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詩) 감상

(선시) 지팡이 / 임보

가마실 / 설인 2013. 12. 18. 14:34

(선시)

지팡이 / 임보

 

산길을 가는데

머리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가는 길을 막는 놈이 있다

보아하니

한 자 남짓한 독사다

짚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허리를 쳤더니

두 동강이 나고 만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갈라진 몸뚱이가 두 동강으로 되살아나

식식거리며 달려드는 게 아닌가

달려드는 지팡이로 다시 치면

두 동강이 나고

갈라진 동강이는 저마다 머리를 달고 달려드니

삽시에 길은 독사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지팡이를 버릴 수도 휘두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다

나뭇가지 위에 지켜보고 있던

뱁새가 무어라고 야단스럽게 지저귀고 있다

아마 버리라는 시늉인 것 같다

지팡이를 들어 멀리 팽개쳤더니

우글거리던 놈들이 쫓아가

그 속으로 다 기어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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