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笑곳 이야기/운문(연작)

가마실연가 26- 아버지 숨소리

가마실 / 설인 2010. 8. 15. 10:25

가마실연가 26

-아버지 숨소리

 

성갑숙

 

 

늦더위가 한풀 꺾인 그날 밤

훌쩍 유년의 뒷마당을 들어섰다

마당 가장자리 여전한 주엄자리

단내가 난다

어둠을 등에 업은 무성한 호박넝쿨 밑

작은 어깨가 달삭인다

 

사랑방 툇마루에 앉아

모기장도 내리지않은 방안에서

가느다란 숨소리 듣는다

-아부지 모기 무는데....

-모기는 내 몬 이긴다

꿈속에서 뜻밖의 여식을 만난듯

가죽만 남은 손을 허공에 젖더니

팔십 오년 째 맞은 여름잠에 드셨다

-그래요 한평생 뙤약볕에 단련된 아버지

누가 범하겠어요

 

친친 휘감은 호박넝쿨  아래

농번기에도 헐지 못한 두업자리

끊어질 듯 이어가는 숨소리

지난 여른 있었던 그날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난 걸까

 

'多笑곳 이야기 > 운문(연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 사랑방 기침소리  (0) 2010.08.28
마지막 저녁상   (0) 2010.08.28
가마실연가 23/24/25  (0) 2010.08.15
폐교  (0) 2010.08.15
참새의 변  (0) 201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