자살보다
술맛이 더 어울리는 곳
술이 취해서 봐도
술이 깨어서 봐도
유달산만 으렁으렁 이빨을 가는구나.
*<죽순 밭에서( 1978년 간행>에 실린 시이다. 이 시집은 당시 출판 윤리위원회란 단체에서 판금조치를 내려 수난을 받은 시집이다. 판금 후<뻘밭>으로 재 간행하기도 하였다. 소외의 고장 호남지방, 특히 전남과 광주에 사는 사람들은 ‘영산강’ ‘무등산’ ‘목포’ ‘금남로’ 이런 명칭만 들어도 눈물과 저항감을 느낀다. 나의 시도 그러한 지역적 향토적 기반을 갖고 있다. 비난을 받아도 비아냥거려도 어쩔 수 없다. 인천의 한 독자는 이 시를 일고 ‘목포’가 가보고 싶었다고 전화가 왔었다. <목포의 눈물> 가요만큼이나 목포 사람들의 애송시였다.
不惑의 戀歌
_영산강 賦
어머니
이제 어디만큼 흐르고 있습니까
목마른 당신의 가슴을 보듬고
어느 세월의 언덕에 서서
몸부림치며 흘러온 역정
눈감으면 두 팔 안으로
오늘도 핏빛 노을은 무너집니다.
삼 남매 칠 남매
마디마디 열리는 조롱박이
오늘은 모두 다 함박이 되었을까
모르게 감추어 놓은 눈물이
이다지도 융융히 흐르는 강
이만치 앉아서 바라보며
나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보셔요, 어머니
나주벌 만큼이나 내려가서
3백리 역정 다시 뒤돌아보며
풍성한 언어로 가꾸던 어젯날
넉넉한 햇살 속에서
이마 묻고 울고 싶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흐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새끼 네 명을 키우며
중년에 접어든 불혹의 가을
오늘은 당신 곁에 와서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하지 못한
남은 사연이 있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흐르는 강
누군가 소리쳐 부르고 싶은
이 간절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목마른 정오의 언덕에 서서
내 가슴 가득 채우고 싶은
무슨 커다란 슬픔이 있어
풀냄새 언덕에 서면
아직도 목메어 흐르는 강,
나는 아득한 곳에서 회귀하는
내 청춘의 조각배를 봅니다.
이렇게 항상 흐르게 하고
이렇게 간절히 손을 흔들게 하는
어느 정오의 긴 언덕에 서서
어머니, 오늘은
꼭 한번 울고 싶은 슬픔이 있습니다.
꼭 한번 쏟고 싶은 진한 눈물이 있습니다.
*땅의 연가(1981년 창작과 비평사 간행, 창비시선.26)에 <땅의 연가> <고무신> 등과 함께 실려 있는 시이다. 시 낭독 전문가들에 의해 애송 받는 시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영산강을 대지의 모성으로 상징하여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 어머니와 대지의 모성을 복합시켜 융융한 생명의식을 노래한 시이다. 낭독에 알맞은 시란 낭독하는 순간 귀에 전달하여 바로 감흥이 일어나야 한다. 알맞은 가락과 길이, 시적 충분조건이 있어야 한다.
땅의 연가
나는 땅이다
길게 누워 있는 빈 땅이다
누가 내 가슴을 갈아엎는가?
누가 내 가슴에 말뚝을 박는가?
아픔을 참으며
오늘도 나는 누워 있다
수많은 손들이 더듬고 파헤치고
내 수줍은 새벽의 나체 위에
가만히 쓰러지는 사람
농부의 때 묻은 발바닥이
내 부끄런 가슴에 입을 맞춘다.
멋대로 사랑해버린 나의 육체
황토 빛 욕망의 새벽 우으로
수줍은 안개의 잠옷이 내리고
연한 잠 속에서
나의 씨앗은 새 순이 돋친다.
철철 오줌을 갈기는 소리
곳곳에 새끼줄을 치는 소리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
새벽마다 연한 내 가슴에
욕망의 말뚝을 박는다.
