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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의 발상과 전개방식(1)

가마실 / 설인 2011. 3. 20. 16:36

시의 발상과 전개방식(1)


이 번에 저의 6번째 시집을 발간하게 되어 지인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시를 썼어요? 시간도 없을 텐데......" . 그렇습니다. 시를 써서 밥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저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하는 등의 생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에서든지 "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시인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저도 하루 하루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가롭게 앉아서 '무엇을 쓸까?'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시를 생각하고 쓰게 될까요?

'눈 떠서 잠들기 직전 까지!'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시를 쓰는 일은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정신력을 잠시도 쉬지 않고 시 쓰는 일에 쏟아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에게 다가오는 일상과 사물 앞에 나의 모든 감각을 개방시켜 놓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시를 쓰고자 하는 초심자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시를 쓸 수 있는 여건 - 분위기- 이 조성되어야만 시 쓰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일년, 이년 점차적으로 연륜이 더해지다 보면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대상들이 다 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이 시인이 가지고 있는 인생관, 세계관, 실험정신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시적 분위기에 매료되거나 자신이 억누르지 못하는 희로애락을 바탕으로 시를 쓰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되는데 나중에 써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이 쓴 것과 비슷비슷한 그런 글들이 되고 마는 경험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이 쓰디쓴 경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성시인의 시들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제가 자료실에 올려놓은 시집을 참고하셔도 좋고 다른 경로를 택해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자료를 요모조모 분석해 보는 일입니다.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어렵다! 이런 난관을 헤치고 그 시인이 쓰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해독하는 일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해독을 통해서 발상으로부터 시작해서 한 편의 시로서 완결되기까지의 경로를 나름대로 터득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에게도 존경하는 선배 시인들이 많습니다만 그런 분 중에 오늘은 임보 시인의 글을 통해서 강의를 시작할까 합니다.

임보 시인은 좋은 시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란 하나의 발언 : 곧 남에게 들려주는 짧은 말이다 - 언어의 범주를 벗어서서는 곤란하다.
1) '남에게 들려주는', 2) '짧은 말'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은 남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던 제 3 자의 이야기를 하던 아니면 너에게 이야기를 하던 그 이야기는 함축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축성이라는 것은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폭이 넓은 상징성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요.

습작시를 한 편 읽어 볼까요

첫눈 오는 날

눈이 내린다
(내가 내린다)

하이얀 송이들이
지붕으로 내려 앉고
*(부유하는) 그 속에 나도 내린다

지면에 닿아 쌓이거나
녹아 내려야 했다
바람은 나를 안고 (눈을 안고)
공중으로 솟구친다

*(갈망하는 것은) *((착지)였을 뿐)
고단한 몸을 누이고자 했을 뿐인데
*(영원처럼) 떠도는 이런 것이라니
어디까지 몰고 갈 것인가

순간 몸이 가볍다
(난 (너를) 베고 누웠다)
녹아지리라

<눈>
대기 중의 찬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 눈은 그 색깔이 하얗다는 속성 때문에 순결성과 진실성의 표상이 된다. 또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는 측면과 관련해서는 포근함과 높낮이 없이 고르게 내린다는 점에서는 평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눈이 환기하는 정조는 그리움과 기쁨이며 특히 첫 눈은 막연한 설레임도 동반한다. 싸락눈과 진눈깨비는 불완전함을 상징하는데 비해 함박눈은 완전함을 상징한다.
- 한국 현대시 시어사전, 김재홍 편저, 고려대학교 출판부

이 글을 쓴 분은 <눈>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눈은 객관적 상관물인 셈이지요. 이 글을 쓴 분이 눈이라는 대상을 만나기 전에 이미 주어져 있는 심리적 상태가 존재합니다. 즉 눈이라는 대상을 마주치는 순간 어떤 정조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했던 어떤 심리가 눈이라는 대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 글을 쓴 분은 정처없이 부유하는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내려앉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려앉는 것 뿐만 아니라 체온이 있는 것(사람)에 자신을 던지고 녹아 내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눈은 바람에 의해 착지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너'라는 대상을 만나 녹습니다. 그러나 '너'는 지상에 뿌리내린 그런 사물이 아니라 허공에 자리잡고 있는 것, 나와 같이 부유하고 있는 허무한 그 무엇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되겠지만 일차적으로 시는 메시지의 전달이 아닙니다. 앞에서 시의 함축성이란 상징성이라고 정의했지요? 1,2차 강의에서 유추와 연상의 문제를 다룬 바 있음을 기억하고 계시지요? 여기에 책상이 있습니다. 책상의 정의는 글을 쓰거나 밥을 먹거나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책상을 정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개념입니다. 개념을 이용하여 우리는 관념을 형성하게 됩니다. 알기 쉽게 관념이란 하나의 이미지라고 정의합시다. 이미지야말로 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꼭 기억합시다!

