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笑곳 이야기/동화.칼럼.기사

(동화) 그림 속에 없는 그림

가마실 / 설인 2012. 10. 23. 20:09

 

(습작동화)

그림 속에 없는 그림

                                                                 성갑숙

 

 

 

노랑노랑 개나리 울타리 안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려요.

“일학년!”

“네에!”

“준비 다 됐어요?”

“네!”

“자, 이번 시간에는 여러분들의 가족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어요. 우선 도화지에다가 자기 집 가족들을 모두 그려보세요.”

“네~에!”

아이들은 저마다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도화지를 메웠어요. 일학년 선생님은 아이들 책상 위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가족 그림에 관심을 가졌어요. 일 년 동안 담임을 맡아 가르칠 학생들이니까요. 그러다가 턱을 고이고 있는 그림이 곁에서 잠시 머물렀어요.

“안그림, 다 그렸어요?”

“네.”

“그래? 그런데요. 안그림이 그림 속에 안 그린 것이 있네요?”

“……?”

“우하하하! 안그림이니까 안 그렸나 봐요.”

아이들이 목을 빼고 그림이의 그림을 기웃거렸어요.

“어디보자. 병아리 두 마리는 노랑 부리가 귀엽고, 돼지는 벌룸벌룸 콧구멍 이 시원시원하고, 개굴개굴 개구리는 눈이 커서 또록또록하고, 반달눈썹 엄 마는 정말 미인이구나. 그런데 얼굴이 제일 큰 아빠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없네?”

“저……저……기억이…….”

“기억이?”

“네, 기억이 안……나요.”

“……?”

선생님은 당황한 듯 얼른 딴청을 부렸어요.

“얘들아, 안그림이 그림 어때? 가족이 많아 좋지않니?”

“에게게… 개구리가 뭔 가족이대요?”

짝꿍 입이 삐죽 나왔어요. 그림이가 식식거리더니 힘주어 말했어요.

“우리 집 우물가에서 매일 매일 우리랑 같이 사니까 우리 식구다 왜?”

“그럼 요요 병아리는……?”

짝꿍 손가락이 병아리 부리를 콕콕 찍어요.

“치…… 꼬순이 꼬댁이는 내 동생이야. 내 방에서 같이 자기도 하는 걸.”

짝꿍 손가락을 얼른 밀어낸 그림이는 꼬순이 꼬댁이 얘기에 열을 올렸어요.

 

 

그날은 꽃샘바람이 쌩쌩 불었어요. 그림이는 혼자 울퉁불퉁 시오리 길을 걸어서 대강초등학교에 도착했지요. 교문 앞까지는 씩씩하게 걸어왔는데요. 막상 교문 앞에 도착하자 주눅이 들었어요.

호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웅크려 있는데요. 교문 안으로 병아리 같이 귀여운 입학생들이 연신 들어갔어요. 엄마 아빠 손을 잡고요. 곧 입학식이 시작된다고 교내 방송이 운동장 울타리까지 울려 퍼질 때도 그림이는 교문 한쪽 구석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지요. 그 때였어요.

“얘, 너는 안 들어가니?”

털모자를 폭 눌러 쓴 시골 할머니가 교문 한쪽 구석자리에서 걱정스레 말했어요.

“저…….”

무슨 말을 할까 쩔쩔매던 그림이가 할머니 앞에 놓인 병아리 광주리에 눈이 꽂혔어요. 그리고는 마치 솔개가 된 듯이 화들짝 달려들었어요.

“할머니, 이 병아리들 엄마는 어디 있어요?”

“으응? 집에 있지.”

뜻밖의 질문에 할머니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어요.

“아! 그러니까 삐약삐약 하는구나.”

“그게 무슨 말이니?”

“무서워서 그래요. 엄마 떨어져 왔으니까.”

“하이고 고녀석도 참, 맹랑하구나.”

그림이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병아리 담긴 광주리 앞을 서성이자 할머니가 또 물어요.

“너, 오늘 처음 학교에 온 입학생이구나?”

“네, 맞아요. 할머니 점쟁이 같아요.”

“하이고 녀석 점쟁이는 또 어떻게 알고?”

“우리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살아도 내가 하는 일을 잘 맞히는 점쟁이래 요.”

