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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시) 아기나무 소원

가마실 / 설인 2017. 3. 2. 18:26

(동화시)

 

 

아기나무 소원 / 성갑숙

 

운동산 밑 삿갓다랑이에

어리디 어린 아기나무는

혼자서 살아간다

 

온실에 살 때는

엄마 뱃속 같이 따뜻해서

한 뼘, 두 뼘, 세뼘,

쑥쑥 자라던 아기나무는

추운 겨울에 옮겨와서

혼자서 살아간다

 

찬바람이 불어와서

이파리 하나 떨어지고 

눈보라가 몰아쳐서

이파리 또 하나 떨어지고

 

뒷산 살던 배고픈 고라니가

"흠흠, 너는 잎도 없니?" 하며

성큼성큼 지날 때면

죽은 듯이 숨 죽여 살다가


참새 떼가 몰려와

"짹짹, 너는 가지도 없니?" 하며

조잘조잘 시끄러우면

자는 듯이 숨 죽여 살다가

 

, 봄이 올 거라는

삿갓 할아버지 말씀 듣고

언 발을 보드란 흙 속으로

꼼지락 꼼지락 펼쳐 본다

아무도 모르게 펼쳐 본다

 

오른쪽 발가락을 꼬물꼬물

왼쪽 발가락을 꼬물꼬물

개울물 소리 들리는 쪽으로 뻗어

쭈욱 쭈욱 물을 먹는다

아무도 모르게 물을 먹는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삿갓다랑이로 올라오더니

아기나무 등을 어루만지던 날

응개개개 기지개를 켜 듯

꽃봉오리 하나 쏘옥

꽃봉오리 또 하나 쏘옥

 

눈부신 봄 햇살 아래

찡긋 웃는 아기나무는

아빠만큼 엄마만큼

크고 싶은 아기나무는

 

나이테를 하나 두르고

고라니도 무섭지 않아

나이테를 하나 두르고

찬바람도 무섭지 않아

나이테를 하나 두르고

혼자서도 무섭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