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민중의 지팡이
-정년퇴직 즈음하여
/ 성갑숙
나는 당신을 잘 몰랐습니다
새벽녘 벗어두고 간
땀내 나는 정복의 행적을 조금 짐작했을 뿐
나는 당신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문득 광영 파출소 앞마당으로 들어
뜨거웠던 여름날, 송엽국 그 묵은 줄기 사이로
제 몸을 힘껏 밀어올린 꽃송이들을 봅니다
당신이 매일 드나들었을 출입문
닫힌 창 안으로, 마치
남아있는 당신의 열정처럼
어느 때보다 붉은 것을 봅니다
겉으로 보이는 질서정연한 저 풍경 속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당신의 시간들
오늘 나는
당신을 만나러 와서
당신이 살아 온 시간 속에 물들어
마치 외딴섬 홀로 두었던 연인을 만난 듯이
목이 멥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
당신이 그토록 지켜내어야 했던
민중, 그 중심에 서서
풍찬우와 37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문을 나설 당신을 기다리면서
나는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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