시를 읽는 이유는 시로부터 어떤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情調 (mood)를 체감하는데 있습니다. 어떤 시를 읽고 공감한다는 것은 시에서 드러난 이미지를 독자가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물 사이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근거하는 것이 類推이고 인접성이나 친근성에 근거하는 것이 聯想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를 읽고 공감하는데에는 원관념(주제)과 보조관념(소재)의 동일성과 인접성이 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지요.

다시 습작시를 분석해 보기로 합시다.

첫 연에서 '눈이 내린다/ 내가 내린다' 라고 눈과 나의 동일성을 이야기합니다. 두 번 째 연에서는 내리는 눈과 나의 동작의 결과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세 번 째 연에서는 어디엔가 내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불화의 상태를 드러내고 네 번 째 연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언명하고 마지막 연에서는 부질없이 허공 또는 바람을 껴안는 비극적 인식을 보여 줍니다. 사실 이 정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연마가 필요합니다.

일단, 괄호 쳐진 것을 제외하고 이 시를 읽어 봅시다.

첫눈 오는 날

눈이 내린다
하이얀 송이들이
지붕으로 내려 앉고
그 속에 나도 내려 앉는다

지면에 닿아 쌓이거나
녹아내려야 했다(는데)
바람은 나를 안고
공중으로 솟구친다

고단한 몸을 누이고자 했을 뿐인데
떠도는 이런 것이라니
어디까지 몰고 갈 것인가

순간 몸이 가볍다
녹아지리라

훨씬 시가 간결해졌습니다. 임보 시인의 짧은 글의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데에는 허사가 사용되지요. 음, 그런데, 말이지, 라든가 인과의 과정이라든가, 동작의 진행이라든가 하는 등등,.....시는 이런 것들을 뭉텅뭉텅 잘라내 버립니다. 과감하게!

부유하는, 갈망하는, 영원처럼, 이런 단어 혹은 표현들은 일상에서는 아주 자연스럽지만 시에서는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말들입니다. 浮游는 떠도는 것, 渴望하는, 永遠처럼 에서와 같이 한자어는 詩作에서 회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시를 읽고나서 사실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허공을 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여인의 춤사위, 동작 하나 하나에서 떨어지는 꽃잎같은, 눈물같은, 빛의 환영들.......

이 글을 쓰신 분은 충분히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계속 노력해 주십시오

두 번 째 시를 읽어 봅시다.


뻐꾸기 소리

장석남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복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복숭아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에서
그 빛깔만 같이

이 시는 매우 간략한 형태인데 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우리가 공부한 동일성이라든지 인접성이라든지 하는 독법으로 뻐꾸기 소리와 복숭아 꽃빛을 대치시키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다릅니다. 자, 이 시는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요? 분명히 이 시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이 시는 공간적으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뻐꾸기 소리: 어느 한 지점으로부터 내가 그 소리를 듣게 되는 이 지점까지의 거리, 그 속에 가득 차는 뻐꾸기 소리 (뻐꾸기는 보이지 않는다) → 창호지에 → 우러나는 복숭아 꽃빛 = 뻐꾸기 소리

어느 봄날 뻐꾸기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 옵니다. 뻐꾸기가 왜 우는 지 나는 모릅니다. 뻐꾸기는 보이지 않고 뻐꾸기 소리만 기쁘게, 슬프게 들려 옵니다. 나는 방안에 앉아 그 소리를 듣습니다. 창호지에 복숭아 꽃빛이 환한 그런 화창한 날입니다. 뻐꾸기 소리가 복숭아 꽃빛으로 창호지에 물듭니다. 사랑은 멀리 있습니다. 몸(뻐꾸기)은 멀리 있으면서도 감정(소리)은 바로 내 마음(창호지)을 물들입니다. 복숭아 꽃빛은 창호지에 물들고 사랑은 결코 몸 부딪치지 않아도 충만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 거리감으로 인해 더욱 간절해지고 애틋해 집니다.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이 시의 키 포인트는 바로 뻐꾸기 울음소리(파동)가 복숭아 꽃빛(빛깔)로 변화하는 그 시간의 흐름과 동화의 상태를 사랑으로 인식하는데 있습니다.