상냥하게 비명을 지르는 새벽녘
내 아픔을 밟으며
누가 기침을 하는가,
5천 년의 기나긴 오줌을 받아먹고
걸걸한 백성의 눈물을 받아먹고
슬픈 씨앗을 키워 온 가슴
누가 내 가슴에다 철조망을 치는가?
나를 사랑해다오, 길게 누워
황토 빛 대낮 속으로 잠기는
앙상한 젖가슴 풀어 헤치고
아름다운 주인의 손길 기다리는
내 상처 받은 묵은 가슴 위에
빛나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다오!
짚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고무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군화가 짓밟고 간 다음에도
탱크가 으렁으렁 이빨을 갈고 간 다음에도
나는 다시 땅이다 아픈 맨살이다.
철철 갈기는 오줌 소리 밑에서도
온갖 쓰레기 가래침 밑에서도
나는 다시 깨끗한 땅이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아픔이다.
오늘 누가 이 땅에 빛깔을 칠하는가?
오늘 누가 이 땅에 멋대로 線을 긋는가?
아무리 밟아도 소리하지 않는
갈라지고 때 묻은 발바닥 밑에서
한 줄기 아픔을 키우는 땅
어진 백성의 똥을 받아먹고
뚝뚝 떨어지는 진한 피를 받아먹고
더욱 기름진 역사의 발바닥 밑에서
땅은 뜨겁게 뜨겁게 울고 있다.
*<죽순밭에서(1978) <시선집 땅의 연가(1981)에 수록된 분단시대 국토산하에 바치는 나의 헌사이다. 국가 형성의 중요 요소인 ‘국토’는 거기 터잡고 살아온 ‘민중(국민)’과 함께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다. 온갖 침략과 전쟁의 참회를 겪고도 민중과 함께 살아 넘은 소중한 땅, 그러나 그 땅은 지금 갈라지고 학대받고 많은 사람들의 투기 대상이 되어 그 애환이 극에 달하여 있다. 5천년의 긴 땅의 애사와 함께 불멸의 사랑의 표상이기도 하다. 분단시대 최고의 시라하면 벌떼같이 달라 들어 온갖 험담을 퍼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땅의 불멸과 함께 이 시도 영원할 것이다.
직녀에게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냐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네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나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여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갈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동양의 견우와 직녀 설화를 이 땅의 분단상황과 연결, 알레고리(Alle'gorie: 유추. 비유의 뜻: 어떤 개념을 다른 구상적인 사항에 의하여 표현 하는 것) 수법으로 표현한 시이다. 1970년대 중반에 발표하였으며 이 표제로 된 시집이 두 권이나 있다. 작곡되어 노래로도 불리고 고등학교 문학교재 기타 참고서 한국의 명시선 등 많은 앤솔로지에 실려 있다. 역시 독자가 많은 나의 대표 시이다. 김원중, 조관우등이CD에 수록했다.
창비시선 대표작 선집 기타 수많은 명작해설 앤솔로지 고교의 문학교재 해설서 참고서등에 이미 수록되었고 분단시대의 엘레지이자 대중적 연가로도 널리 사랑받는 시 자타가 공인하는 나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호 수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
무수한 눈길의 번득임 사이에서
더욱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버린 다음
비로소 만나야 할 사람
비로소 사랑해야 할 사람
이 긴 기다림은 무엇인가.
바람 같은 목마름을 안고
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
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
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여
이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여.
* 80년대 군사정권의 공포가 절정에 이른 시기 1981년에 간행된 <땅의 연가 (창작과 비평사 1981.5간행)> 에 수록된 시이다. 저항적인 시와 같이 실려 있어 더욱 이채를 띤 시로서, 인간의 숙명적 존재문제를 노래한 시이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그대, 마지막에 만나야 할 운명적인 그는 누구인가. 호수는 그 고독과 존재의 상징적 표현이다.