“누가 그랬어?”

“엄마가요.”

“그런 엄마는 어디 있는고?

“음… 좀 있다 온댔어요.”

“그으래? 아침에 엄마가 바빴구나? 그나저나 곧 입학식이 시작 될텐데 저 안에 들어가 기다리려므나?”

그림이 엉덩이가 똥마려운 강아지 모양 엉거주춤 뒤로 빠지는가 싶더니

“저어……그냥 여기서 병아리 구경 좀 더 하면 안 돼요?”

“그야, 괜찮다만… 입학식이 곧 시작될텐데?”

할머니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어요. 병아리 광주리 덮개를 더 벌려놓기는 했지만요.

“할머니 이 병아리 아빠는 어디 있어요?”

“우리 집에 지 에미랑 있단다.”

“그럼, 이 병아리는 엄마 아빠와 헤어졌네요?”

“그렇지, 이제 새 집에서 새 주인을 만나 어른 닭이 되어야 한단다.”

“요렇게 쪼그만 게 어떻게요? 불쌍하잖아요.”

“아니지, 이것 봐 먹이를 주면 콕콕 쪼아 먹으니까. 혼자서도 곧잘 찾아 먹 을 거야. 그러면 쑥쑥 자랄 수 있어.”

“아! 그렇구나.”

“너도 오늘부터 초등학생이 되니까 엄마 아빠 떨어져서 혼자 이 학교 다니 면서 공부하고 훌륭한 어른이 될 거잖아?”

그림이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는 할머니가 덧붙입니다.

“어쩌? 지금 저 운동장 가운데로 뛰어가서 어서 입학해야지?”

그림이가 부스스 일어섭니다.

“저어… 할머니, 나중에 우리 엄마 오면 병아리 사 달랠 거니까 그때까지 가지마세요.”

할머니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림이는 입학식장을 향해 냅다 뛰었어요. 마치 다 큰 수탉처럼 껑충껑충 달려갔어요.

그림이 엄마는 입학식이 끝날 무렵에 학교에 도착했어요. 이른 아침부터 남새밭에서 일하다가 왔는지 옷은 나들이용으로 갈아입었다만 모자를 써서 눌린 머리는 미처 손질하지 못한 모양이네요.

그림이는 그래도 안심이 되어요. 담임선생님을 따라 앞으로 공부할 일학년 교실로 들어가면서도 혹시나 엄마가 중간에 집으로 먼저 갈까 염려되어 자꾸 뒤돌아보았지요. 다행히 엄마는 입학식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때까지 그림이 곁에 있었고요.

교문을 나설 때는 그림이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아차! 잊을 뻔 했다. 엄마, 병아리 사줘.”

“얘는? 안 돼! 누가 키우려고 그래.”

“내가 키울 거야.”

“저런 곳에서 파는 것은 엄마 품에 자라지 않아 빨리 죽는단다.”

“아냐, 저 할머니가 그러는데 집에 병아리의 엄마 아빠가 있댔어.”

그림이는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 털모자할머니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어요.

“애가 점점…….”

“저 병아리 불쌍해. 엄마 아빠와 헤어져서 왔단말야.”

곧 울상이 될 것 같은 그림이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던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병아리가 담긴 광주리 앞으로 다가앉았어요. 노란 병아리들이 작은 날개를 파르르 떨며 할머니 쪽으로 오글오글 몰려들었어요. 한 마리 한 마리 집어서 꽁지를 요리조리 살피던 엄마는 조심스레 두 마리를 골랐어요.

“요것은 꽁지깃이 툭 튀어나왔으니 암컷이고. 요것은 좀 더 커야 꽁지깃이 나오는 수컷이란다.”

“우와! 그럼 둘이 커서 부부하면 되겠네?”

“그래, 네가 잘 키워서 결혼 시켜주렴.”

“그럼 알도 낳아?”

“그럼, 알 많이 낳으면 우리 그림이 좋아하는 물감도 화판도 많이 사서 화 가의 꿈을 이루게 할 거야.”

“그 대신 그림이 너, 얘들 응가도 책임지는 거다?”

“옙!” 코를 싸쥐었지만 그림이 대답은 힘찼어요.

