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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합평의 실제 ; 시의 씨앗찾기_이은봉

가마실 / 설인 2011. 3. 20. 16:26

합평의 실제 ; 시의 씨앗찾기

이은봉

시가 노래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두루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물론 이 때의 노래는 놀이에서 기원한다. 그렇다면 시도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옳다. 이른바 시놀이……, 물론 우리나라에 지금 시놀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하이쿠의 창작과 향유 과정을 아직도 고급한 놀이로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쿠의 놀이의 과정도 궁극적으로는 합평의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자유시가 아니라 시조라면 하이쿠 놀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한번 놀아 볼만도 하다.

문제는 이 글에서의 논의의 대상이 시조가 아니라 자유시라는 점이다. 자유시도 공동으로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는가? 그것도 놀이의 형태로? 향유만은 시낭송 등의 예로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향유가 아니라 창작이다. 물론 지난 1980년대는 자유시도 여러 차례 공동으로 창작된 바 있다. 민중과의 연대를 위한 운동의 한 방식으로 채택되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본래 자유시는 개인의식의 성장·발전과 맞물려 성장·발전해 온 바 있다. 자유시가 갖고 있는 이러한 특징은 현대에 이를수록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자유시는 한 자리에 모여 처음부터 공동으로 창작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합평이 각자의 시를 내놓고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정착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합평에서 대상작품을 공동으로 퇴고하는 과정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따져보면 합평의 의의는 바로 이 점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참석자들 모두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가운데 장단점을 밝혀 대상작품을 수정을 해나가는 과정이 곧 합평이라는 뜻이다.

합평은 대상작품을 읽고 각자의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소감을 말하다 보면 자연히 대상작품에 대한 각자의 평가도 곁들여지기 마련이다. 물론 이 때의 평가에는 각자의 심미적 안목이 있는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당연하다. 합평의 과정에 좀더 안목 있는 주재자가 앞장서 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대상작품에 대한 각자의 소감을 주고받는 것이 합평의 첫 번째 순서이다. 소감을 주고받다 보면 저절로 작품이 지니고 있는 한계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이 교환되는 과정에 작품의 면모도 좀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다음의 단계에서는 시인이 작품을 발상하게 된 계기, 즉 작품의 핵심 모티프를 찾는 일이 필요하다. 핵심 모티프를 찾는 일은 작품의 싹을 틔운 씨앗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 씨앗찾기가 합평의 두 번째 순서인 셈이다. 시의 경우에도 씨앗이 튼튼하고 견실할 때 좋은 열매가 맺게 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다음은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2학기 학생의 작품이다.

애써 잠잠해진 나에게
수천 수만의 대침으로 꽂혀 오는 그대
일순간 환장으로 뒤틀린 몸 속
구석구석 황토가 일고
마음 가득 엎드려 있던 소란들
일제히 물살로 고개 든다

썩어 가는 나뭇가지
뿌리뽑힌 수초들, 찢겨진 비닐봉지
내 안의 온갖 잡다한 것들 끄집어내며
마구 토악질시키는 그대는
비수의 몸짓으로 달려들지만
아직도 옹이 박힌 자리엔 소용돌이 일으키는데

어쩔 것인가
퉁퉁 부어오른 몸 속을
자꾸만 휘저어대는 그대
휘모리로 다가서는데
살풀이춤 추어대는데
한때 여물목 같던 사랑을 위해
몸 쑤셔대는 수침들을 견뎌내 볼 것인가

그대, 점점 거세게 꽂혀 들 때
내 안의 상흔들 부표되어 쓸려 가는 것인가
―{폭우에게} 전문

시의 씨앗을 찾는 과정에서 참석자들이 확인해야 할 것은 작품에 함유되어 있는 발상의 기발성, 참신성 등이다. 그와 동시에 상상력의 전복성, 즉 역발성의 실제 등을 검토하는 과정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일상을 뒤집어 새로운 언어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의 실제와 관련하여 시의 씨앗의 발육 정도, 즉 성숙 정도 등도 살펴보아야 한다. 제대로 싹을 틔워 발육, 성숙시키지 못한 시의 나무가 영근 열매를 맺기는 어렵다. 결국 합평의 과정은 옳게 뿌려진 시의 씨앗을 찾아 그것을 발육, 성숙시켜 올곧은 열매로 키워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우리 대학원의 학생들도 위의 시의 기본 모티프, 즉 시의 씨앗을 찾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견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1연 2행의 "수천 수만의 대침으로 꽂혀 오는 그대" 라는 구절에 이 시의 씨앗이 들어 있다는 데 동의를 했다. 폭우를 "수천 수만의 대침으로 꽂혀 오는 그대"로 인식하면서 이 시가 발상되었다는 견해이다.

폭우를 대침으로 인식하는 것은 일종의 역발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근본비유를 설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하의 언술들은 대침과 관련하여 제자리를 잡아가야 마땅하다. 그럴 때 이 시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질서와 체계를 형성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反常에 따른 合道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시의 이어지는 구절에 "뒤틀린 몸 속/구석구석 황토가 일고/마음 가득 엎드려 있던 소란들/일제히 물살로 고개 든다"와 같은 표현이 뒤따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 다 완성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시의 경우 무엇보다 싹을 틔운 씨앗이 제대로 발육,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족한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좀더 정밀한 시가 되기 위해서는 첨삭되어야 할 부분이 적잖다는 것이다.

물론 시는 주관적인 정서를 토로하는 언어 예술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시의 전체 형상은 창작자의 입장 및 시각을 중심으로 통일성 있고 일관성 있게 전개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전체 형상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화자의 위치 및 시점을 중심으로 작품의 세부를 좀더 섬세하게 점검해 가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동시에 시의 핵심 이미지로부터 싹튼 파생 이미지들이 이루는 내적 질서와 체계를 바르게 점검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 당연히 작품을 구성하는 리듬과 가락도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합평은 서로의 다양한 의견을 통해 대상 작품을 수정, 개작해 나가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을 합평의 자리에서 낭송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과정에 참석자들이 언어감각, 예술적 조형능력 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작품의 체계적인 이해능력, 심미적 창작기량 등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라 위의 시를 거듭 첨삭하고 퇴고해서 완성시킨 예이다. 합평이 각각의 시를 얼마나 정밀하게 만드는 지를 익히 알 수 있게 해주리라.

애써 마음 갈아 앉히는 내게
수천 수만의 대침으로 꽂혀 오는 그대
순간 뒤틀리는 몸 속
구석구석 황토가 일고
마음 가득 엎드려 있던 소란들
일제히 물살로 고개 쳐드는구나

썩어 가는 나뭇가지
뿌리뽑힌 수초들, 찢겨진 비닐봉지
내 안의 온갖 것들 다 끄집어내어
마구 토악질시키는 그대
끝내 비수의 날카로움으로 달려드는구나
옹이 박힌 자리마다
거센 소용돌이 일으키면서

어쩔 것인가 퉁퉁 부어오른 몸 속
자꾸만 휘저어대는 그대,
휘모리로 다가서는데
살풀이춤 추며 밀려드는데
한때는 여물목 같던 사랑 위해
몸 쑤셔대는 물침들 그대,
끝내 견뎌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대, 점점 더 거세게 꽂혀 들지만
내 안의 오랜 침전물들
정말 다 부표로 띄워 쓸어갈 수 있을 것인가
―{폭우에게} 전문

 

출처 : 박종국 수필가의 일상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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