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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내 친구 베개

가마실 / 설인 2011. 8. 4. 16:34

 

(순천문단 25집 원고: 동화 1편)

내 친구 베개

                                                                                    성갑숙

 

나는 베개입니다. 나이는 올해로 스무 살이고요. 훈이와 동갑네기 입니다. 같이 태어났거든요.

그런데요 덩치는 훈이와 완전 달라요. 나는 몸뚱이가 태어날 때랑 똑 같고요. 훈이는 대장군같이 커요.

훈이의 쩍 벌어진 어깨를 보면 나도 무엇이든 많이 먹고 배불뚝이가 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요. 아직 아기같이 여린 훈이 마음을 받아줘야 하거든요.

 

 

 

이야기 하나

아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창틈으로 아카시아 향기가 솔솔 들어오니 묵은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몸단장을 해야 해요.

내가 태어난 날도 오늘같이 창밖은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하구요. 야산 언덕으로 갖가지 산나물이 파릇파릇했어요. 무르익은 봄날의 풀내음은 주인 맞을 기분만큼이나 상큼했답니다.

주인이 누구냐구요? 훈이요. 훈이가 엄마 뱃속에서 힘차게 발길질 하고 있을 때, 나는 한적한 시골집 장롱 속에 곱게 싸여 있었어요.

그러다가 훈이가 병원에서 응애! 하고 태어나던 날, 나도 장롱에서 폴짝 뛰어나와 세상구경을 했답니다.

포대기에 싸인 훈이가 안방으로 들어왔구요. 납작한 내 배 위에 살며시 누었답니다. 신기했어요. 새액새액 숨소리가 꼭 풀벌레 노래 소리 같았어요.

배고플 때 보채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나를 베고 새근새근 잠만 잤어요. 응가를 할 때는 냄새가 고약해서 코를 싸쥐기도 했지만 꾹 참아야 했어요.

“아이쿠! 우리 훈이 응가 했구나.”

“누른 황금색인걸 보니 건강하다는 징조야. 하하하!”

출근 준비 서두르던 아빠가 도망가지도 않고 들여다보고는 기저귀 가는 것을 도와주고 있어요.

“둥게둥게 어서 커서 효자둥이 되거라.”

나참! 똥을 들여다보고 저렇게들 좋아하시니 내가 무슨 트집을 잡겠어요. 아빠 말씀대로 훈이가 얼른 커서 화장실 가기를 바랄 밖에요.

 

 

이야기 둘

첫돌이 지난 훈이가 드디어 걸음마를 시작했어요. 옆집에 사는 빨간 리본머리 여자아이가 기웃기웃 대문을 들여다보자 훈이는 나를 질질 끌고 복도로 나갔어요.

두 친구는 머리를 맞대고 한참 옹알이를 하더니 계단 밑에 처억 드러눕네요. 나를 안고 토닥토닥 두드리는 것을 보니 빨간 리본머리 여자아이가 엄마인가 봐요. 코코 잠을 자던 아기가 아프다고 의사선생님이 왔어요. 훈이는 내 홀쭉한 배를 손가락으로 꼭꼭 찔러가며 진찰을 합니다.

“아이고~ 간지러워!”

훈이 의사가 고개를 잘래잘래 흔듭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면 무엇을 찾는 모양입니다

“엥! 주사?”

그럼 쿡! 쿡! 맞아주어야지요. 빨간 리본머리 여자아이가 나를 휙 뒤집어서 엉덩이를 들이댑니다.

“꾸욱!”

“아~야!”

훈이 의사 고개가 끄덕끄덕하면서 소꿉놀이 병원놀이가 끝이 났어요.

 

이야기 셋

그러던 훈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게 되었어요.

“오! 우리 아들 사각모자 쓰고 보니 의젓해졌구나. 축하한다.”

유치원에서 졸업식 기념으로 사각모자에 까만 망토를 두르고 멋진 사진을 찍어주었거든요. 그 사진을 거실 장식장 위에 처억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려던 아빠가 분위기를 한껏 띄우더니 근엄하게 말했지요.

“우리 훈이 이리 와서 앉아보거라.”

“예!”

훈이가 쪼르르 달려와 아빠와 마주앉았어요.

