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감상 000편

제 27 편 '손을 기다리는 건' 신 형 건

가마실 / 설인 2010. 9. 19. 22:54

 제 27 편 손을 기다리는 건 신 형 건


         

신형건 

출생 : 1965년 12월 5일

출신지 : 경기도 화성

직업 : 아동문학가

학력 : 경기대학교

데뷔 : 1984년 새벗문학상 당선

경력 : 출판사 '푸른책들', 웹진 '계간 동화읽는가족', '보물창고' 대표이사

수상 :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어린이도서상

대표작 : 거인들이 사는 나라, 배꼽, 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

 

손을 기다리는 건

어제 새로 깎은 연필,

내방문의 손잡이,

손을 기다리는 건

엘리베이터의 9층 버튼,

칠판 아래 분필가루투성이 지우개,

때가 꼬질꼬질한 손수건,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책상 틈바구니에 들어간

30센티미터 뿔자,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퍼즐 조각 하나,

정말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손, 꼬옥 잡아 줄

또 하나의

손. 


방정환․윤석중․이원수․강소천․마해송 등의 1세대가 아동문학의 불모지를 개척했다면, 어효선․김요섭․최계락․신현득․김종상․유경환에서 문삼석․박경용․김구연․하청호․노원호 등으로 두텁게 이어지는 2세대는 씨를 뿌렸다. 아동문학의 인적 자원은 풍부해졌다. 거기에 김소월․백석․정지용․윤동주․박목월․오규원․최승호․김용택 시인들도 아동문학을 키우는 데 일조해 왔다. 이미 초등학교 국어책에 다섯 편의 동시가 실린 신형건(43)은 아동문학의 차세대 주자다.


세대교체를 이루며 아동문학에서도 시와 생활이 우열 관계에 있지 않고 동위(同位)에 서 있다는 깨달음이 확고해졌다. 동시의 상상력은 미려한 몽상과 모호한 환상의 탐닉에서 생활 체험의 구체성으로 옮겨왔다. 신형건의 동시는 구체적인 것에서 시적 징후를 찾는다. "엄마, 깨진 무릎에 생긴/ 피딱지 좀 보세요./ 까맣고 단단한 것이 꼭/ 잘 여문 꽃씨 같아요./ 한번 만져 보세요./ 그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는지/ 자꾸 근질근질해요./ 새 움이 트려나 봐요."(〈봄날〉) 깨진 무릎에서 잘 여문 꽃씨를 연상하는 것은 상상이 구체적 실감의 안쪽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동시에서 판타지는 줄고 아동 생활의 구체적 실감은 커졌다.


〈손을 기다리는 건〉에서도 손과 접속하는 것은 연필, 방문 손잡이, 엘리베이터의 9층 버튼, 지우개, 손수건, 뿔자, 퍼즐 조각 같은 구체적 사물들이다. 손은 잡고 모으고 자르고 끊고 찢고 깨고 묶고 꿰매고 뒤집고 쓰다듬고 쥐고 빼고 넣고 닦고 씻고 한다. 손은 마술적 만능 공작 도구이자 놀라운 의사소통의 보조수단이다. 시인은 노동의 매개이자 생활의 역군인 손의 쓰임을 주목하고 그 생태학을 포착한다. 손에는 폄근과 굽힘근이 있어 펴고 쥠이 자유롭다. 그래서 연필을 깎고, 방문의 손잡이를 돌릴 수 있다. 아울러 손은 촉각의 주요 기관이다. 뜨겁고 차갑고, 연하고 거친 것을 분별하는 일은 촉각소체가 발달한 손의 일이다. 손을 뻗어 "책상 틈바구니에 들어간/ 30센티미터 뿔자"를 꺼낼 수 있는 것도 손의 예민한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의 발달 때문이다. 손은 생활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도구다. 손을 다쳤을 뿐인데, 몸 전체가 멍청해진다! 손의 가장 중요한 일은 누군가의 다른 "손, 꼬옥 잡아" 주는 일이다. 손과 손이 이어지면 다툼과 갈등은 줄고 사랑과 우정은 커진다. 손과 손을 맞잡으면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꽃핀다.

손과 손 맞잡으면 평화가 꽃피죠

                 장석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