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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상의 포착과 영감 / 1 _홍흥기

가마실 / 설인 2011. 3. 20. 16:18

시상의 포착과 영감 / 1

홍흥기


시는 흔히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 한다.
엘리어트같은 경우는 사상과 감정의 정서적 등가물이라 하기도 했다.
단지 감정의 표현이라 하지 않고 이성이 주된 역할을 하는 사상을 동반시키는  까닭은 전술한 바대로 감정만으로 시가 성립될 수 없고 이성의 작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동양시학에서 이성과 감정이라는 용어 대신 그것의 복합개념으로서 성정을 설정하고 시가 성정의 표현이라 한 말도 비로소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대상은 단순한 외부세계의 존재나 현상을 가리키지 않고 외부세계의 자극, 즉 보고 듣고 경험하며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내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상과 감정이 시의 대상이라 할 것이다.

이제까지 논의한 자극․반응․감정․정서․성정 등은 모두 인간의 심리적 움직임이나 상태를 표현한다. 인간의 이러한 심리적 움직임과 시인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 대한 심리적 고찰은 문학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다. 이미 앞에서 외부세계의 자극으로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논의했지만, 감정을 시창작의 첫단계라고 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꽃을 보고 아름답다거나 향기롭다는 감정을 느끼고 품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 감정을 모티브로 해서는 작품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하다.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지나치게 일반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국화 옆에서>의 시인 서정주는 국화를 보면서 아름답다거나 향기롭다는 감정이 아닌 누님을 떠올렸다.
그 누님은 어떤 누님인가. 젊은 날의 그리움과 아쉬움들 때문에 가슴을 죄면서 멀고 먼 뒤안길을 돌아 이제는 그리움과 아쉬움의 젊음을 곰삭이고 거울 앞에 서서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누님이다. 국화에서 그런 누님을 느끼고 동일시한 것은 범속한 감정이 아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감정과 특수하게 다른 이 감정은 구별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일단 잠정적으로 영감이라 칭하고자 한다.

영감이 18세기 계몽주의주의 시대를 지나 19세기의 낡은 낭만주의 시대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문제삼고 운위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는 플라톤 이래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시창작과정의 첫단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를 영적 계시, 영매론, 또는 전의식이나 무의식으로부터의 분출이라는 주장이나 개념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차치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영감을 시적모티브로 인식하며 그 용어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또 그만큼 영감은 시 창작과정의 서두에서 핵심으로 기능하며 발상으로 시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전에 영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는 플라톤으로 보인다. 그는 시인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이었지만 시인의 창작과정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최초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 플라톤 이 사용한 영감의 의미와 시창작과정에서의 영감의 기능에 관하여 살피 고자 한다.

시신Muse이 먼저 한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주면 그 사람에 다른 사람들이 매어 달려 영감을 나누어 받게 된다. …… 서정시인이나 서사시인이나를 막론하고 모든 시인은 스스로의 기술에 의하여 아름다운 시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고 접신을 한 까닭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 서정시인 역시 아름다운 가락을 읊어낼 때 제 정신이 아니다. …… 영감을 받아 혼이 쏙 빠져버리고 이성의 힘이 다 새어나가기 전에는 창작이란 있을 수 없다. 시인은 기술적인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신의 능력에 의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공화국에서 시인 추방론을 주장하기도 할 만큼 시인에게 비판적 태도 를 견지했던 그는 이처럼 시인의 창작과정에 관심을 가졌으며 처음으로 영감을 언급하기도 했다. 인용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플라톤 은 창작이라는 행위에 대하여 철저한 영감설을 주장하는 동시에 시창작 과정에서 이성의 기능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시는 이성의 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짧은 진술 속에서는 시인에 대한 부정적 측면도 엿볼 수 있다. 시인을 비하시키는 까닭은 그가 이상적으로 그리 고 있는 절대진리의 세계 지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시인이 시작(始作) 단계부터 영감을 받아 야, 즉 신이 영감을 불어넣어주어야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영감을 받지 못하거나 접신되지 못하면 시창작은 단 한 구절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짧은 인용 속에 영감에 대한 정의는 보이지 않으나 플라톤이 인식하고 있던 영감은 시를 창작하고 노래할 수 있도록 시인에게 불어넣어준 알 수 없는 신의 능력(정신 작용)이라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보다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시창작과정과 영감, 그 속에서 영감의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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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일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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