“그래, 우리 아들 이제 장가 들여도 되겠구나.”

“히히~ ”

“어디…… 아빠 다리를 이렇게 하고…… 점잖게 앉아서 이제 얘기를 좀 해 볼까?”

훈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다가앉자 아빠가 자꾸 헛기침을 했어요.

“흠! 흠! 우리 아들 올해 몇 살이지?”

“여섯 살이요.”

“그래, 여섯 살, 이제 아기가 아니지?”

“예!”

“그렇지, 그렇지, 아기가 아니지. 오늘밤부터 훈이도 누나처럼 자기 방에 가서 자도록 해야지?”

“……?”

“왜 대답이 없어?”

“싫어! 싫어!”

갑자기 훈이가 둘레둘레 집안을 돌아보며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 찾아도 소용없어. 누나는 네가 태어나던 날, 그러니까 네 살 때 자기 방에 가서 잤단다. 너는 지금 나이가 여섯 살이야. 사내대장부가 창피한 줄 알아야지.”

“그럼 엄마도 내 방에서 같이 잘 거야.”

“뭔 소리? 엄마는 아빠 색시야. 너도 얼른 커서 색시 얻으면 같이 자거라.”

훈이가 엄마를 돌아보며 응원을 청해보지만 엄마는 딴청만 부리고 있어요.

“엄~마?”

“나도 아빠 생각하고 같애.”

엄마가 잘라 말했어요.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없어. 이리 와서 네 베개 들고 잘 준비해라. 어서!”

아빠가 훈이의 작은 가슴에 나를 안겨주며 건넛방으로 등을 밀었어요.

훈이는 나를 안고 쭈빗쭈빗 했어요.

“그~럼, 엄마 몸은 전부 아빠 거 하고, 손 하나만 나 줘.”

훈이는 엄마와 멀찌기 떨어져 누우며 엄마 오른손을 끌었어요.

“안돼!”

눈물이 찔끔 나왔어요.

훈이는 어쩔 수 없이 주춤주춤 물러나오기는 했지만 계속 엄마 눈치를 보았어요. 엄마가 곧 구원해 줄 것이라 생각했어요.

“오늘 한번만 봐 줄게. 내일은 꼭 네 방에서 자야한다.”

이렇게 말하며 벌써 몇 번째 훈이를 안고 이불 밑으로 들어간 엄마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아예 돌아누워 있네요. 잠든 척 하는 거 다 아는데요.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어요.

훈이는 나를 안고 몇 번이나 거실을 들락거리다 방문을 열어놓고 잠이 들었어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얼굴을 파묻은 내 배가 흥건히 젖었어요. 사실 나도 울었어요.

그 때 나는 다짐했어요.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훈이를 내가 지켜주기로요. 훈이가 색시를 만날 때까지 절대로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살기로요.

 

이야기 넷

혼자서도 잘 자는 씩씩한 훈이가 드디어 학교에 입학했어요. 가방을 메고 엉덩이를 들썩들썩 다니던 어느 날, 개구쟁이 여럿을 데리고 왔지요. 침대에 있는 나를 번갈아 짓뭉게며 뒹굴고 놀다가 따분했는지 제안했어요

“야! 우리 밖에서 자전거 타자.”

“좋아! 좋아!”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흘렀나싶더니 훈이의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향교 뒷길 구릉지에서 나는 소리에요. 자전거를 탄체로 굴렀데요. 얼마나 아팠을까요.

혼이 빠진 엄마가 병원으로 가야된다며 갈아입힐 옷을 챙기는데 누워있던 훈이가 그만 잠이 들었어요. 지친 훈이를 깨울 수 없었던지 엄마는 걱정스레 상처 난 곳을 찬찬히 살폈어요.

귓불이 긁혔는지 훈이가 돌아눕자 내 옷에 핏자국이 붉게 묻어있어요. 핏자국을 발견하자 엄마는 가슴이 미어지는지 눈에 이슬이 맺혔어요. 소독을 마친 엄마는 내 옷을 벗겨 세탁을 하면서 또 울어요.

그 때 아빠가 직장에서 헐레벌떡 달려왔어요.

“허참! 그만 일에 울어요? 사내녀석은 뒹굴고 깨지고 그러면서 커야 하는 거요.”