안 된다
순결과 꿈으로 고이 간직한
우리들의 소중한 사랑,
참된 마음에 뿌리박고 피어난 장미를
슬기롭고 아름답게 지켜온 우리들의 입술을
누구에게나 헛되이 바쳐서는 안 된다.
추악한 자의 탐욕스런 권위 앞에
그들의 강퍅한 가슴
무지와 잔인으로 무장된 바로의 발톱 아래
한낱 먹이로 먹히우는 오늘의 사육,
그 돼지의 포만증을 달랠
오염된 구정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정에 뿌리박고 피어난 악의 꽃,
하루만의 영화에 취하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추파에 빼앗긴
탕녀의 입술,
교언영색의 부리로 조아리는
카나리아의 아양에 홀려서는 안 된다.
무수한 구호, 양심을 앗아가는
저 아양진 꾀꼬리의 노래,
치사한 주둥이들의 합창에 막혀
마지막 지킨 의지
최후처럼 간직한 마음의 칼날,
오늘의 분노와 눈물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우리들의 사랑을 헛되이 바쳐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순결은
저 바다의 입술에 바쳐져야 하고
너와 나의 피가 스민
조국의 흙 한 주먹,
수난이 스쳐간 이 땅의 아픔에 바쳐져야 한다.
보다 깨긋하고
보다 빛나는 내일을 위하여
우리들은 열렬히 포옹해야 한다.
우리들은 열렬히 사랑해야 한다.
우리들은 열렬히 입맞춰야 한다.
보다 큰 사랑을 위하여
보다 큰 가슴을 위하여.
*유신이 극성을 부리던 1970년 초반 재직하던 전남고 교지에 실린 시이다. 당시 문단의 원로시인 未堂의 <내리는 눈발 속에서(괜찮다)>라는 시에 대한 답가였다. 이 외에도 未堂의 광주에서 피란살이 시대 썼다는 <무등을 보며>에 대해서도 답가 형식으로<가난>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부재: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미당 이시는 방송 통신대 국어교재 <parody수법에 대한 시적 논고>로 수록 되어 있다. ‘안된다’는 바로 ‘괜찮다’의 반댓말이다.
戀歌 5 문병란
_새끼들에게
이 애비는
식민지의 하늘 밑에서
쑥죽을 먹으며 자라났고
너희들은
분단 시대의 하늘 밑에서
정부미 혼합곡을 먹으며 자라난다.
대 물려온 할아버지의 가난을
이 애비가 물려받았고
이 애비의 가난을
너희들이 물려받을 것이다.
우리들에겐 이미 익숙한 가난,
한 번도 잘 살아본 적이 없기에
우리들은 가난 따위를 걱정하진 않는다
양옥집에 사는 사람들 부러워하지 말아라
자가용 타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아라
콩나물 아침 시내버스에 흔들리면서
남의 발등도 조금 밟으면서
증오보다는 사랑,
돈보다 의리가 더 값진 재산임을 믿으라
가난은 또 하나의 스승,
궁핍 속에 고이는
풍성한 눈물을 배우라
척박한 땅,
맹물을 마시고 고운 꽃을 피우는
봄철 민들레의 웃음을 배우라
오늘 이 땅에는
남의 총 남의 깃발이 길을 막는데
팝송을 들으며
코카콜라를 마시며
코밑이 까칠해지는 아들아
아무리 달콤하게 속삭일지라도
아무리 술술 잘 넘어갈지라도
애들아, 너희는 구정물통에 뜬
기름진 선진국의 기름덩어리.
먹고 남아 돌아가는 버터에 길들은
할렘가의 검둥이가 되지 말아라
국적 모를 洋돼지가 되지 말아라
나의 아들 딸들아!
*5.18 항쟁 이후 폭도로 몰려 고통 받던 시절 그 울분한 시대고와 저항의지를 노래한 연작시중의 한 편이다.