위와 같은 해석은 물론 저의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 시를 읽으시겠습니까? 이 시는 뻐꾸기가 울음우는 사실로부터, 복숭아꽃이 피는 사실로부터 빚어지는 상상의 세계를 상징화하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뻐꾸기 소리는 복숭아 꽃빛이다' 라는 상상력!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재미는 시인의 궤적을 좇아서 그 흔적을 탐색하고 그 끝트머리에서 시인과 만나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세 번 째 시는 저의 졸작입니다.

불꽃

타오르는 불꽃 속에는
두 사람이 있다

하나가 되기 위하여
가슴을 맞대어도
더욱 활활 타올라도

우리는 서로를 밝히지 못한다
한숨이 되어
뿜어 나오는 향기
그 몸짓만이 남아

하나가 되자
하나가 되자
더도 가지 말고 이 자리에서
풀썩거리는 한줌의 재

불꽃 속에는
타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서울 근교에 화가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에서 그림 한 점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상체를 벗은 젊은 두 남녀가 서로를 부둥켜 안은 그림이었는데 얼싸안은 두 사람의 힘찬 근육의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며 차 한잔을 마시면서 그 부둥켜 안은 그 모습에서 문득 불꽃을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타오르는 모습이지요

타오르는 불꽃 속에는
두 사람이 있다.

- 모닥불이든, 촛불이든 타오르는 불꽃은 스스로 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

하나가 되기 위하여
가슴을 맞대어도
더욱 활활 타올라도

-사랑은 하나가 되는 행위입니다.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희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모순에 빠집니다.

우리는 서로를 밝히지 못한다
한숨이 되어
뿜어나오는 향기
그 몸짓만이 남아

- 서로를 위하여, 헌신하기 위하여 갈구하는 것인데, 때로는 그 사랑이 정신과 육체를 소모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자
하나가 되자
더도 가지 말고 이 자리에서
풀썩거리는 한 줌의 재

-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이 자리에서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다

불꽃 속에는
타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는 두 사람이 있다 → 불꽃 속에는 타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로 변환되는 인식의 흐름, 즉 하나의 불꽃은 어둠을 밝히기도 하고 추위를 가시게 해주는 따사로움이기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되어지는 탈 것 나무와 석유, 휘발유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존재의 허무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어떤 결론을 미리 상정하고 시를 쓰기 보다는 새로운 의미망을 창조하기 위해서 시를 씁니다.

포옹하는 그림 → 불꽃 → 불꽃의 1차 의미 (하나됨을 희구함) → 불꽃의 2차 의미 (타자를 위한 따사로움, 빛) →불꽃의 3차 의미 (완전한 연소 : 사리화) → 불꽃이라 일컬어지는 모든 존재 속에 존재하는 사랑의 실재)

이 시의 발상은 그림을 보지 않았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사랑에 대한, 존재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 저의 마음 속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잠자는 시간 빼 놓고 시를 생각한다는 바의 의미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나에 대한 반성과 탐색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임보 시인의 말을 빌려 강의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상상적 이미지는 대상이 시인에게 스스로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대상 속에 파고들어 발굴해 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광부가 하나의 광맥을 찾기 위해서 수 백 미터의 지하를 뚫고 들어가듯이, 창조적 이미지를 찾는다는 것은 예지와 인내와 노역을 동반하는 고행의 길이다. 그것은 사물과의 피나는 투쟁이며, 세계를 처단하는 폭력이며,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독재다. 시인이 그러한 고뇌를 감수하면서도 시의 길을 가는 것은 바로 이 독재적인 창조를 통해 맛보는 환희로 보상받기 때문이리라.

시의 눈부신 씨앗 - 영감은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땀흘려 찾는 자의 몫이다

- 임보, 시의 씨앗에서 일부분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일상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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