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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느 시가 훌륭한 시인가?

가마실 / 설인 2011. 3. 20. 16:30

어느 시가 훌륭한 시인가?

현대 시에 대해 '알아 먹을 수 없다'는 무례한 불평을 '마침내' 터트려 놓고 보니 당장에 급하게 된 것이 이 무례를 변명 할 수 있는 자료(증거)를 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자료라면 내 초라한 서가에 꽂혀 있는 시집들 만으로도 지면이 모자랄 정도 입니다만 그러나 차마 저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내 놓고 이러쿵 저러쿵 할 용기 까지는 아직 나에게 없습니다.(오늘 까지는 없습니다. 내일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체면에 걸릴 걱정을 할 필요 없이 내 보일 수 있는 자료가 혹 없을까 해서 찾던 중 뜻밖에도 안심하고 사용 할 수 있는 자료가 아주 쉽게 눈에 띠었습니다.


놀랍습니다. 놀랍다는 뜻은 이런 무례한 불평에 사용 할만한 자료가 이렇게 손 쉽게 찾아졌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나 처럼 시에 대해서 '알아 먹을 수 없다'는 불평을 토한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 입니다. 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 전문가도 나와 똑 같은 불평을 품고 이미 오래 전에 책으로 까지 그 불평을 토해 냈던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세실 디. 루이스-C.D.Lewis'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시학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장만영 역 1974년) 그의 책에 보니 "어떤 때에 시는 시가 되지 않는가?"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그 항목을 읽어 보니 다음 두편의 시 중에 독자는 어느 편이 훌륭한 시라고 생각하는지 선택해 보라는 말과 함께 두편의 시가 소개 되어 있었습니다.

첫번 째 시,

엿을 반근 사려고
엿장수 거리를 가다가
어릴 적 동무인 믹키 덤프스를 만났다.

그가 나보고 말 하기를,
"너도 우리들 노는데 끼이렴"
나는 잠간 생각 해 봤다.
나는 잠간 생각 해 봤다.
놀 맘이 안 난다고 나는 대답 하였다.
나는 뒤에 따라 갔다.

우리집 돌 층계에 앉았노라니
어릴 적 동무인 미키 덤프스의 동생이 왔다.
그가 나 보고 말 하기를,
"우리 집에 오너라. 믹키가 앓고 있다"
나는 잠간 생각 해 봤다.
나는 잠간 생각 해 봤다.
갈 맘이 안 난다고 나는 대답 하였다.
나는 뒤에 따라갔다.

가 보니 정말 앓고 있다.
꽤 몹시 앓고 있다.
그가 나 보고 말 하기를,
"몬아, 나 죽거든 장례식에 오너라"
나는 잠간 생각 해 봤다.
나는 잠간 생각 해 봤다.
갈 맘이 안 난다고 나는 대답 하였다.
나는 뒤에 따라 갔다.

가 보니 정말 장례식을 지내고 있다.
누구인가 무덤 위에서 발을 굴렀다.
누구인가 무덤에다 침을 뱉았다.
어릴 적 동무인 미키 덤프스,
눈을 아무리 비벼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두번 째 시,

일 만드는 건 사람에게 있고, 이루는 건 신에게 달렸도다.
그런지라 내 너 자는 곳을 이렇게 헤매 찾아 왔노라
작은 장미 사이에 끼인 한 작은 장미여
너도 장미가 살아 있듯이 있으리라.

네 어린 걸음도 헤메기에 지쳤느뇨,
너 자는 꽃방석에 기쁨의 소리도 없어라.
하건만 내 아노라, 너는 그저 장난하고 있음을 -
다만 자는 체하고 있음을.

참말로 너는 잠들었다고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하리.
하늘로 보내는 네 눈, 네 모습의 고요함이여
네 머리엔 바람도 일지 않고, 눈은 엿 보는듯.
그런지라 그 누가 탄식 하랴.

신만이 아노라, 이루는 건 신에게 달렸도다.
그러므로 내 웃으며 고요히 부르리라 그대 이름을.
내 보내리라 장미꽃 한 떨기, 향긋한 너의 꽃다발에,
네 장난의 행복을 빌며 내 물러갔노라.

첫번째 시는 어느 민요 작가가 쓴 민요라고 합니다. 두번째 시는 어느 유명한 시인의 시라고 합니다(저자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말 할 것도 없이 첫번째 시를 훌륭한 시라고 선택 하였습니다. 나의 선택은 너무나 확고 하였습니다. 또 시간적으로도 즉각적이었습니다. 나는 첫번째 시를 읽기 시작 하자 마자 '바로 이거다'라고 하였고 세번째 연을 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단연코 이 시를 훌륭한 시로 선택 할 것이다 라고 맘 먹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시를 다 읽고 난 후 두번째 시를 읽기 시작하자 마자 나는 내 선택이 절대로 옳았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도 단연 첫번째 시를 훌륭한 시로 선택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번째 시는 보통 우리가 시라고 말하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작가의 격동된 감정이 산문적인 말투(시어)를 통해 생생하게 뛰고 있기 때문-본문 200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어려운 해석을 한 후에 첫번째 작품이 훌륭한 시라고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위에 이미 말씀 드린 것과 같이 나의 선택은 즉각적인 것이었습니다. 즉 나는 첫번째 작품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당장에 알아 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작품을 훌륭한 시 작품으로 선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아 먹을 수 있는 작품은 아무리 시 작품으로 갖추어야 할 여러 요소들을 다 갖추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런 모든 요소들을 다 갖추었으나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아 먹을 수 없는 시적으로 뛰어난 작품 보다는 백배 훌륭 하다고 나는 생각 합니다. 왜냐하면 구술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인 것이 삶이고 인생이기 때문 입니다. 삶이란 실제로 밥을 먹고 실제로 똥을 싸는 것이며 인생이란 실제로 구슬을 꿰는 전 과정이며 철학이란(시란) 실제로 구술을 실에 꿴 보물 그 자체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감상은 항상 즉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즉각적인 느낌에만> 작품 감상을 의존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소처럼 되새김질을 할 줄 알게 되어야 제대로 된 감상이 나오는 것은 사실 입니다. 그러나 독자의 작품 감상 수준이 아무리 높은 수준에 까지 오른다 해도 그 감상의 최초 출발지점은 여전히 즉각적인 느낌에서 부터 출발하게 된다는 사실만은 끝내 버릴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것이 독자라는 사람들의 작품 감상의 운명이며 한계이기 때문 입니다.


독자는 작품을 먹기를 원합니다. 독자는 즉석에서 작품을 마시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먹고 마셔야 되새김질도 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내 말이 틀린 말 입니까?


글 : 이 관 희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일상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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