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 사랑
종종 오르던 산길에서
앞서 간 이의 옷자락을 놓치고
쓰잘데 없는 상념에 젖어
발걸음은 궤도를 벗어났다
길은 갈수록 좁아져
잡풀이 무릎을 할퀴어도
뇌를 장악한 열병은
그따위 상처에 연연하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듯 숨은 턱에 차고
지친 발을 멈춘 곳에
지천으로 뒹구는 충만한 열매
혼미한 육신에 생기가 돋는다.
아기 품으로 아름드리 살구나무
옆가지로 늘어진 폼이 수십 년을 그랬듯
단 한 알의 열매도 챙기지 않고 홀가분이 서 있다
당신은 한때 아가페 사랑을 논한 적이 있다
내어줄 것 있으면 다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하면서
움켜 쥔 주먹은 펼치지 않았다
오늘 인적 드문 이곳에서
당신은 전혀 다른 얼굴로 서 있다.
전부를 담아낸 달큼한 열매를 입안 가득 굴리면서
당신 잃었음을 깨닫지 못는 바보는 사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