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론] 시상의 포착과 영감
홍흥기
수레 소리 덜거덕, 말 울음 소리 우수수 출정하는 장정들 저마다 허리에 화살을 차고 아비와 어미와 처자들이 뒤따르며 배웅을 하네
먼지가 일어 함양의 다리조차 보이질 않고 옷을 붙잡고 발을 뒹굴며 길을 막고 울부짖으니 통곡소리 곧바로 구름 낀 하늘을 무찌르누나. 길 가는 나그네 출정 군인에게 물어보니 출정 군인의 말이 소집이 하도 잦아서요
열 다섯에 북쪽 황하 전방을 방비하러 나가 마흔에 이르면 서쪽의 병영 농사를 짓는다오 갈 때에 이장이 죽을 때 머리 염하는 천을 주었는데 센머리로 돌아왔더니 또다시 국경수비랍니다
국경에는 전사자의 피가 바닷물처럼 흘러도 황제는 변방 개척의 뜻 여전하답니다
아니 못들었소, 우리 산동 2백 고을이
마을마다 엉겅퀴만 다북할 뿐이니
비록 억척스런 지어미가 밭갈이를 한대도
벼가 나면 이랑이 턱없이 삐뚤빼뚤하답니다
하물며 진땅의 병정이라 싸움은 견디지만
개와 닭처럼 휘몰아치니 배길 수 있겠습니까.(하략)
<兵車行>에서
車轔轔 馬蕭蕭 거린린 마소소/行人弓箭各在腰행인공전각재요
爺孃妻子走相送야양처자주상송/塵埃不見咸陽橋진애불견함양교
牽衣頓足欄道哭견의돈족난도곡/哭聲直上干雲霄곡성직상간운소.
道傍過者問行人도방과자문행인/行人但云點行頻행인단운점행빈
或從十五北防河혹종십오북방하/便至四十西營田편지사십서영전
去時里正與裹頭거시리정여과두/歸來頭白還戍邊귀래두백환수변
邊庭流血成海水변정유혈성해수/武皇開邊意未已무황개변의미이
君不聞漢家山東二百州군불문한가산동이백주/千村萬落生荊杞천촌만락생형기
縱有健婦把鋤ꝃ종유건부파서려/禾生隴畝無東西화생농묘무동서
況復秦兵耐苦戰황부진병내고전/被驅不異犬與鷄피구불이견여계.
장자가 말에 있어 중요한 것은 말하는 자의 뜻(語之所貴者意也)이라 한 바 있는데, 이는 언어의 본질을 사상과 감정의 전달에 두고 있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시가 언어예술로서, 말하는 자의 뜻의 표현과 최종 목적이 뜻의 전달에 있다고 할 때 그 뜻은 소홀히 취급될 수 없다. 명나라 때의 육시옹(陸時雍)은『詩鏡總論』에서 情과 意를 구별하고 있다.
무릇 단번에 이르는 것은 정이요, 힘써 표현해야 나타나는 것이 의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은 정이요, 반드시 그래야 한다거나 반드시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의이다…두보가 정교하고 심각하며 고원하고 탁월하지만, 고인과 나란히 할 수 없는 것은 의로써 뛰어나기 때문이다
(夫一往至者, 情也, 苦摹而出者, 意也. 若有若無者, 情也. 必然必不然者, 意也…少陵精矣, 刻矣, 高矣, 卓矣, 然而未齊於古人者, 以意勝也.)32)라고 하였다. 이에 비추어서 인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精, 刻, 高, 卓한 것의 원인이다. 이를 육시옹은 의로 본 것이다. 두보 시의 특장이 의에 있고, 의가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두보의 시는 당대 현 실을 반영하는 데 뛰어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두보 당대 현종은 양귀비에 현혹되어 있었고 국경 확장에 만족한 탓에 백성들을 징병과 납세로 몰아쳐 백성들의 살림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변방을 지키기 위해 가거나 인근 국가 정벌을 위한 출정이건 간에 그를 배웅하는 가족들은 재회를 약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에 따라 비통한 심회는 이 시의 사실적인 묘사와 표현 그대로이다.
그리고 모순에 찬 병역과 납세의 문제도 언어도단이다.
