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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 어머님 팔순을 맞으며

가마실 / 설인 2010. 8. 14. 13:58

어머님 팔순을 맞으며....


 

어머니! 당신께서 좋아하시던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즈음 뒤란에서는 감나무 끝에 달린 감을 따먹느라 까치가

“깍깍”울기도 하겠지요.


 어머니, 당신께선 이런 가을을 좋아하시는 반면, 뒷산에서 뻐꾸기

 가 울어 봄을 알릴 때면, 집 뒤란을 휘돌아 나오며'저 소리가

무섭다' 하셨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가 서서히 녹기 시작하면 굳은 땅을 일구어 가지가지 씨앗들을 땅 속에 심어야하고, 겨울을 난 양파밭이랑 뒷골 보리밭에서 새싹이 기지개를 켤 때면 밉살스럽게 비어져 나오는 수많은 잡초들. 껄끄러운 보릿단을 뒷골

 몬당으로 끌어올려 집을 향하기까지..

「봄볕에는 며느리 내어놓고 가을볕에는 딸아기 내어 놓는다」는 그 따가운 봄 햇살에 당신의 얼굴은 서서히 흑갈색으로 변해 갔습니다. 이렇게 봄이 온다는 것은 당신께는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열 손가락의 지문을 논밭에다 다 내어준 대가로 가을 이맘때는

조그만 우리집 광 안은 갖가지 곡식들로 올망졸망 쌓이고 당신은 허리를 펴며 주름진 얼굴 가득 잠시 기쁨을 머금었습니다. 그 광에 차 있는 곡식들은 당신의 땀이며 피였습니다.


그 곡식들을 먹으며 저희들은 자라났습니다. 훌훌 자식들은 떠나야만 한다며, 하나 둘 당신의 품을 떠났고. 덩그런 집을 지키고 있는 당신의 어깨는 줄어만 갔습니다.


어느 날 동구 밖에서, 기다림에 기대 살던 당신이 지팡이를 의지한 모습을 처음 발견하고, 돌아와 밤잠을 설치며 슬퍼했지만 자식은 그저 자식이더이다. 믿었던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만 귓전을 울리고, 날 새면 일상에 젖어 잊고 살기 바쁘니 이 불효를

어찌하오리까. 

 

그러나 오늘 傘壽(팔순)를 맞아 바라보는 당신은 영원히 손상되지 않는 원시림이었음에 마냥 기뻐하고만 싶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세상에 눈을 들기 전부터 예비 된 원시림이 이었습니다. 80년에 80년이 지나도 영원히 손상되지 않을 원시림입니다.

 저희들 낯선 땅 황량한 들판을 걷다 돌부리에 채이고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들 있지만 한걸음에 달려가 호흡할 수 있는 당신의 품이 있으니 힘이 냅니다. 


 '정도를 걸어라' '그 무엇에도 굴하지 말라'당신은 무언의 교육을 했습니다. 강인함으로 집안대소사를 도맡아 몸소 본을 보였습니다.

깨달음이 늦은 자식들 용서 하십시오. 그리고 삶에 허덕이다

오늘에야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였음에 책하여 주시고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 되시옵소서.

 

'엄마'부르면 대답해 줄 당신이 곁에 있어 너무나 행복한 날에

    

                                             넷째 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