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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둥이와 호동이

가마실 / 설인 2012. 12. 24. 21:55

업동이와 호동이

 

글 / 성갑숙

 


요즘 복날은 복을 많이 받는 날이라면서요?

초복이 지날 무렵 한차례 내리 쬔 뙤약볕은 머리가 벗겨질 것 같았어요.
중복 문턱에 선 오늘도 복은 커녕 온통 찌푸린 상이네요. 진득진득 습기를 머금은 장마비가 오후부터 내린다고들 걱정인데 우리 집 분위기는 업동이 때문에 더욱 내려앉았어요.

 

 

 


새벽에 아빠 따라 산책을 간 업동이가 사라졌대요.
도도한 녀석. 혈통이 어쩌고 하면서 중국 황실에서 사랑받던 종이라나 뭐라나. 특별한 음식만 고집했어요. 그 허영끼에 방랑끼까지 겸했으니 누가 말리겠어요.
온 얼굴은 털북숭이라 눈, 코, 입이 나 제대로 붙었는지 모르겠어요. 거기다 코 밑 부터는 깎아지른 절벽에다 성깔은 국제 깡패급이에요. 자기 밥통을 누가 넘볼세라 한 뼘도 안 되는 짧은 다리를 바둥대는 꼴을 보면 정 붙이고 싶은 맘 눈꼽만큼도 없어요.

혼자 아침밥은 느긋이 먹었어요. 나는 앓던 이가 빠진 듯 후련한데, 엄마 아빠 밥상은 그렇지 못해요. 빈 업동이의 밥그릇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곧 장마비가 쏟아질 것 같아요.
식사를 마친 아빠가 출근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신문만 뒤적이네요. 보다못한 엄마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대문을 나서요.
“여보! 어디가?”
아빠가 깜짝 놀라며 엄마를 불러 세웠어요.
“업동이 찾으러 가요.”
보던 신문을 훌쩍 던지며 아빠가 벌떡 일어섰어요.
“놔두구려. 저 알아서 들어 올테니. 집 두고 멀리 가진 않았을 거야”
알아서 들어온다고요? 금방 먹은 밥이 체한 듯 속이 꽉 막혀 오네요. 녀석은 원 래 뜨내기인데, 어디가 그 녀석의 집인가요?

그래요. 업동이는 원래 떠돌이였어요. 그래서 이름도 업동이에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중학교 다니는 공훈이 형이 라면 박스에 무엇인가 조심스레 안고 돌아왔어요.
놀란 엄마가 박스를 풀어헤치자 비 맞은 생쥐마냥 오들오들 떨고있는 녀석은 지쳐 눈도 뜨지 못했어요. 얼마나 떠돌아 다녔는지 군데군데 털이 벗겨지고 앙상한 갈비뼈 사이로 피부병이 번져 불긋불긋했어요. 엄마의 한숨 소리를 들은 형은 무슨 죄인인양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어요.
“공부시간에 쭈빗쭈빗 교실로 기어들잖아요.”
“......”
“ 모두들 더럽다고 쫓아내는데 불쌍해서.......”
“......”
“쫓아내어도 갈데 없는지 화단 밑에 비를 피해 쭈그리고 앉아서.......”
“......”
엄마는 아무 말도 못하고 녀석을 받아들였어요.
다음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피부병이 나을 때까지 누구도 만져선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리면서 이름을 지었어요.

업동이. 집 앞에 갖다버린 아이나, 우연히 얻어 기르는 아이를 귀하게 여겨 부르는 말이래요.
나이는 여섯 살. 쥐방울만한 것이 나이는 오살지게 많이 먹었어요. 그 때 나는 태어난 지 한 달. 막 젖 떨어져 철들기 전 아빠 품에 안겨 왔으니 이름도 짓기 전이였어요.
그 날 엄마는 업동이 이름을 지어주고 내 이름도 지어 주었어요.
“덩치는 너보다 작으나 업동이는 네 형이란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야하니까 네 이름은 호동이다. 좋을 호자 호동이......”
형이라는 말이 영 꺼림직 했지만 어쩌겠어요.

그 후 한 달 동안 업동이는 화단 옆 주차장에서 혼자 살았어요. 치료를 거듭하며 빨갛게 벗겨진 피부에 털이 나고 모양새가 갖춰질 무렵 업동이 목에 끈이 풀어지고 밤이면 간간이 내 곁에 와 경계의 눈을 굴리고 돌아갔어요.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키가 자라 이제 업동이 쯤은 무릎 아래로 보였어요. 또 한국을 대표하는 혈통 진돗개의 자손답게 두 귀가 쫑긋 서고 꼬리가 말려올라 가면서 제법 티를 내기 시작했는데도 업동이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어요. 단순히 나이 많은 형이라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업동이는 때로 외로움에 핏기 없는 얼굴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어쩔 땐 싸늘한 살기를 느끼게 하는 위엄도 보였어요. 그러나 엄마 말대로 나는 이름값도 해야하니 좋게 지내려고 애를 썼어요.