그러면서 아빠는 다시 직장으로 갔지만요. 돌아서는 어깨에 걱정이 주렁주렁 달렸어요. 좀 조심하면서 놀면 좋을텐데요.

 

이야기 다섯

그렇게 엄마 아빠 애간장을 태우던 훈이는 훌쩍 자라 6학년이 되었어요.

학교에서 전교회장 선거한다고 바빴어요. 날마다 연설문을 외우느라 앉았다. 섰다. 누웠다. 밤낮이 따로 없어요.

선거 날짜가 바짝 다가오자 새벽에 일찍 등교했어요. 교문 앞에서 유세를 해야한다나요. 유세가 뭐냐구요? 회장후보로 나온다는 것을 전교생에게 일일이 알리는 거예요. 오후 하교시간에 또 유세를 하고 지칠만한데 잘 견뎌냈어요.

내일이 전교생 앞에서 공약을 발표하는 날이래요. 저녁을 먹고 거울 앞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는데요. 자꾸 막혀요. 어제까지만 해도 술술 했어요. 막상 하루 앞으로 닥치니 부담이 되나 봐요.

 

안녕하십니까? 기호2번 이훈입니다. 먼저 제가 이 자리 서기까지……?”

 

“에이씨~ 왜 자꾸 막히는 거야!”

주먹을 불끈 쥐더니 나에게로 달려오네요. 아뿔사! 내 배가 터지도록 쥐어박습니다.

“꿍!”

“으윽!”

기절할 것 같으나 어쩌겠어요. 분풀이 할 때가 나 밖에 없는 걸요. 내 배에 얼굴을 푹 묻고 있던 훈이가 벌떡 일어나 또 외우기 시작했어요.

 

“안녕하십니까? 기호2번 이훈입니다. 먼저 제가 이 자리 서기까지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6년 동안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그리고 봉화산이 떠나가도록 신나게 노는 것까지도 최선을 다한 학교생활이었다고 하겠습니다만. 이번에 또 이렇게 회장 후보로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이 영광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 튼튼한 몸 부서져라 여러분을 위해 일하겠습니다아…….”

 

“야호! 이제 됐다 됐어.”

나를 안고 부비고 허공에 붕붕 던지며 야단이어요.

정말정말 다행이에요. 내 배가 출렁! 하도록 또 맞을까봐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만큼 연습했으면 이제 끝장을 볼 때도 됐거든요. 저 훤칠한 키에 유창한 말솜씨 내일 분명 일을 낼 것 같아요.

다음날 어찌 되었냐구요? 당연히 일을 냈죠. 전교회장이 되고나니 얼마나 의젓한지요. 싱글벙글 돌아와 나를 베고 혼곤히 자는 모습을 어찌 잊어요.

그런데요. 그 선거 후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자고 일어나서 목 뒷덜미가 뻐근하다고 하네요. 엄마가 훈이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찌릿! 나를 바라봤어요.

“베개가 낮아 그런단다. 이제 저 베개부터 치워야겠다,”

하늘이 까맸어요

“안돼요. 그냥 놔둬요.”

훈이가 나를 안고 이불 밑으로 숨어요.

“아들! 냄새나는 것을 씻지도 못하게 하더니 어서 이리 내!”

“싫어요. 씻는다고 해놓고 또 버릴려고 그러지요?”

“나~참 덩치는 산만한 것이…….”

“…….”

“이리 내! 햇볕에라도 말려야지…….”

엄마가 뒤뜰에서 내 옷을 벗기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어요. 옷은 낡아 너덜너덜하지요. 벗긴 옷을 똘똘 말아 쓰레기통에 퍽! 집어던지고는 또 내 몸통을 이리저리 살펴요. 아찔했어요. 속통은 고린내가 풀풀했거든요.

“녀석, 별걸 고집하고 야단이야.”

엄마의 눈이 또 쓰레기통을 향했어요. 그리고 나는 깜깜한 곳으로 곤두박질 쳤어요. 단번에요.

깜깜한 쓰레기통 안에서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어요. ‘그래 내가 욕심이 컸지. 그만큼 훈이 곁에 있었으면 만족해야지.’

