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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우각송 /성갑숙 2020.4.

가마실 / 설인 2020. 4. 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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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송,

소나무들 중에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지요.

충북 보은에 정이품송, 지리산 와운마을에 천년송, 청주에는 봉황송, 선암사에 오백 살 와송, 그리고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낙락장송들…….

어려운 이름 같지만 어딘가 도도한 기품이 느껴지지 않아요?

촌스럽게 우각송이라니?

해돋이 명소 운동산 정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지요.

새벽에 산을 오른 사람들은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 탄성을 지릅니다.

벼랑 끝에 선 저 낙락장송 운치 있구만!”

비바람 눈보라를 피하지 않고 꿋꿋이 받아내는 저 모습 대단해 보여.”

언제부턴가 운동산 정상을 오른 사람들은 나를 낙락장송이라 부릅니다.

소나무라면 적어도 내 이름 정도는 불려야지…….’

 

 

- 2 -

 

올해도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헉헉! 헉헉!”

순천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운동산 정상으로 사람들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올라오고 있어요. 비촌리 서동마을 사람들과 소문을 듣고 찾아온 주변 마을사람들이 새해 소원을 마음속에 품고 첫새벽 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동쪽하늘이 불그레 물들기 시작했어요. 간절히 두 손을 모은 사람, 사랑하는 가족을 꼭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 사진기를 높이 들고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하려는 사람, 모두 숨을 죽입니다.

그 때입니다.

~ 앞에 우뚝! 솟아오른 소나무를 배경으로 새해 기념사진을 찍으면 멋지답니다,”

동네이장님의 자상한 안내에 따라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입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동쪽을 향해 팔을 주욱 뻗습니다. 마치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정성껏 받아 올리듯,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오우! 저 낙락장송 멋져! 멋져! 기념사진 콘테스트 출품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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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송,

그런 볼품없는 나무에 대하여 나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몰골하고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나무라면, 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꿋꿋한 의지를 가진 소나무라면, 그에 걸맞은 품위를 지녀야지요.

등이 휘어 땅에 누우려면 선암사 오백 살 와송 정도는 되든가. 저 엉거주춤한 폼이라니…….’

사실, 저 아래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개구쟁이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앉은뱅이 소나무가 내 뒤에 앉아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 소 먹이러 운동산을 오르내리던 개구쟁이들은 자라서 어느덧 어른이 되었지요. 그들 중에는 동네에서 부농을 이루고 사는 이들도 있고, 객지로 나갔다가 나이 들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온 이들도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어른들이 종종 운동산에 올라 옛 추억에 젖기도 하는데요. 어린 시절 덩치가 커다란 소를 몰고 산을 오르면 소는 놓아 풀을 뜯고, 개구쟁이들은 온 산을 누비며 뛰어 놀았다네요. 지금은 풀 뜯길 소도 없고 운동 삼아 운동산을 오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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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입니다. 태풍 매미가 남해안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운동산은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양인데요. 운동산 등허리부분이 수선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온 산이 소용돌이쳤습니다.

산 속 동물들은 모두 동굴 속으로 숨어들고 나무들은 떨어져나가는 곁가지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내 뒤에 바짝 붙어 서있던 굴참나무 허리가 뿌지직! 내려앉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았습니다. 우지끈! 우지끈! 나는 심한 아픔을 견디지 못해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따스한 햇살이 바람을 잠재웠는지 가까스로 눈을 뜨고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온 산의 나무들은 벌목을 해놓은 듯 어지럽게 누워있고요. 그 속에 내가 간신히 서 있는 것은 기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뿔싸! 내 팔이……내 팔이…….’

만신창이가 된 내 몰골을 내려다보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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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른들이 산 정상으로 몰려 올라왔습니다.

내년도 마을사업으로 지정된 해돋이 명소에 낙락장송 팔이 부러졌다고 큰 걱정을 늘어놓고 내려갔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잊혀질까 두려웠어요.

내 허리는 노인처럼 굽어버렸습니다. 이제 멀리 순천만을 바라 볼 수도 없어요.

매일 매일 땅만 내려다보고 살아야한다니……흑흑!”

그때 내 뒤에서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어요.

상처가 좀 나았군요.’

누구지?”

우각송입니다.”

내 부러진 팔에는 진물 흐른 흔적이 아직 남아있으니 우각송의 목소리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왜 우각송이라 했지?”

가지가 양쪽으로 갈라져 누운 내 모습이 소뿔을 닮았다하여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답니다.”

……?”

저 아래 마을 어른들은 늘 어린 시절을 그리워했어요. 그 시절은 커다란 눈을 끔벅끔벅하는 소도 친구였어요. 덩치가 산만한 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풀을 뜯기고, 이 골짝 저 골짝 쏘다니며 자라났어요.

이제 소 먹일 일 없고, 다리에 힘이 빠져 산을 오르는 것도 쉽지 않으니 제가 쉴 자리를 좀 내어드리지요.”

우각송은 구부정한 허리를 들썩입니다.

! 그랬구나.”

나는 우각송을 자세히 훑어보았어요. 어린소나무가지가 소뿔처럼 양 갈래로 내리뻗었다 위로 솟는 모습이 순하디 순한 소의 머리를 닮았어요. 개구쟁이들이 쓰다듬으며 좋아할만했어요.

소 우, 뿔 각, 소나무 송, 우각송!”

개구쟁이들에게 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우각송 곁에서 나도 할 일을 빨리 찾아야겠어요.


(순천문단 41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