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갑숙의 작품세계∥
달 가는 쪽으로 떠난 그 길과 떨리는 손
문두근 (시인.문학박사)
Ⅰ. 서언
시를 쓰는 시인들이 처음부터 어떤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시간적 삶의 경로를 따라 자기 개인적인 정서의 고동과 그 율동을 수용하고 결단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시가 어떤 경향을 지향한다거나 특정한 정서에 경도되어 있다거나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성갑숙 시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것처럼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갑숙 시인의 시작품들은 몇 개의 카테고리로 몫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연작시 ‘섬’과 ‘가마실 연가’가 각각 그 나름의 시적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외의 시들도 의미의 몫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진다. 다음에 이를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Ⅱ. 섬과 뭍, 또는 그리움과 사랑
성갑숙 시인의 ‘섬’ 연작시는 ‘그리움’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 인간은 그야말로 ‘고도를 기다리며’ 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지의 그 무엇을 기다리기도 하고,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단념도 하지 못하고 막연히 기다리며 사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그러나 “달 그림자가 난간에 오르도록”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기다림에는 기대와 환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벽 종소리가 울리도록 기다린다는 것은 또한 슬픈 것이다. 기다림에는 절망과 한탄이 있기 때문이다.
섬은 그 자체가 시요 그리움이다. 뭍이 임인양 사랑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섬이다. 성갑숙의 그리움은 ‘섬’과 ‘뭍’으로, 또는 ‘갯바위’와 ‘파도’로 표상되어 있다.
눈 감고 바라만 보았다네 // 손 뻗으면 뭍이 될까 / 몸부림치다 지친 날은 / 안개 일어 잠들었다네 /(중략) / 보이지 않는 길 / 보여도 건너지 못할 길을 바라다 / 부나비가 되고 싶어 / 아! 부나비가 될 수 있다면 // 젖은 날개를 펼 수 없어 / 왔던 길을 돌려놓고 / 옷깃을 파고드는 냉기에 / 몸서리를 치며 떨어야 했다네 /(생략)
<우리는 -섬1> 일부
성갑숙 시인은 ‘밤에도, 어둠 속에서도(기다림 -섬2)’ 그리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낮이 활동의 시간이라면 휴식의 시간인 밤은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일 수 있다. 불빛도 없고 사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둠뿐인 때 그래도 섬은 혼자 깨어 있다. 뭍으로부터 혼자 떨어진 섬은 깊은 고독감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찰방찰방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기다려 보는 것이다.
갯바위로 달려드는 정열적인 몸부림 / 순간이어라 // 아! 멀어지는 뒷모습 / 수평선에서 다시 돌아서기까지 / 잔물결은 잔물결을 더하고 / 기다림은 기다림을 더하고 / 산더미가 된 물결 위에 / 타다만 새가슴 / 하얀 재가 되어 흩뿌려지누나 // 더디도다 / 다시 만날 시간 / 더디도다
<파도 -섬4> 전문
성갑숙 시인은 갯바위와 파도와의 순환과 반복을 하나의 기다림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순간’과 ‘더딤’으로 파악하고 있다. 파도가 해변의 바위에 성난 듯이 탄식하듯이 부딪치는 소리와, 그리고 그와 더불어 흩어지는 하얀 포말을 보면서, 성갑숙 시인은 시원의 그리움 같은 것을 인식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기다림이란 순간의 시간을 위하여 가슴이 타고 재가 되기까지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움을 ‘순간’과 ‘더딤’의 대립과 역설적 관계로 형상화한 것은 이에 대한 절실한 인식의 바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갑숙 시인의 그리움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다른 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건너지 말아요 / 당신은 건너편 그곳에 있어야 해요 // 멀리서 그렇게 지켜주는 것이 / 아파하고 고이 고이 / 그렇게 품고 사는 것이 / 사랑이래요 // 오랜 세월, 강산이 변하여도 / 몸 부대낀 적 없는 우리를 / 뭇 사람들은 그냥 / 사랑이래요 // 누군가 기다리는 섬 / 오늘도 울렁인다
<다리 -섬6> 전문
