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감상 000편

제 25 편 강아지풀 김 구 연

가마실 / 설인 2010. 9. 19. 22:51

제 25 편 강아지풀    김 구 연


              

김구연

 

1971년에 《월간문학》으로 등단

 

오요요

오요요

불러볼까요.

보송보송

털 세우고

몸을 흔드는.

강아지풀

강아지풀

불러 볼까요.         〈1988년〉


"오요요/ 오요요"는 어미가 제 새끼를 부를 때, 혹은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부를 때 내는 소리다. 바이올린의 높은 선율보다는 낮은 음역대(音域帶)에서 나오는 바순 소리에 더 가깝다. 뜻 없는 의성어지만 그 울림이 맑고 상냥하다. 'ᄑ'소리가 내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비교하면 맑음과 상냥함이 한결 뚜렷하게 드러난다. 공(球)처럼 입술을 작고 동그랗게 모아 발음하기 때문인가. 세 번씩이나 겹친 두음(頭音)으로 오는 'ᄋ'소리는 사방으로 퍼지지 않고 동그랗게 모인다. 이때 둥근 입 모양은 젖 빠는 아가의 입과 닮아 있다. 'ᄋ'소리는 귀엽고 상냥하고 발랄하다.


어떤 말들은 뜻을 품지 않고도 그 소리값(音價)만으로도 소통의 소임을 다한다. 이 시에 나오는 "오요요/ 오요요"하는 말이 그렇다. 음절 앞머리에서 낭랑한 소리를 이끌던 'ᄋ'소리는 다음 행의 "보송보송"에서는 음절의 끝에 숨어 겸손하게 앞소리를 떠받든다. 그 떠받드는 'ᄋ'소리는 강아지풀의 보드라움을 감각적 명징함으로 드러낸다. 'ᄋ'소리는 둥근 소리다. 내치고 따돌리고 깨뜨리는 소리가 아니라 품고 보듬어 안는 소리다. 이 소리에 외로운 자들이 먼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리라. 왜냐하면 이 소리는 사랑과 안식을 약속하는 달콤한 영창(詠唱)으로 들리니까. 'ᄋ'이라는 음성기호는 둥근 것, 보드랍고 연한 것들, 예를 들면 엄마 젖, 아가의 오동통한 엉덩이, 젖살이 몽실몽실한 강아지, 탱탱한 탄력을 가진 꽈리 들을 연상하게 한다.


이 수작을 쓴 김구연(66)은 1971년에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아동문학가다. 시인은 남이 못 듣는 소리도 듣는 예민한 청각을 가졌다. 들에 매인 염소는 누나의 국어책을 먹고 날마다 국어책을 외운다. "염소가 누나의 국어책을/ 몽땅 먹어버렸다. // 그러고는 매일/ 매애애 매애애……// 국어책 외운다."(〈국어공부〉)


다시 입술을 모으고 "오요요/ 오요요"하고 불러보자. 강아지풀은 그게 저를 부르는 소린 줄 용케도 알아들었다. 제가 풀이란 걸 잊은 강아지풀이 보드라운 털을 세우고 몸을 흔들며 온다. "오요요/ 오요요" 소리가 강아지풀을 강아지로 순식간에 바꾸는 놀라운 마술을 부리지 않는가. 우리 안에 잠든 열망과 무한한 그리움을 흔들어 깨우지 않는가.


 "오요요" 소리에 꼬리 흔드는 강아지풀

                  장석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