아버지를 잘못 두어 고생하는 아들 딸들 (1남 3녀를 두었다)에게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면서 최후까지 그 ‘참된 인간성’을 저버리지 말라는 간곡한 메시지가 남긴 격려 시이다. 영문학교수(윤명옥 충남대)에 의하여 60여 편의 작품이 영역되어 발간을 준비 중인데 거기에도 이 시가 선정되어 있어 잊을 수 없는 80년대의 작품이다. 현대판 친미 사대주의를 경계함도 잊지 않은 민중의식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새벽의 차이코프스키(1997)
새벽에 깨어나 혼자서 듣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가늘은 현악기의 현 끝에
아리게 떨리는 알레그로
내 고독한 혼도 따라 울고 있다.
이 새벽 밖에서는
새록새록 싸락눈이 내리고
어디선가 외로운 목숨이
쓸쓸한 기침 소리로 돌아누울 때
노래는 2악장으로 바뀌고 있다.
세상은 얼마나 차갑고 쓸쓸한가
세상은 얼마나 무섭고 고독한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도 없이
눈 내리는 이 새벽
혼자서 듣는 차이코프스키
나도 한 마리 작은 귀또리처럼 운다.
산다는 것은 음악보다
얼마나 아프고 쓰린 울음인가
어디선가 외로운 가슴이 모로 누워간다
오 기침 소리
기침 소리여.
*쓰여진 것은 1970년대 중반<직녀에게>와 같은 무렵에 쓰여졌다. <원탁시> 라는 동인지에 게재하여 그 후 시집 간행 시 빠지고 말았으나 애독자들의 성원에 의해 애송 받아 1997년 시집 간행 시 표제시가 됨으로써 사랑받게 된 시이다. 한 여류시인 시낭독가는 이 시를 제대로 낭독하기 위하여 비로드로 맞춤옷을 지어입고 피아노에 기대어 낭독했다고 한다. 꽤나 사치스럽고 감동적인 일화이나 내가 쓸 때는 유신치하 너무도 암담한 고독을 못 이겨 쓴 작품이다. 거대한 군사독재 치하에서 나의시란 ‘작은 한 마리의 귀또리의 울음’ 그것이었다. ‘기침소리’는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는 일이었다. 북쪽만 바라보아도 레시바 꽂고 단파 라디오만 들어도, 차이코프스키 비창만 들어도 반공법에 저촉되던 그 시대의 고독을 아는가. <아리게 떨리는 알레그로/ 내고독한 혼도 따라 울고 있다>왜 애송자가 검은 비로드 옷을 입고 이 시를 낭독했는가 이유를 알 것이다.
인연서설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곷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 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의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가는 일이다,
오가는 인생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불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 가는 일이다.
*인연이란 사람과 사람의 운명적 연결 고리이자 우주적 신비와 섭리 그 자체이다. 우연이면서 필연이요, 전생의 업보 그 자체이다. 1999년에 간행한 시집의 표제시로서 많은 애독자를 가지고 있는 대표 시이다. ‘거리의 교사’ 란 닉네임으로 강연 다니고 학원에서 밥을 빌며 들락날락 어지럽게 살아온 이력서 위에 어느 덧 정년의 나이가 다가올 무렵 교단을 떠나는 시기의 시집이<인연서설>이었다. ‘서설’ 이란 말이 너무 거창하여 어울리지 않는 듯했으나 <땅의 연가>을 애송하던 스님이 이 시로 바꾸었다 하였다. 본래 ‘ 인연’ 이란 말이 불교적 말이지만 이 시에선 반드시 그런 종교적 이유로 쓴 말은 아니다. 사람과 괴로움과 기쁨을 나누는 사랑의 내력으로 슬픈시이나 그런 흔한 감상은 아니다.
꽃가게 앞을 지나며
그 꽃빛깔만큼이나 예쁜 이름을 가진
온갖 꽃들이 진열된
꽃가게 앞을 지나면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문득
너의 이름이 떠오른다.
진정 그리움이란
진홍빛 장미꽃만큼이나
간절히 타오르는 정열인 것이냐.