그리움의 뿌리는 사랑이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사랑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미 아른트가 갈파한 것처럼 사랑의 고뇌처럼 달콤한 것은 없고, 사랑의 슬픔처럼 즐거움은 없으며, 사랑의 괴로움처럼 기쁨은 없고, 사랑에 죽는 것처럼 행복은 없는 것이다. 성갑숙 시인의 사랑은 건너편 그곳에 있음으로 고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지만, 섬과 뭍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아파하고 고이고이 바라보며 멀리서 품음으로서 얻어지는 달콤함과 즐거움과 기쁨의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이러한 성갑숙 시인의 사랑법은 <통신두절 -섬5>에서도 “적막에 잠긴 섬은 커튼을 내린다 / (생략) / 또 얼마간 / 혼자서도 살아낼 / 감로수를 모으기까지 // 눈 감고 / 귀 닫을 지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랑의 고뇌와 행복을 체득함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Ⅲ. 고향과 향수, 또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세레나데
성갑숙 시인의 ‘가마실 연가’는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세레나데이다. 이 연작시를 통하여 성갑숙 시인은 이제는 잊혀졌거나 사라져 가는 가마실 고향의 갖가지 추억들을 불러내고 있다. 금지되어 있는 청솔을 꺾어 소죽을 끓이다가 면서기에게 단속을 당하던 일, 이빨을 뽑아 지붕에 던지며 까치보고 물어가라고 노래 부르던 일, 보리밥 먹고 훈장 아재에게 글 배우며 담뱃대로 맞던 것보다 더 힘들었던 방귀 참던 일, 보리를 베다 새알을 줍기도 하고 독사를 만나기도 하던 일, 읍내로 야외 학습 나갔다가 귀가하는 길에 몽달귀신 만날까 떨던 일 등이 적당한 율조로 노래되어 있다. 종아리 물오를 때 빨래터와 물레방앗간에서의 로맨스, 세배와 덕담과 지신밟기의 정월풍경, 딸 다섯 낳고 아들 얻으려는 서낭당 가의 어머니, 고추 당초처럼 맵던 시어머니의 죽음과 며느리의 눈물, 누렁소 몰고 쟁기맨 남정네가 찾아들랑가 서원하던 청상의 아지매, 혼자이기에 푸념일지언정 마당 가득 채우고 싶었던 과수댁 뜨락의 맨드라미 등이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온다.
과수댁 뜨락에 맨드라미 붉다 // 산 입에 거미줄 치랴 / 안땀, 너머땀 삯일 도맡아 / 안방 토방 알곡으로 가득히 채워 놓고 // 하릴없는 뜨내기 푸념 / 너른 마당 채워 놓고 // 작달비 내린 뒤 / 가늘한 등불 하나 / 흔들리다 // 월식에 찢기운 달 / 긴 한숨 거두우고 / 기나긴 그림자 거두고 // 이웃하던 토담엔 / 강아지풀만 주억댄다
<가마실 연가 17> 전문
이 시는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그리하여 우리 주위에서 만나 볼 수 없는 한국의 여인, 특히 혼자 살아가는 여인의 정한과 시름을 전설처럼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처럼 전달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맨드라미’라는 감각적 사물로 환치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과수댁 뜨락에 맨드라미 붉다”는 이 한 구절의 시행은 과수댁의 파란곡절의 인생 전체를 압축해 놓고 있다. 에즈라 파운드가 말한 바대로 ‘위대한 시란 최대한의 의미를 지닌 언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수댁은 결핍의 고통을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시에서 처럼 “안땀, 너머땀 삯일 도맡아 / 안방 토방 알곡으로 가득히 채워 놓고” 살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허울이 좋아도 그것이 왠지 부러워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또한 배우자를 잃은 여인은 절개와 관계없이 의식적으로 외간 남자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다. 남편의 죽음에 뒤따라 죽어야 할 몸을 뻔뻔스럽게 살려 두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달비도 내리고, 월식에 찢기운 달을 본다. ‘작달비’는 뜬시름을 불러올 만하고, ‘월식에 찢기운 달’은 가슴을 저리고 쓰리게 할 것이다. 이것들은 서로 어우러져 세상의 풍상을 겪고 애처롭게 쓰러지는 애절한 느낌을 준다. 과수댁은 긴 한숨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격정과 고통의 여름도 지나고 이제는 기나긴 그림자를 거두는 가을 뜨락에 아직도 붉은 빛으로 서있는 맨드라미와 같이 한없이 쓸쓸하고 고즈넉한 것이다. 결국 이 시는 과수댁의 파란곡절의 삶을 과수댁 뜨락의 맨드라미로 비교함으로 시가 필연적으로 지향하는 압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Ⅳ. 나와 육친, 또는 따뜻함과 빛
성갑숙시인의 몇 편의 시는 육친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육친은 따뜻함과 빛 그 자체이다. 자식에게 어머니는 따뜻함을 주고 아버지는 빛을 준다. 어머니는 자식을 언제나 잘 이해해 주고 아버지는 자식을 원대한 미래로 이끈다.