시대를 격한 과거 이웃 나라 일이라 매우 추상적이지만 두시를 감상하다보면 그 처참한 상태를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 반영에 뛰어나다는 평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긴 시라 하더라도 처음과 다른 중간으로의 변화, 그리고 비록 생략했지 만 하단부의 또다른 변화 등을 주도면밀하게 읽지 않으면 그 묘미를 제대로 간취하기 어렵다.
그 원인의 하나가 의를 우선하고 철저한 의도 의식하에 시를 창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위 작품은 사회고발의 차원에서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작품이다. 따라서 두보의 시는 목적과 의도하에 제작되는 시가 될 듯하다.
이와 달리 의식이 앞서고 주의․주장을 시로 형상화하는 상황도 고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의 설계도로서 의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의도나 목적 또는 사상의 시적 표현과 감동적 전달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이지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이때 시의 여러 구성요소들은 목적과 계산에 종속된다 할 것이다. 시가 어떤 사상이나 목적의 도구개념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내포되지만 분명 그런 시의 존재를 부인 할 수 없다.
한편 자크 마르탱은 영감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한 바 있지만, 그 말의 연장에서 영감에 따른 시창작을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에 맡기는 방법이라 하기는 어렵다. 또 그와 상대적으로 계획에 따르는 방법을 인위적인 시 창작이라 하기도 어렵지만, 때로 철저한 미학과 미의식을 갖고 그 의식에 따라 인위적이며 계산적인 시작행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 그와 같은 작품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시인의 이성․의식․의지가 주로 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소 거
리감이 있지만 각종 백일장에서 제목이 한정되거나 주어진 주제 또는 제시된 상황에 따라 시를 창작할 경우도 이와 연관이 있겠다. 왜냐하면 어떻게든지 제시된 그것과 무관할 수 없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과정에서 아무리 철저하게 설계도를 그리고 공식과 계산을 중시하고 처음의 의도와 의지를 준수하며 시를 쓰는 도중 돌연 시구절이 단절되거나 후속되어야 할 어휘,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낱말이나 시상, 시구절이 우연히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이지적인 계획에 따르는 시인이라 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이며, 그것에 따라 불가피하게 창작하는 방법이다.
어쩌면 초기의 계획에 정반대의 방향으로 시가 진전되거나 완성시키고 마는 사건은 시인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일이며 자주 예상 못했던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경우에 대하여 김춘수는 ‘착실한 훈련과 엄격한 비판정신으로 순간적인 영감을 통제해가는 시인도 또한 이것(영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라는 모리스 보우라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는 아무리 영감을 배제하고 인간의 의지나 의식, 또는 철저한 계산 아래 창작을 모색해도 무의식의 침투를 막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설명하기 또한 쉽지 않다. 사색적인 시인의 경우 신비한 외부의 도움, 즉 예기치 못한 타인의 목소리, 즉 어떤 의지의 출현과 만나게 된다.
이때 의지란 사색․계산 혹은 예상 등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적 작용보다 우선하며, 창조의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34) 불현듯 우연히 떠오른 낱말이나 시상은 그러면 어디에 있었던 것이고 왜 출현한 것일까. 정신분석학의 주장처럼 무의식의 영역에 내재해 있던 순간적 감정들이 의식의 세계로 분출된 것이라면 어떻게 창조의 그 순간에 나타날 수 있는가.
정신분석학이나 분석심리학이 문학 연구에 새로운 경지를 열고 강한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시창작과정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의식 세계의 필요성에 따라, 의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무의식에 내재하는 어떠한 이미지를 의식세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가능성의 문제가 새롭게 부상한다.
가능하다면 의식적으로 시를 창작하고 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애나 의지대로 후속되지 않는 시상에 대하여 일관성 있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의지로 무의식을 소위 쥐어짜거나 자극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일상적으로 많은 시인들이 한 편의 시를 창작하는 데 많은 시일을 소비하거나 작품을 아예 포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시적 창조는 아직도 하나의 신비이다.
오히려 시인이 그 부분에 적합한 단 하나의 낱말을 찾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왜냐하면 영감은 시인을 표현의 결핍과 거듭 투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고 자크 마르탱35)이 기술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영감은 시인이 표현의 결핍으로 거듭 투쟁한 결과 획득되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 스스로의 창작에 대한 열정이나 노력 없이 영감은 솟아오르지도 않고 외부로부터 다가오지도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pen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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