아름다운 것만 보면 문득
푸른 하늘이 치어다 보이고
거기 눈부신 이국종
아네모네의 이름보다 멀게
너의 고운 미소 피었다 스러지나니.
삶의 외로움 나누는
목마른 어느 길목에서
나는 너의 조그만 미소를 구하여
이리도 간절히 발돋음해 애태운다.
오라, 노을 지는 꽃길 위에
종종 걸음으로 왔다가 스러지는
무수한 발자국 지우며
봄과 함께 꽃내음 타고 올
제비꽃 초롱 내 사랑하는 연인아!
*꽃가게 앞을 지나면서 그 많은 아름다운 꽃들을 통해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그런 애련과 연모의 감정을 노래한 시이다. <인연서설>에 <행복을 파는 꽃가게> 등과 함께 실려 있는 밝고 아름다운 연가풍의 시이다. 한 송이 꽃처럼 그리움 지니고 사는 사람들, 그 선한 삶들의 사랑 이야기를 가요의 가사처럼 담백하게 담은 연가이다. 반드시 심오한 뜻이나 난해한 메타포가 아니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한 송이 꽃이라도 사고 싶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살맛나는 곳이냐. 모든 선한 연인들의 고운 눈빛을 생각하며 쓴 시이다.
(5)2005년 이후
평화를 위한 파라독스
총칼을 들고 외치는 평화란
바로 살인적 휴머니즘
다음 전쟁을 위한 짧은 휴지부
지구의 첫날에도 끝날에도
그 단어는 가장 값비싼 거짓말이었다.
오늘 한 강국의 지도자는
한 손엔 총칼 한 손엔 성경을 들고
이겨야 한다 응징해야 한다
승리 그것 아니면 죽음뿐이다
힘없는 평화는 다만 노예일 뿐이다.
우리들의 손에 총칼을 쥐어 준다.
독점과 아집과 승리 속에 평화는 없다
부귀영화 호황과 황금의 영광 위에 평화는 없다.
평화를 외치는 저 시세로는
바로 평화의 살인자
애국을 부르짖는 저 애국자는
바로 평화를 담보로 전쟁을 사는 장사꾼
승리를 찬양하는 곳에
평화는 해골 앙상한 공동묘지
개선장군의 빛나는 깃발 아래 평화는 죽는다.
젖 달라 칭얼대는
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그것은 아름다운 평화의 노래다
꿀꿀대는 돼지 삐약삐약 병아리의 노란 주둥이
밤새우는 귀두라미 울음소리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평화의 노래다.
누가 저 엄마 품에 잠든 아기의
작은 우유병과 핸즈프리를 뺏는가
달빛 아래 연인을 기다리는 아가씨의
꿈꾸는 면사포와 드레스를 찢는가.
악마의 사전 속에 평화란 단어는 없다
애국, 애국 외치는 웅변 속에 평화는 없다
평화는 오직 두 조각으로 나누는 사과 속에 있다
그대 손에 쥐어주는 한 덩이 작은 빵 속에 있다.
* 전쟁광 패권주의자들 가짜 애국자 반인륜적 지도자들이 애호하여 더럽히고 있는 말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평화’ 란 말처럼 오염된 말도 없을 것이다 그 거짓 평화주의자 패권적 전쟁광에게 주는 역설의 시이다.
희망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IMF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이다. 이 경제난,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의 모순당착의 시대에 국수발처럼 줄줄이 쏟아지는 거짓말시대 Anomie 시대에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Pandora의 상자에 남았다는 그 ‘희망’ 이라는 사기꾼, 그러나 이 시대 마지막 처방인 그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노래한 시이다. 대구의 시비동산(팔공산 밑 제헌사)에 시비로도 서있고 어느 재벌 총수의 애송시로도 알려져 있고 광주교도소 직원이나 교도소 가족에게도 애송시가 되어 있는 시이다. 무릇 시는 ‘감동’이다. 이 감동은 저절로 되는 것이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난해해야 명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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