해질녘 / 뜰을 따라 분꽃 열매 터트리네 / 하얀가루 문질러 엄마 얼굴 떠올리네 // 추석날 옷 한 벌 못 사주었다고 / 과년한 딸, 분이라도 사 주겠다고 /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던 울 엄마 / 지쳐 앓다 죽은 자리 // 우리네 한 맺힌 꽃 / 먼 골짝 깊이 깊이 필적에 / 새벽종이 울렸지 / 새아침이 밝았지
<분꽃> 일부
분꽃은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성갑숙 시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있어왔다. 추석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짐승들도 다른 때와는 달리 풍성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추석에 사랑하는 자식에게 옷 한 벌 사 주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슬프다 못해 괴로웠을 것이다. 더구나 과년한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는 그 딸이 어디에 내놓아도 곱다는 말을 들어야 혼처도 나설 것이기에 옷은 사 주지 못할망정 분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이를 위하여 어머니는 사흘이 지나도록 집을 비웠다. 그리하여도 어머니는 딸에게 분 한 갑 사주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생각하다 못해 분꽃 가루로 딸을 치장하였다. 분꽃의 향내는 인공적인 화장품이 품어내는 향기보다 더욱 아름다울 때가 있지만, 그것은 가난한 자에게 금지되어 있는 자존심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성갑숙 시인에게 분꽃은 이러한 어머니의 한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하여 한없는 따듯함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의 전형적인 어머니를 보게 된다. 따라서 이 시는 객관적 대상인 분꽃을 합리적으로 진술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화하여 미묘한 심리적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백운산 자락 / 아버지가 꾹 밟고 선 자리 // -지 손으로 마련 안 허면 낸중에 / 눌 자리도 없드랑께 / -장 서면 묘목 좀 챙겨야 쓰것소 / -니들 손 덜 가는 나무라야 허는디 / 지금 심그면 손지 중학 가서 열매 볼랑가 / 윗자리는 냄겨 두거라 // 성긴 귀밑머리 쓸어올리는 빈 마음 / 먼 산 / 황사 바람인다 // 띄엄띄엄 구덩이 파서 / 드나들기 쉬운 아래턱 / 감, 대추, 자두나무 / 빠르면 이태 열매 볼까 // 울타리는 뭘로한다냐 / 가시 돋힌 탱자나무 / 아녀 여기까지 올 놈 없어 / 산새 들새 마음껏 드나들게 / 온 산 흐드러진 진달래 퍼다 // 허리 펴고 올려다 본 윗자리 / 천공이 열리고 / 매화향 일렁인다
<식목> 전문
이 시에서는 나무를 심는 아버지를 볼 수 있다. 앞에서 본 ‘분꽃’이 과거 속의 어머니를 형상화하였다면, 위에서 보는 ‘식목’은 현재의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과거 속의 어머니는 나에게 따뜻함을 주었다고 한다면 현재의 아버지는 나에게 빛을 주고 있다. 빛은 앞으로 갈 길을 비추어준다. 지금 아버지가 나무를 심는 것은 장차 다가올 날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부모들은 날로 외로워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죽는 그 마지막까지도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는 “지 손으로 마련 안 허면 낸중에 눌 자리도 없드랑께”하고 말은 이리 하지만, 무덤가에 심을 나무 한 그루도 “니들 손 덜 가는 나무라야 하는디” 하는 것이다. “아녀 여기까지 올 놈 없어” 하면서도 “산새 들새처럼 마음껏 드나들게” 진달래도 심고 매화도 심는다. 감 대추 자두도 심는 것이다. 사실 부모가 묘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보다는 자식을 위해서이다. 이것들은 말하자면 모두 후손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다
성갑숙 시인은 이외에도 ‘당신’에서는 나에게 산과 바다와 별이 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용암으로 끓어오르고 때로는 섬으로 돌아앉고 때로는 유리컵으로 깨어졌던 당신, 그러나 이제는 “눈으로 말하고 / 가슴으로 듣고”하는 연리지의 부부애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등이 휜 언덕’에서는 “쉼없이 내일을 준비하며 / 언덕이 되어 버린 당신의 등”에 대한 연민과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다.
