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笑곳 이야기/시낭송 공연

(엔솔로지 원고) 무학舞鶴은 날개를 접지 않는다

가마실 / 설인 2012. 11. 8. 21:34

 

무학舞鶴은 날개를 접지 않는다 / 성갑숙

 

 

가난한 밥상 위, 두 홉 소주병이 기운다

백학白鶴 날개를 펴고 수면을 가른다

젊은 아버지 어깨 위로

푸른 산맥이 덩달아 춤을 춘다

은 날개는 접지 못했다

 

 

봄날 아버지는

집 앞 무논에서 한나절 만에 허리를 펴고

무학소주 한 모금에 허기를 달래고 계셨다

기다리던 새참은 간데없고

발목 꺾인 여식 담모롱이 기어나오자

침술 좋은 그 분 찾아

언제 어디서나 옷섶에서 긴 침 뽑아들면

꺾인 날개도 바람을 타게 하던 그 분 찾아

맨발의 아버지 논두렁길 따라 날아 가셨다

 

 

뻐꾸기가 목청을 가다듬으면서부터

아버지 잔등은 흙빛이었다

마을 일 보느라 읍내 출타하셨다가

노름꾼 좋아하는 구릿빛 와이셔츠

벗어주고 던저주고 축 처졌던 아버지가

오르막길섶 주저앉은 혼기 찬 여식 앞에

백학의 날개를 좌악 펼쳤다

그 날개쭉지에는 홍초단내가 났다

 

 

내 나이 적 아버지 그 잔등이 그리운 날

무학산舞鶴山 시루봉 넘어

만날고개 향해 마지막 숨을 모두었다

서마지기 문전옥토 지키지 못한 여식이건만

달맞이고개로 차오르는 이승의 바람 안고

훠얼 훠얼 날아오른 학의 날개쭉지에는

홍초단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