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로書로 공부방/시 창작법

[스크랩] 시상의 포착과 영감 5

가마실 / 설인 2011. 3. 20. 16:19

시상의 포착과 영감 5


이와 상대적으로 시인을 일종의 예언자로 보거나 영매, 또는 신들린 시인관에 입각해 영감에 의존하는 시인을 주장하더라도 시창작과정에서 시인의 이성 의식 의지 논리 등을 배제할 수 없다. 내습하는 영감에 따라 시를 창작했다 하더라도 하나의 작품이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독자와 화합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독자와 화합하고 교감하기 위해서 는 동시대에 통용되는 문법을 지켜야 한다.  문법과 질서 있는 문장,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인 구조와 통일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의미와 주제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의지는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창작과정에 도구로써 작용하는 작업이성, 이성적 의지 없이는 형태를 부여할 수가 없다. 영감은 시적 직관의 첫 배종(胚種)으로서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말하면서도 영감만을 의존하는 시인에 비판적인 마르탱은 영감 그 자체는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영감은 작품이 되게 하는 원천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감이 작품으로 형성되려면 이지적 노동, 모든 논리, 지혜, 자기 억제, 작업 이지, 자신감 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인간 정신에 있어서 지적 운동의 참여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시작과정에서 전적으로 시인이 지닌 지적 의식으로만 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순간 엄습하는 작품 전체의 발상이나 구절들을 전연 실감하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영감에만 의존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문장의 짜임새나 전체 구성에 있어 지적 의식의 개입 없이 가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영감과 지적 의식 중 어느 쪽에 많이 기울어져 작품이 되어 나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한쪽만으로 작품이 생산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계획에 따른 시작을 중시하건 영감에 의존하는 시인이건 서로 교차해 영감과 인간의 의지는 모두 소중한 요소이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이런 논의들이 시창작과정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아무리 어느 한쪽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고, 또 다른 측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할 때 두 타입의 종합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들에 관한 문제들은 차치하고 오히려 이 둘의 종합과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영감은 발상의 동기가 되는 동시에 작품을 쓰고 있는 도중에도 나타난다고 김춘수는 말하고 있다. 그는 처음 발동하는 영감을 전체적 통일적 영감이라 하고, 각 구절 각 행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발동하는 것을 부분적 수시적 영감이라 이름붙였다. 
 무질서하게 엄습하는 부분적 영감-창작 도중 떠오르는 수많은 낱말․조사․어미들―을 놓고 그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선택은 시인의 이성적 판단에 따르며, 작품의 성공여부도 곧 시인의 자발적 의지와 결정에 달려 있다. 상대적으로 전체적 통일적 영감은 발상의 동기가 되는 만큼 작품이 차후 전체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전체적 영감은 점차 사라지면서 의식의 개입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의식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집필 도중 전체적 영감이 제시한 나아갈 방향을 자주 망각하기도 한다. 따라서 양자의 화합과 적절한 거리 유지는 보다 격조 높은 시창작을 위해 필연적이다. 이제까지 시의 발단으로서 시상의 포착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시는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고, 사상과 감정은 삶의 경험에서 생성된다. 인간의 삶에서 비롯되는 사상과 감정은 시의 대상이 되지만 누구나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을 하나의 시상이라 하기는 어렵다. 한 편의 시상으로 성립하려면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독특한 자기만의 감정이며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 한 편의 모티브이고 핵심이며 시창작단계의 가장 처음 돌발적으로 침투한 시상, 소위 영감도 인간의 삶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상이나 감정의 시원과 동일하다. 그러나 보고 듣고 경험하는 데서 오는 단순한 사상․감정과 달리 전자는 변형․변모된 성질의 특별한 느낌으로서 구별 된다. 집필에 들어가기에 앞서 포착되는 영감은 비유컨대 시의 씨앗인 셈이다. 
 단지 씨앗에 불과하지만 이 속에는 시인이 최종적으로 수확할 열매가 내재해 있다. 장차 어디에 뿌리를 두고,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성장하며, 어떤 가지에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것인지, 그 열매는 어떤 맛과 향기를 띨 것인가 등 전체적인 얼개를 예측할 수 있다. 즉 나아갈 시의 방향을 미리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전개될 시의 구조와 형태․ 내용․주제 등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상 단계에서 유의하고 전제해야 할 것은 시작과 끝이다. 이 전제는 집필하고자 하는 시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무엇을 지향하는가 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 점을 망각했을 때 시는 도달할 목적지와 방향을 잃을 뿐만 아니 라 일관성 또는 통일성을 잃고 혼돈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구상단계에서 시작과 끝의 문제를 망각할 수 없다. 또한 종국의 목적지인 탈고의 단계에서 되짚어볼 문제이기도 하다. 즉 처음에 무엇을 표현하고 말하고자 했는가 확인할 사항이며, 과연 처음의 의도나 계산 혹은 영감이 가리킨 대로 표현되었는가 검토할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퇴고의 과정은 설정되며 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일상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