엄마와 둘이 사는 그림이 집에 식구가 늘었어요. 새 식구 병아리의 방은 임시로 만들고요. 우선 조그만 종이상자에 짚은 깔고 모이통과 물그릇을 넣어 주었다가 병아리가 크면 마당가에 닭장을 지어주기로 했어요.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꼬댁이와 꼬순이로요.

그때부터 학교에 다녀온 그림이는 매일 매일 바빠요. 꼬댁이 꼬순이를 돌봐야하니까요. 모이도 챙겨주고 똥도 치워 주어야 하고요. 접시에 물을 담아 넣어주면 쫑쫑쫑쫑 걸어와 물그릇에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하는 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안아주고 싶어도 자꾸 만지면 안 된데요. 그냥 보고 있던 그림이가 화판을 꺼내들었어요.

그 날 그림이 화판에는 노란 병아리가 조그만 부리를 쳐들고 사이좋게 물을 먹고 있고요. 날이 갈수록 털 색깔도 짙어지고 날개깃도 커졌어요. 꼬순이 꼬댁이가 통통하게 살이 오를 무렵 엄마는 마당가 감나무 그루터기 옆에 닭장을 지어주어야 겠다고 그물망을 준비했어요.

그렇게 밤이 가고 날이 가고 그림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 싶더니 요즘 몽당 크레파스 때문에 미술시간이 싫어요. 방과 후 그림이가 부지런히 산으로 들로 나가 닭 모이를 구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지요.

꼬순이는 특히 메뚜기를 좋아해요. 풀밭에 폴짝 폴짝 튀어오르는 메뚜기 잡기는 쉽지않아요. ‘나 좀 그냥 두란말야’ 뒷다리를 퉁퉁 퉁기며 그림이를 피해 도망갔어요.

“미안해 메뚜기야. 꼬순이가 많이 먹어야 알을 낳고, 알을 낳아야 내 크레 파스를 산단 말이야. 나 요즘 심란해. 짝꿍은 생일 선물로 45색 크레파스에 물감까지 받았단 말이야.”

메뚜기는 푸르르르 더욱 높이 날아가며 뾰루통 말했어요.

“그게 왜 내 탓이야?

“그림도 못 그리면서 잘난 체 자랑하는 짝꿍을 도저히 못 보겠단 말야.”

“저기 벼논에 가봐. 개구리밥이 동동 떠 있잖아. 왜 나만 갖고 그래. 너 아 니래도 우리 지금 숨 쉬고 사는 것조차 힘들어. 내 몸에 이 지독한 약냄새 도대체 농부들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를 먹는다고 암탉이 온전한 알을 낳을 것 같애?”

매번 허탕만 치던 그림이는 뜰채로 개구리밥을 가득 건져 돌아오곤 했어요.

 

그렇게 알 낳기를 기다리는 꼬순이에게 어느 날 부턴가 걱정스런 일이 생겼어요. 꼬순이 등에 털이 눈에 띄게 벗겨져 있어요. 어디 아픈가 하고 요리조리 살피던 그림이가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보게 되었어요. 덩치 큰 꼬댁이가 꼬순이 등에 올라타서 짓이기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꼬댁이가 짓이라니…?’ 모이통을 엎지르며 꼬순이 괴롭히기에 재미 붙인 꼴이란. 그림이가 닭장 안으로 들어가 빗자루 몽둥이를 들고 펄펄 뛰었어요. 그런 그림이를 달랜 것은 엄마였어요.

“그림아, 꼬댁이가 사춘기인가보다.”

“네? 사춘기가 뭐예요?”

“응, 곧 어른 닭이 되려고 그래.”

“어른이 되려니까 더욱 어른스러워야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녀석들을 좀 떼어놓아야 할까보다.”

사춘기인지 뭔지 정말 알 수 없어요. 그렇게 의젓하던 꼬댁이가 깡패로 변하다니. 그 행패를 두고 볼 수 없어요. 꼬순이 등에 올라타서 뒷머리를 콕콕 찍어대니 꼬순이가 도망 다니느라 요 며칠 모이도 제대로 못 먹은 모양이어요. 그림이가 보지 않을 때도 그랬는지 꼬순이 덩치가 꼬댁이에 비해 턱 없이 작아보였어요. 엄마가 애정표현이라며 그림이를 안심시켰으나 정작 모이를 들고 들어간 엄마도 꼬댁이를 혼내주고 나왔어요. 꼬댁이가 ‘꼬댁꼭 꼬댁꼭’ 하며 횃대 위로 도망가더니 내려오지 못하고 있어요.