아빠는 출근하고 업동이를 찾아나간 엄마는 점심때가 다 되어서 들어왔어요.
혼자였어요.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엄마는 전화통 앞에 앉아 있어요.
아빠가 전화를 했어요. 저녁에 퇴근해서 함께 찾아보자고요.
엄마는 대낮부터 저녁 준비를 서둘렀어요. 빈 내 밥그릇을 가득 채우고 업동이 밥그릇에도 가득 채웠어요.
업동이 밥은 내 밥과 달라요.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종이라 먹이도 고급 사료를 주어야 하고, 애완용이라 살찌면 안 된다며 밥도 하루 한 번만 먹어야한데요. 업동이는 그것이 불만이었다가 우리 집에 와서는 엄마가 하루 세 번 내 밥 줄 때 따라서 주는 것도 불만이데요.
업동이가 이렇게 사람이 하는 일마다 불만을 품는 것은 이유가 있어요.
업동이는 달을 보아도 크게 짓지 못해요. 자식도 낳을 수 없어요. 먼저 번 주인이 수술을 했대요. 귀찮으니 새끼도 낳지 말고, 옆집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 짓지도 말라고요.
업동이는 사람을 싫어 집을 뛰쳐나왔는데 또 나간 것일까요? 탁 터놓고 생각해 보면 업동이가 지금 우리 집을 나갈 이유는 없어요. 아빠 엄마의 사랑이 여간해야지요.

달이 휘영청 밝았는데도 아빠가 들어오지 않아요. 안절부절 대문을 닫지 못하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미워도 한 식구였으니 빨리 들어오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겠어요.
“하느님, 업동이 형 미워하지 않을게요. 빨리 좀 돌아오게 해 주세요.”
밤은 깊어가고 내 기도는 공중을 맴돌았어요. 웅크리고 앉아있는 업동이 빈집이 왠지 무섭게 느껴져요. 입추가 지나면서 불어오는 밤바람은 옆구리를 허전하게 하네요. 업동이의 빈자리가 이렇게 큰지 몰랐어요.
업동이는 밤마다 떠돌이시절 도시의 뒷골목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그리고 자주 입에 거품을 물었어요. 특히 사람들의 입에서 불거져 나오는 말씨 때문이었어요.
“사람들은 이상해. 기분이 나쁠 때마다 왜 우리 개를 모욕하는지 모르겠어.”
업동이가 주워 들은 이야기는 정말 기가 막혔어요.
무슨 일을 하다 망신을 당하면 개망신 당했다.
그것도 부족해 개코망신까지 당했다.
누가 잔소리를 많이 하면 개지랄한다.
행세를 더럽게 하면 개차반이다. 개수작 부린다.
개망나니 같다. 개 짓거리 한다.
무질서하면 개판이다.
돈 없는 사람 보면 개털이다.
대중없이 꿈을 꾸면 개꿈이다.
그 뿐 아니라, 멀쩡한 물건에 개자를 붙여 불량품같이 들린다나요.
살구에다 개를 붙이면 개살구.
눈깔에다 개를 붙이면 개눈깔.
기름에다 개를 붙이면 개기름.
새끼에다 개를 붙이면 개새끼.
자식에다 개를 붙이면 개자식.
다리에다 개를 붙이면 개다리.
떡에다 개를 붙이면 개떡.
세상에는 별별 사람도 다 있나 봐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 개를 부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개가 웃을 일인데 웃음이 안 나와요.
그러나 개 팔자는 상팔자라는 말이 있던가요? 내 팔자를 두고 한말 같아요.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모욕당한 적이 없거든요. 만난 사람이 엄마, 아빠, 공훈이 형, 대학교 다닌다고 멀리 떠난 누나, 비록 이 네 사람 뿐이지만요.
어쨌거나 업동이는 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일을 밤마다 풀어놓으며 잘난 체 했어요. 때로 눈꼴사나워 돌아누워 자는 척도 했지만, 먼 외계에서 일어난 일 같아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며 듣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우리는 집을 지켰지요.