그런데 십년 넘게 애지중지한 물건을 함부로 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요? 옛 어른들은 아끼던 빗자루도 절구방아도 다 쓰고 나면 깨끗이 태워 뒤처리를 해주는데… 한 줄금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캄캄한 쓰레기통에서는 눈을 감아도 눈이 아파요. 꼬리꼬리한 냄새가 내 몸을 휘감으니 정신이 몽롱하고 기절 직전인대요.

바깥이 소란했어요. 우리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봐요. 간간이 들리는 아빠 목소리는요. 감정이 억누르느라 흐음! 흐음! 하고요. 엄마 또한 심각해요. 그런데 내가 기다리는 훈이는 어디 간 거예요. 자기 방에 꾹 박혔나 봐요.

아! 구세주? 그래요. 구세주는 꼭 이런 때 나타나는 거예요. 엄청난 일이 있을 줄 알았어요. 한밤중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손이 있었거든요. 나~참! 내가 아니면 잠이 안 온다고 방방 뛰는 훈이인 줄 알았는데 아빠였어요.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더 크게 일어났어요. 아빠와 엄마 사이에 심각한 말싸움이 벌어졌어요.

“아니, 얘가 고집하면 그대로 둬요. 냄새가 나도 좋다는데 뭘 그런 것 가지고 고집이오.”

“아니 저 덩치가 애예요? 애?”

“나~참,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더 애 같소. 안방에서 쫓아낸 후 의지할 것이 그것 밖에 더 있소? 덩치는 커다 만은 요즘도 베개 안고 자는 것 보면 지난날이 생각나서 가슴이 저린단 말이요.”

아싸! 내 얘기군요. 맞아요. 그랬어요. 각자 방 따로 써야 된다고 엄마 품에서 쫓겨난 훈이를 위로한 건 바로 나였거든요.

 

이야기 여섯

그 후 나는 훈이가 고등학교 때 운동하다 다쳐 병원에 입원할 때도 따라갔구요. 대학교 기숙사에 까지 따라 갔어요.

그런데요. 지금은 나 혼자 외로워요. 외로워도 이번만은 꾹 참아야 해요. ‘엇둘! 엇둘!’ 훈이는 나라의 부름을 받았거든요.

훈이가 간 그곳은요. 애기같이 쪼그만 나를 안고 갈 수 없어요. 나 뿐 아니라, 훈이가 쓰던 어떤 물건도 따라 갈 수 없어요. 몸에 걸치고 갔던 것도 모두 되돌아왔거든요.

훈이가 떠난 며칠 후 띵동! 초인종소리가 울리고요. 우체국 택배아저씨가 상자 하나를 엄마 품에 안겨 주고 휭하니 나갔어요.

【입영장정 소포】라고 쓰인 상자를 안고 엄마는 털썩 주저앉았어요. 상자를 뜯는 엄마 손이 덜덜 떨렸어요. 뚜껑을 여니까요. 골판지 귀퉁이에 삐뚤삐뚤 연필글씨가 쓰여 있어요. 누가 볼까봐눈치 보며 급히 썼는지 종이가 찢겨있어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아들 훈)

 

엄마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한참을 울고 난 엄마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어요. 상자 속 물건을 하나하나 들어 올리는데요. 땀 젖은 옷 한 벌과 신발, 시계, 지갑, 휴대폰 등등 집 떠날 때 걸쳤던 것들이 모두 다 들어 있었어요.

그런 곳에 내가 억지로 따라가면 훈이의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단념하고 훈이 없는 빈 침대에서 마냥 이렇게 기다리고 있어요.

 

 

오전 내내 재봉틀 앞에 앉아있던 엄마는 내 몸에 꼭 맞는 무지개무늬 새 옷을 만들어 주었어요. 곧 좋은 일이 있을 모양이어요.

오후에는 시장을 다녀와서는 콧노래를 흥얼대다 중얼거리기 까지 하네요.

“녀석, 바쁜 엄마 시집을 살리네 살려. 그런데 뭘 좋아했는지도 감감하네. 가만있자. 통닭을 좋아했지…….”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폴폴 풍겨 나와요. 이 정도면 짐작이 가지요? 아카시아향과 더불어 열린 대문으로 누가 들어설지?

 

“필승! 이병 이훈! 나라의 부름 받았다가 첫 휴가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