엄마가 꼬순이 상태를 며칠 지켜보더니 냉정하게 결단이 내렸어요. 감나무 사이 그물망이 또 하나 쳐지고 꼬댁이가 닭장에서 쫓겨나면서 따로 사는 부부가 되었어요. 꼬순이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저녁마다 컴컴한 닭장에 혼자 웅크려 있을 것을 꼬순이 생각할 때면 그림이 엄마 팔베개도 편안치 않아요.

다음날 그림이의 화판에는 그물망을 사이에 두고 돌아앉은 꼬댁이가 쓸쓸해 보여요. 그 당당하던 볏도 축 늘어졌고요. 그뿐인가요. 꼬순이 눈에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은 지켜본 엄마도 예전과 달라졌어요. 새벽녘 꼬댁이 홰치는 소리에 설핏 잠이 깬 그림이가 엄마의 훌쩍임을 들었거든요. 엄마는 잠자는 그림이 발을 만지작거리며 작은 어깨를 들썩였어요. 그 전날 축구를 하다가 발가락을 다쳤거든요. 평소 신던 운동화가 작아서 뒤축을 접어 끌고 다니다가 축구장에서는 맨발로 뛰었기 때문이어요. 방학이 끝나도록 그림이는 새 운동화를 신지 못했어요.

 

2학기 개학을 앞 둔 날 새벽에도 꼬댁이는 ‘꼬끼오~’ 목청을 돋우었어요. 방학 내내 그림이가 잡아다 준 메뚜기 잠자리 올챙이를 먹은 꼬순이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어요. 달걀을 낳았다고 “꼬댁꼭 꼬댁꼭‘하며 알자리를 맴도는 것이어요. 어느 틈엔지 엄마는 꼬순이가 알 낳을 둥우리를 만들어 닭장 안에 넣어 두었지요.

그렇게 꼬순이가 알을 낳으려는 무렵 꼬댁이는 다시 꼬순이 곁으로 돌아오고요. 그림이 화판에는 어느덧 병아리가 오종종 걸어나오고요. 수탉이 따라 나와 병아리를 몰고 다니고요. 솔개가 하늘을 빙빙 돌고요.

“너는 좋겠다 아빠가 있어서.”

먹이 빻아주면서 중얼거리는 그림이도 학년이 올라가고 훌쩍 자랐지요.

그렇게 행복하기만 하면 어디가 덧나나요? 꼬댁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요.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어요.

“덩치가 커서 큰짐승에 채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건너 마을 암탉에게 홀려 따라갔나?”

중얼거리는 엄마는 꼬댁이 사라진 그물망을 우두커니 바라보고있어요. 이웃집 채소밭을 탐했나? 산비알 참깨밭에 혹했나?

‘아이고 어디로 갔을까’ 엄마와 온 동네를 다 뒤져도 없어요.

꼬댁이를 건너 마을 닭장 안에서 본 것은 일 년 후였어요. 우연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그림이 눈에 걸린 것이어요. 그 집 암탉 곁에 꾸어다 논 보릿자루 모양 한쪽 구석 쭈구리고 있는 모양이 아무래도 꼬댁이 같아서 들여다보고 있는데요. 친구 최고집이가 나왔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응, 저 수탉이…”

“저 닭이 왜?”

“우리 꼬댁이 닮았어.”

“그래서?”

어딘가 찔리는 게 있는 말투였어요. 그림이는 밑져야 본전이니 꼬댁이를 불러보기로 했어요.

“꼬댁아! 이리와 봐.”

“먼 소리여! 꼬댁이? 참나 별 거지같은 소릴 하네.”

그림이는 더욱 큰소리로 말했어요.

“이 바보야, 나야 나!”

닭장 문을 흔들어 대니까 먹이를 주려는 줄 알았는지 수탉이 힐끔거리며 다가왔어요. 그러자 최고집이가 버럭 화를 냈어요.