오늘밤사이 활짝 열린 저 대문으로 업동이가 훌쩍 들어오겠지요?
“뚜벅 뚜벅!”
아, 누구 발소리냐 구요? 아빠 냄새가 나요. 그런데 이 술냄새는.....
“여보! 나 왔소. 아들아! 개동아! 개동아!”
아악! 이게 무슨 말인가요? 개동이라니요? 아빠가 취해도 한참 취했나봐요.
업동이 말대로 개자를 붙이니 기분이 영 찜찜하네요.
“개동이 엄마 어디 있어?”
엄마가 기다리다 지쳤는지 기어 들어가는 소리를 했어요.
“정말 너무해요. 하루종일 기다리게 해놓고 무슨 술이에요.”
“아, 여보 나 술 한잔했수. 미안 미안...우리 업동이 때문에....”
아빠가 한숨을 푹 쉬더니 두리번거렸어요
“호동이! 우리 호동이 어디 있어? 아, 저기 있구먼. 녀석 이리와 봐. 밥 먹었어? 그래그래.”
내가 꼬리치며 달려가자 아빠는 내 앞에 푹 꼬부라졌어요. 공훈이 형이 놀라 부축하는데 하얀 뭉치하나가 땅에 툭 떨어졌어요.
“아빠 이게 뭐예요?”
공훈이 형이 집어든 것은 하얀 국화꽃다발이었어요
“응, 업동이 오면 주려고. 업동이 녀석 아직 안 왔지? 이 녀석이 집을 못 찾아오니 우리가 찾아가야지.”
아빠가 갑자기 옷깃을 여미며 대문을 향해 돌아섰어요.
“여보! 아들아! 호동아! 가자. 업동이 찾으러.”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릴해요. 이밤중에 어디에서 찾아요?”
엄마가 비틀거리는 아빠를 부축해서 들어오려는데 아빠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어요.
“식구대로 다 가잔말야. 내가 업동이 간 곳을 알아.”
아빠의 호령에 우리는 주눅이 들어 줄줄 따라나섰어요.
비틀거리는 아빠 뒤에 엄마.
지쳐 초죽음이 된 엄마 뒤에 공훈이 형.
하얀 꽃을 든 공훈이 형 뒤에 나.
업동이를 미워하던 나 뒤에 구부정한 그림자.

“여보 여긴 산책로가 아니잖아요?”
엄마의 염려를 뒤로하고 아빠는 평소 가던 산길을 벗어나 근린공원길을 더듬어 한참을 올라갔어요. 영문을 모르고 따르는 엄마가 드디어 주저앉고 말았어요. 불길한 생각에 우리는 무슨 말이든 해야 했어요.
“여보, 우리 업동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지요?”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어요. 꽃을 든 공훈이 형 눈에도 물기가 비쳤어요.
“조금만 더 가면 돼.”
아빠의 목소리도 젖었어요. 정말 무슨 일이 났나봐요. 근린공원에는 밤 산보를 나온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를 힐긋 힐긋 쳐다봐요. 앞서가던 아빠는 숨이 찬지 허억! 소리를 내며 커다란 소나무 밑에 주저앉았어요.
“여기야. 우리 업동이 집이.......”
뒤따르던 우리들은 얼어붙은 듯 멈추어 섰어요. 공원 가로등 불빛이 비스듬이 들어와 있는 그곳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 꽃밭 모퉁이 소나무 밭이었어요.
“원래 외로웠던 놈이라 산중에 묻지 못했어. 여기서 보면 우리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사람들이 꽃을 보려고 멀리서 올려다보니 외롭지는 않을 거야.”
“킁! 킁! 업동이 형.”
땅 밑에서 업동이 형 냄새가 나요.
“업동이 형 거기서 뭐해. 어서 나와!”
대답이 없어요. 나는 흙무더기를 발로 파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나를 끌어안고 흐느끼기 시작했어요.
“크∼윽! 그 녀석을 어찌 잊어. 몸둥이가 부서져 너무 아파서 짓지도 못하고...나를 빤히 바라보는데...그 눈빛을 어떻게 잊어. 이놈의 차! 이놈의 차! 내가 앞으로 타면 개다 개!”
숨이 곧 넘어갈 듯 슬퍼하던 아빠가 또 말을 이었어요
“잊어야지. 그래도 잊어야지 어쩔 것이여. 그 녀석, 세상에 나와 고생 많이 했으 니 좋은데 갔을 거야.”
아빠의 흐느낌이 끝났어요.
공훈이 형이 들고 있던 하얀 국화꽃을 큰 소나무 아래 내려놓았어요.
우리는 한참동안 눈을 감고 서 있었어요.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니까 너무 슬퍼서 나는 하늘을 쳐다보고 엉엉 울었어요. 한참 울고 나니 답답하던 가슴이 좀 풀렸어요.
아빠 엄마 공훈이 형은 밤이 깊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어요.
나는 아침에 덮은 듯한 흙무더기를 발로 꾹꾹 밟았어요.
“업동이 형, 이제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만 살아. 내가 자주 올게.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들려줄게.”

업동이 형은 아침에 자동차에 치였대요. 아빠를 따라 곧장 갔으면 괜찮을 것을 방랑기가 발동하여 어슬렁대다 아빠를 놓쳤대요. 길 건너에서 업동아! 찾아 헤매는 아빠 목소리를 듣고 무작정 차도로 달려들었나 봐요.
“업동이 형, 사람들 너무 미워하지마. 이 세상에 아빠 엄마 같은 사람도 있잖아. 형도 여섯 해 살면서 얼마나 고달팠어. 사람들은 길게는 백년까지도 살아가야 하니 오죽하겠어? 그러니 힘없는 우리‘개’자를 팔아서라도 위안을 얻고자하니 우리가 이해해야지. 형 이제 푹 쉬어. 내가 형이 못다 푼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 줄게. 내가 누구야? 좋을 호, 호동이잖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서 이제 우리 개를 함부로 하지않는 세상을 만들어 놓을게. 그리고 개소리 좀 들으면 어때. 우리는 어차피 개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