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로書로 공부방/제2시집 수록

아가페 사랑

가마실 / 설인 2010. 9. 5. 09:56

아가페 사랑



종종 오르던 산길에서

앞서 간 이의 옷자락을 놓치고

쓰잘데 없는 상념에 젖어

발걸음은 궤도를 벗어났다


길은 갈수록 좁아져

잡풀이 무릎을 할퀴어도

뇌를 장악한 열병은

그따위 상처에 연연하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듯 숨은 턱에 차고

지친 발을 멈춘 곳에

지천으로 뒹구는 충만한 열매

혼미한 육신에 생기가 돋는다.


아기 품으로 아름드리 살구나무

옆가지로 늘어진 폼이 수십 년을 그랬듯

단 한 알의 열매도 챙기지 않고 홀가분이 서 있다



당신은 한때 아가페 사랑을 논한 적이 있다

내어줄 것 있으면 다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하면서

움켜 쥔 주먹은 펼치지 않았다


오늘 인적 드문 이곳에서

당신은 전혀 다른 얼굴로 서 있다.

전부를 담아낸 달큼한 열매를 입안 가득 굴리면서

당신 잃었음을 깨닫지 못는 바보는 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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