“야! 그만두라니까. 너희 집은 닭도 주인 닮았나보지? 집 나가게?”

“이 자식이 그게 무슨 소리야?”

“어쨌거나 너희 아버지는 집에 없잖아.”

이럴 때는 꼬댁이처럼 좀 사나웠으면 좋겠다. 평상시 쌈닭처럼 싸움을 좀 배워두었더라면 암튼 그날 최고집이와 안 죽을 만큼 싸웠어요. 집으로 돌아올 기운이 없을 정도로요.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데요. 엄마는 애비가 있는데 애비 없는 자식 취급받는 것은 그림이 행실이 나빠서 그런다며 밥 먹을 자격이 없다고 했어요.

“왜 그럼 아버지는 우리 집에 없는 거야?” 엄마한테 대들었다가 그림이는 기어이 집을 쫓겨나고 말았어요.

해거름에 갈 곳이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엄마여요. 이제 그림이는 대문 밖에서 엄마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얘, 어두워지는데 왜 나와 있니? 어서 들어가거라.”

동네사람 지나가면 창피해서 이른 저녁밥 먹고 놀러 나온 척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나타난 아저씨가요. 건너 마을 바지런아저씨인가 했더니 낯선 아저씨여요. 바지런아저씨는 동네일을 도맡아 하니까 밤이고 낮이고 시시때때로 동네를 휘휘 돌아다니시거든요. 낯선 아저씨가 그냥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자꾸 말을 건네요.

“얘?”

“…….”

“속상한 일 있나보구나?”

처음 본 아저씨가 그림이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본 듯 말해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그림이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해요.

“엄마가 미워서요.”했다가 내친김에 큰소리로 “아버지도요. 꼬댁이도요. 다 미워요.” 했다.

“허어! 미운 사람은 많은데 혼내려면 기운부터 차려야지?”

낯선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부시럭부시럭 무언가를 꺼내서 건넸어요. 시골에서는 귀한 빵이었어요. 배가 고프면서도 머뭇거리는 그림이 손에 따뜻이 쥐어주고 있는데요. 골목 끝에서 최고집이 엄마가 헐레벌떡 나타났어요. 꼬댁이를 싸안고요. 최고집이 엄마가 대문을 들치기 전에 그림이 곁에 아저씨는 연기처럼 사라지고요. 엄마가 득달같이 집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에고, 그림이 엄마 미안해요. 이집 닭인 줄 몰랐어요.”

최고집이 엄마는 새끼줄로 날개가 꽁꽁 묶인 꼬댁이와 그림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애들이 철없어 뱉은 말 마음 두지마세요.”

그림이 엄마가 제집을 두고 떠돌아다닌 꼬댁이를 받아 닭장 안에 휙 집어던졌어요.

닭장 안이 소란했어요. 꼬순이와 식구들이 저녁을 먹다가 후다닥 횟대 위로 도망을 갔어요. 닭장 안 대장이던 꼬댁이가 돌아왔는데 모두들 고개를 아래로 주욱거리며

“어이구 이게 누구유?”

반가운 건 지, 괘씸하고 미운 것인 지, 남편을 맞이하는 꼬순이 모가지 주욱 늘어지는데요. 발은 횟대 위에 들러붙은 듯 꼼짝 않아요. 꼬댁이도 곧장 횟대로 올라가지 않았어요. 힐끗힐끗 올려다 내려다보다가 알 수 없는 옹알이를 하면서 쩔쩔 매고 있어요.

꼬댁이가 집 나가기 전에는 꼬순이랑 날개를 비비적거리거나 툭툭 부리를 마주치든가 허리께를 툭툭 발길질을 하며 업히기도 했을텐데요. 무덤덤 반응이 없어요. 꼬댁이는 다시 돌아 온 집이 영 낯선 모양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꼬댁이는 닭장에서 다시 사라졌어요. 한번 떠돌이 바람 맛을 본 놈은 어쩔 수 없다며 엄마는 아예 찾을 생각을 안했어요.

꼬순이는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하고요. 혼자 낳고 혼자 꼬꼬댁 울다가 꼬순이 딸들이 합세하여 알을 보탰어요. 그림이는 또 부화하기를 기다렸지요.