Ⅴ. 열림과 닫힘, 또는 시인의 사명과 문학에의 열정
일찍이 잠언에서 “어리석은 사람도 잠잠하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침묵에 대하여 ‘인간이 가지는 가장 뛰어난 지혜’라고도 하고, ‘유수와 같은 말주변보다는 침묵이 유익’하다고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말을 하고 난 뒤 후회하는 것보다 차라리 침묵함으로 후회하는 일이 없는 쪽을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갑숙시인은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오히려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시인의 사명이란 자기가 속해 있는 시대를 향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논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워즈워스가 말한 것처럼 시인은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시인이 침묵하는 것은 세계양심의 지진계임을 포기하는 것이며, 성갑숙시인 개인으로서는 시인으로서의 자기성찰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 작은 일터 모퉁이 창가로 / 복사꽃 수다 숨 넘어가던 날 / 임자 잃은 책상 위에 바쁜 걸음으로 날아든 / 동인지 / 귀퉁이마다 삼동을 견딘 흔적 / 펼치는 장마다 퍼 붓은 회초리 / 나 너를 모른다 / 침묵하고 있음은 비겁함 / 독설이 무서우면 / 마지막까지 그대로 은신하라 / 날 저물면 그대로 사그라져라 // 일상을 덮고 창을 연다 / 사방은 어둠으로 아득한데 / 산 밑 교정을 메우는 복사꽃은 갈 곳 없어 / 더 화한하다 / 내 찾는 길은 달 가는 쪽 / 신들메 조이는 손에 경련이 인다
<탈출> 전문
이처럼 성갑숙시인은 시인으로서의 나아가야 할 길을 향한 것이라면 그것이 설령 독설이라고 하더라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열림과 닫힘의 공간 속에 공존하고 있다. 때로는 닫혀 있음으로 더 화환하고, 때로는 달 가는 쪽으로 열린 나의 길은 마치 신들린 무당의 손처럼 떨리고 있다. 이것은 성갑숙시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들어내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며, 이러한 그의 흔적은 다른 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겨우내 닫힌 문 / 열어야지요 / 훈풍을 맞으려면 // 소중히 품은 씨앗 / 던져야지요 / 싹을 틔우려면 // 영원히 간직할 수 없는 사랑도 / 버려야지요 / 곷을 피우려면 // 봄은 큰 터 숲으로 와서 / 동그라미 안에 갇혀있어요 // 물안개 자욱한 강물 위에 / 동그라미 하나 나를 가두고 / 동그라미 하나 또 나를 가두고
<갇힌 봄> 전문
성갑숙 시인은 문학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려면 겨우내 닫힌 문을 열기도 하여야 하지만, 큰 터 숲에서 피울 봄을 위해서는 때로 동그라미 안에 갇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일찍이 발레리가 말한 ‘시인은 방안에 있는 직인(職人)’이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 쓰기에 있어서의 성갑숙 시인 나름의 어느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자 시인으로서의 입법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Ⅵ. 결언
이상에서 성갑숙시인의 시를 몇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성갑숙시인의 경우 시간적 삶의 경로를 따라 쓰여진 시들이기 때문에, 그가 시로써 보여준 여러 관심들을 몇 갈래로 분류 정리해 본 것이다. 그 결과 성갑숙 시인은 섬과 뭍의 관계설정을 통한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하고,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세레나데의 시편들을 통하여서는 고향과 향수를 불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육친과 반려자 등에 대한 소재를 통하여 그들의 따뜻함과 빛을 보여주고 있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의 분출 공간이 때로는 열리고 때로는 닫힘의 순환 속에서 시인으로서의 자기성찰과 그 사명을 펼쳐가고 있음 알 수 있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시인들은 자기를 예언자라고 생각하였던 그 영예로운 시절도 가버리고 이제는 호텔 숙박부의 직업란에 스스로 문필업이라고 기록해야 하는 세상에서, 성갑숙 시인의 시작품들이 그가 ‘섬’의 시에서 보여주었던 고통의 밤을 지나 환희의 아침을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성갑숙 시인이 이미 달 가는 쪽으로 찾아 떠난 그 길이 신이 들리고 손에는 경련이 이는 일이 계속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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