“이 알을 무정란이란다. 애비 없이 낳았으니 이제 그냥 팔아야한다.”

그림이는 어딘가 허전한 닭장 안에 들여다보며

“꼬순아 너도 우리 엄마랑 같네. 꼬댁이가 없어 쓸쓸하지?”

그렇게 꼬순이 식구들이 매일 알을 낳고 엄마는 매일 달걀을 세며 한 곳에 모았어요.

“네 학비를 마련해야하니 모아서 팔자.”

학교 앞 만물가계에 내다 파는 일은 그림이 몫이에요. 그 만물가계에는 학용품도 팔고 과자도 팔고요. 특히 비가사탕은 그림이가 정말 먹고 싶은 과자에요. 아무리 먹고 싶어도 참아야했어요.

 

한날은 엄마가 읍내 장에 가고 마루 끝에 뒹굴고 있었는데요. 닭장 안에서 꼬댁꼭 꼬댁꼭 알을 낳았다는 신호가 들렸어요. 그림이는 그 소리를 듣고 곧장 닭장 안을 들어섰지요. 따뜻한 알을 움켜쥐고 가게로 달렸어요. 입안에 비가 사탕이 살살 녹는 듯했어요. 만물가게를 향하여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요.

“얘야 어디 가니?”

아차! 장에 가는 엄마를 앞질렀어요. 이럴 때는 달걀이 좀 작았으면 좋겠어요.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따스한 달걀이 엄마를 빼꼼 내다보네요.

“으응? 알 낳았다고 엄마한테 말하려고….”

“그래? 모아서 팔자꾸나. 집에 갖다 두어라.”

무거운 채소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엄마는 가던 길을 종종걸음 쳤어요. 발길을 돌리는 그림이 눈앞에 잠시 비가사탕이 어른거리나 싶더니 이내 어깨가 축 늘어졌어요. 무거운 보따리를 이고 이십리 길을 재촉하는 엄마의 뒷모습은 자꾸 멀어지고요. 그림이는 명치끝이 먹먹하게 아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요.

 

‘다시는…, 다시는… 거짓말 하지않을 거야.’ 다짐하던 그림이가 드디어 중학교 교복을 입게 되었어요.

“그림아, 이제 아버지한테 다녀와야 겠다.”

“네? 아버지요?”

“그래 읍내 가서 네 학비를 달라고 해라.”

걸어서 하루거리에 아버지가 산대요. 멀리 살아도 그 아버지가 있으니 최고집이를 묵사발 만들 수 있었으니 감사해야 하고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그날만큼은 그림이 자기와의 약속을 어기기로 했어요. 달걀을 몇 알 훔쳐 아버지께 드리려고요.

초등학교에서 시오리 더 걸어가면 읍내로 가는 버스가 하루 두 번 온대요. 걸어서 가라는 엄마가 야속했어요. 무작정 버스에 올랐구요. 그런데 차비가 없어요. 버스기사가 “차비는?” 했어요.

“저어……이것 밖에…….”

“이놈 공차를 타겠다고? 이리 내!”

아저씨는 달걀을 톡 깨서 한입에 쪽 마시고는 “다음부터는 차비 가져와?” 했어요.

그렇게 물어물어 찾아간 아버지 사는 집은 낮은 동산 밑에 있고요. 대문에는 잎이 마른 대나무가 꽂혀 있었어요. 열려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요. 방문이 반쯤 열린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렸어요. 그런데요.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고는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어요.

“어! 그 아저씨?”

“흐음, 그래 왔구나?”

놀란 기색을 애써 감추는 아저씨를 멍히 바라보던 그림이가 엉거주춤 앉았어요. 꼬댁이 때문에 쫓겨나서 대문 밖을 서성일 때 빵을 쥐어주던 그 아저씨. 그 아저씨가 아버지라니……. 그림이는 잠시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려 애썼어요.

아버지 옆에는 낯선 여자 한사람이 앉아있어요.

‘아버지하고 같이 사는 사람이 있을 거다. 아무 말 말고 묻는 말만 대답하고 와야 한다.’ 대문을 나설 때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그러면 엄마는 이미 알고 있는 여자였어요.

아버지는 그림이집 꼬댁이 하고 똑같아요. 이쁜 꼬순이를 두고 집을 떠나 동네 최고집이 집 사나운 암탉하고 살고 있었으니까요.

아버지 곁에 그 사람은 집에 있는 그림이 엄마와 영 딴판이어요. 남자처럼 우락부락 사납게 생겼어요. 아버지는 그 사람과 말보다 눈으로 말했어요. 아버지가 책상만 내려다보고 무겁게 앉아 있으니 그 사람이 방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갔다가 하면서 아버지 하는 일을 묵묵히 거들고 있어요.

“엄마가 보냈구나.”

앉은뱅이책상 위에 서류더미를 주섬주섬 밀어놓은 아버지는 그림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어요. 그리고 바지주머니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반으로 접어주었어요.

“잘 간수해라. 중학교 가려는데 공부 좀 하냐?”

“예.”

“그럼 가거라. 사람 들어오기 전에 어서가거라.”

아버지는 낯선 여자를 그냥 사람이라 했어요. 방을 나오자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냥 아무 말 없이 아버지가 사는 집을 나왔어요.

‘그 사람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몰래 우리집을 기웃거리다 그냥 돌아가시곤 했다. 아버지는 바보다. 꼬댁이처럼 바보다.’

그림이는 아버지께 언제 또 올 건지 묻지도 못했어요. 들고 갔던 달걀도 건네지 못했어요. 버스 타는 곳으로 오면서 보자기 속 차갑게 잡히는 달걀을 꺼내 보았어요. 엄지와 검지 사이 그려진 하얀 동그라미는 놀란 아버지 눈동자 같아서 얼른 기사아저씨를 주어버렸어요.

깡패 꼬댁이 없어도 꼬순이는 알 낳고 잘 살듯이 엄마도 잘 살기는 하지만요. 그림이는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요.

“엄마, 아버지는 왜 그 집에 살아? 여기로 못 와?”

“못 올 형편이니 그러고 있겠지.”

“그 여자는 누구야?”

“아버지 일 거드는 사람이다.”

‘치, 말 안하면 누가 모를 줄 알고, 다음부터 아버지한테 안 갈 거다.’ 는 말을 하려다 꿀꺽 삼켰어요.

“혹시 다음부터 안 가겠다는 말은 하지 말거라. 나 혼자 농사지어 먹고 살기도 벅차다. 그러니 학비는 받아 와야지. 네 그림도구도 만만치 않아.”

엄마가 봉투를 받아들며 한 숨을 쉬었어요.

‘그까짓 학교 안 가. 그림도 안 그릴 거야.’ 라는 말도 꿀꺽 삼켰어요.

집나간 꼬댁이를 미워하면서도 그림이 그림 속에 꼬댁이가 항상 남아 있는 것과,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무덤덤한 척 하는 엄마의 마음은 풀 수 없는 숙제 같아요.

그림이가 어려서 그 숙제를 풀 수 없다면, 어서 자라기를 바라야겠지요. 그림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다 보면 사람의 마음도 느낄 수 있으니 아버지 마음도, 엄마 마음도, 꼬댁이 마음도 알 수 있겠지요?

 

곧 전국 규모의 큰 사생대회가 있다네요. 물론 학교 대표로 그림이가 뽑혔고요. 그런데요. 그 대회의 주제가 <행복한 가족>이라네요. 그러고 보면 그즈음 그림이가 아버지 얼굴을 보고 온 것은 운명 같아요.

입은 꾹 다물었데요. 눈은 웃고 있는 아버지, 그 모습 선명히 그릴 수 있으나 그림이는 그리지 않기로 했어요. 그 보다 더 오래 전 기억에 남는 모습이 있으니까요.

엄마한테 쫓겨나 대문 밖에 쪼그려 앉았을 때, 골목 어귀 홀연히 나타나 보들보들한 빵을 건네주던 아버지, 그 따뜻한 손. 그 손을 그리기로 했어요. 그 손은 엄마 손을 잡았고요. 작은 그림이 손도 꼭 잡고 있어요. 그렇게 꼬옥 잡은 그림이 가족의 손 그림은 대상을 받기에 충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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